인공지능은 누구의 노동으로 똑똑해지는가
- 베네수엘라의 데이터 노동자가 드러낸 자동화의 숨은 비용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 뒤에는 사진을 분류하고 문장을 읽고 결과를 비교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 달러 수입을 찾아 접속한 노동자들은 첨단 산업과 연결되지만, 그 성과를 나누는 위치는 다르다. 자동화의 진짜 비용은 서버의 전기요금뿐 아니라 노동자의 집과 지갑에서도 발생한다.
[Key Message]
* 인공지능의 성능은 데이터를 만들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노동에도 기대고 있다. 자동화의 성과와 그 생산 조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
* 달러 수입은 경제위기 속에서 중요한 생계 기회가 된다. 다른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플랫폼의 조건을 거절하기는 어려워진다.
* 데이터 분류에는 문화와 맥락에 대한 해석이 들어간다. 판단하는 사람에게 기준을 질문하고 수정에 참여할 통로가 필요하다.
* 가정과 지역사회도 인공지능 생산을 뒷받침한다. 기업의 장부 밖으로 옮겨진 생활비와 위험까지 살펴야 전체 비용이 드러난다.
* 노동자의 처우와 데이터의 품질은 함께 관리해야 한다. 보수와 지급, 이의제기와 판단 권한을 연결하는 구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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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뒤에 놓인 사람의 시간
인공지능을 만드는 작업 목록에는 뜻밖에도 자신과 가족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이 들어 있다. 어떤 자세를 취한 모습을 촬영하고, 사진 속 사람의 나이와 성별 같은 정보를 입력한다. 다른 작업에서는 인터넷을 뒤져 기업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찾거나, 문장을 정해진 항목에 따라 분류한다. 인공지능 산업의 생산 현장은 연구실과 데이터센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방과 식탁, 휴대전화 화면도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된다.
사진을 업로드하는 동작만 보면 몇 초짜리 일이다. 그러나 사진을 준비하고 요구사항을 이해하고 결과를 제출하기까지는 별도의 시간이 든다. 문장을 읽고 항목을 고를 때도 손가락은 잠깐 움직이지만 판단은 그보다 길게 이어진다. 어떤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클릭의 횟수로는 작업의 난도와 생각의 무게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의 판단은 이렇게 데이터의 일부가 된다. 이미지에 붙인 이름, 문장에 부여한 분류, 결과에 대한 평가가 기계를 학습시키거나 검증하는 재료로 쓰인다. 사용자가 완성된 서비스를 만날 때는 이 과정이 앞에 드러나지 않는다.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답변이고, 서비스를 설명하는 말은 모델과 연산 능력에 집중된다. 기계가 영리해 보일수록 그 영리함을 준비한 사람의 시간은 배경으로 밀려나기 쉽다.
일을 잘게 나누면 많은 사람에게 빠르게 배분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사람이 수행한 작은 과업과 완성된 기술 사이의 연결은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사진 한 장의 분류가 어느 제품의 어떤 기능으로 이어지는지 노동자가 충분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기여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만 계속 제출하는 구조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노동 문제는 기술이 누구를 대체하는가와 함께,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정받는가를 묻는다.
달러를 찾아 접속하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의 세 데이터 노동 플랫폼을 들여다보면, 첨단 기술 산업과 경제위기 속 생계가 맞닿는 풍경이 드러난다. 인터넷으로 국경 너머의 일을 수행하고 보수를 받는 연결은 노동자에게 실제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에서 안정적인 소득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기회의 가치는 더 커진다. 그러나 멀리 있는 기업과 연결되었다고 해서 서로의 협상력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의 사정과 일을 배분하는 기업의 선택지는 여전히 다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가 크게 흔들리면서 작은 달러 보수도 매력적인 소득원이 되었다. 이전부터 존재하던 컴퓨터와 전력·인터넷 기반은 온라인 작업에 접근할 조건을 제공했다. 위기 속에서도 접속할 수 있는 기반과 저렴해진 노동이 만난 것이다. 경제위기 시기의 플랫폼 노동자 설문에서는 응답자가 스스로 보고한 평균 보수가 시간당 1.73달러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해당 조사 참여자의 자기보고 결과이며, 현재 모든 데이터 노동자의 임금을 뜻하지 않는다.
달러는 단순히 외국 돈이 아니다. 통화의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는 생활에서 소득을 보존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외부의 시선에는 낮아 보이는 보수도 당사자에게는 놓치기 어려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선택을 이해하려면 다른 일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과 생활의 위험까지 살펴야 한다. 플랫폼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그 조건이 충분히 좋다는 판단과 곧바로 같아지지 않는다.
기회를 얻는 일과 불리한 조건에 놓이는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당장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해주는 수입원이라도 그 일을 거절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면 협상에는 제약이 생긴다. 노동자의 경제적 불안정은 개인적인 배경으로만 남지 않는다. 낮은 가격을 받아들이고 계속 일하게 만드는 거래 조건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디지털 노동시장은 세계를 연결하면서도 세계의 격차를 함께 가져온다.
접속은 자유롭지만 이탈은 비싸다
플랫폼에 들어가는 문은 넓어 보인다. 집에서 접속할 수 있고, 정해진 장소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출입의 편리함과 소득원을 바꾸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그 수입이 가계의 중요한 부분이 되면 작업 조건이 달라져도 쉽게 떠나기 어렵다. 화면을 닫는 데는 몇 초가 걸리지만, 그 뒤의 생활을 유지할 다른 수입원을 찾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일부 플랫폼에서는 초기에 높은 보수나 장려금으로 노동자를 모은 뒤 소득 의존이 생기면 유인을 줄이는 흐름이 나타난다. 처음의 조건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참여자가 충분히 늘어났을 때 기업이 얻는 선택의 폭과 노동자가 갖는 선택의 폭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을 모든 플랫폼의 동일한 행동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처음 접속할 때의 기대와 일을 지속하는 동안의 조건을 나누어 봐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의존은 수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업 방식을 배우고 평가 기준에 익숙해지며 제출 절차를 알아가는 데도 시간이 들어간다. 그 경험을 다른 일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옮기는 비용은 커질 수 있다. 더 좋은 조건을 찾기 위해 이동하려 해도 다시 배워야 하는 시간과 그동안의 소득 공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축적된 경험은 노동자의 자산이면서 특정 시장 안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표현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하는 시간을 고르는 자유, 보수를 협상하는 자유,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유는 서로 다르다. 첫 번째가 존재한다고 나머지까지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과업과 단가, 검수 기준을 다른 쪽이 정한다면 장소의 유연성 속에서도 통제는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와 무엇을 거절하기 어려운지를 함께 봐야 노동의 실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이때 플랫폼은 만남을 연결하는 게시판을 넘어 시장의 질서를 정하는 위치에 선다. 어떤 일이 보이고 어떤 결과가 인정되는지를 통제하는 기능은 중개자의 힘을 키운다. 노동자는 그 통로를 통해 일과 수입에 접근하고, 기업은 같은 통로에서 생산을 조직한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가치를 배분하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 사이에 간격이 생기는 것이다. 낮은 보수는 이 간격의 결과 가운데 하나이며, 그 보수를 유지시키는 관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
정답을 고르는 사람에게 없는 권한
데이터 분류는 세상을 작은 칸으로 나누는 일이다. 사진 속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문장의 내용을 구분하고, 검색 결과의 적절성을 평가한다. 칸이 명확하고 대상이 단순하다면 작업은 비교적 수월할 수 있다. 그러나 농담과 모욕, 맥락에 따른 의미의 차이는 몇 개 항목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 데이터 작업에는 분류체계가 놓친 경계를 알아차리는 판단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 판단이 필요한 사람과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심의 보호 집단 정의가 작업의 기준에 반영되면 다른 지역에서 중요한 차별의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문화와 경험을 통해 모호함을 발견하지만, 그것을 기준을 만든 쪽에 전달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장의 지식은 데이터 생산에 필요하면서도 기준을 개선하는 과정에서는 밀려난다. 지식의 기여와 판단의 권한이 서로 다른 곳에 놓인다.
가상의 상황으로 이 간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문장을 읽은 작업자가 특정 지역에서 쓰는 농담이라는 점을 이해하지만 제공된 항목 가운데 적절한 선택지가 없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하나를 골라야 제출할 수 있다면 결과에는 망설임이 남지 않는다. 이는 실제 노동자의 발언을 재현한 장면이 아니라 분류 구조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예다. 깔끔하게 정리된 데이터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해석의 어려움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일관성과 타당성은 함께 필요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모두가 지침대로 같은 답을 내면 결과는 일관될 수 있다. 그러나 지침이 맥락을 놓치면 그 일관성은 같은 한계를 반복하는 방식이 된다. 작업자가 발견한 애매함을 실수로만 처리할지, 기준을 개선할 단서로 받아들일지가 중요하다. 분류하는 사람의 지식은 통제해야 할 변수가 되기도 하고, 품질을 높일 자원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그래서 복지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제 작업에서 어떤 표현과 상황이 걸리는지 설명할 통로가 있으면 데이터의 한계를 더 빨리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질문에 드는 시간이 인정되지 않고 제출한 결과만 평가된다면 맥락을 설명할 유인은 약해진다. 정확성을 요구하는 생산 과정일수록 정확한 판단을 뒷받침할 조건이 필요하다. 기계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질문할 권한이 있는지는 기술의 품질과 연결되는 문제다.
데이터센터 밖으로 밀려난 생산비
온라인 작업을 이어가는 몸은 현실의 장소에 남아 있다. 전기가 끊기면 화면이 멈추고,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하면 제출이 어려워진다. 다음 날 다시 작업하려면 먹고 쉬고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생산을 서버에서만 찾으면 이 조건들은 개인의 사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데이터가 만들어지려면 누군가의 일상이 먼저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데이터 노동은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 온라인 동료 집단의 지원과 연결되어 있다. 생활을 나누는 가정, 자원을 함께 관리하는 이웃, 정보를 교환하는 동료가 일을 지속할 기반이 된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혼자 힘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지원에는 성별에 따른 부담도 존재하며, 노동자의 접속 뒤에 다른 사람의 시간이 놓일 수 있다. 화면에는 한 계정이 보이지만 그 계정을 지탱하는 관계는 여러 겹이다.
가족의 도움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도움을 누가 필요로 하고 누가 비용으로 계산하는가다. 노동자의 소득이 줄었을 때 가정의 다른 구성원이 생활을 더 떠받친다면, 줄어든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다. 기업의 장부에 잡히지 않는 부담이 늘어나면서 생산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개인에게 지급한 보수만 보면 효율적으로 보이는 구조가 가정의 관점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지갑에서도 비용은 이어진다. 달러로 표시된 보수를 받는 것과 그 돈으로 생활필수품을 구입하는 것 사이에는 전자지갑과 금융 플랫폼, 환전 중개자가 들어설 수 있다. 더 안정적인 통화에 접근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러 중개 단계를 거치며 수수료와 위험이 생긴다. 작업을 연결한 플랫폼의 밖에서도 다른 서비스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일의 대가를 화면에서 확인한 순간이 소득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 순간과 같지는 않다.
이 때문에 보수의 크기와 지급 경로는 함께 살펴야 한다. 얼마를 벌었는지에 더해 실제로 얼마를 쓸 수 있고 어떤 부담을 거쳐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급 이후의 과정이라고 해서 모두 노동과 무관한 개인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입을 사용하는 데 필수적인 절차라면 그 절차의 비용도 소득의 가치를 바꾼다. 기업의 비용 절감이 노동자의 생활에서 어떤 추가 부담으로 나타나는지 묻는 시선이 필요하다.
값싼 데이터와 좋은 기술 사이의 선택
추출주의는 자원을 얻는 곳과 그 자원의 가치가 축적되는 곳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다. 데이터와 노동, 지식에도 그 질문을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의 판단은 세계적인 기술 산업에 들어가지만 그 판단을 수행한 지역의 생활 조건은 다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기술이 새롭다고 해서 이익과 부담의 배분까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플랫폼 추출주의는 혁신의 외형 아래에서 오래된 불균형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묻는다.
그 질문은 플랫폼 노동의 기회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소득을 얻는 사람에게 그 일은 중요할 수 있으며, 당장의 생계를 돕는다는 사실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동시에 그 중요성 때문에 조건을 바꿔야 할 이유가 커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일이라면 보수와 지급, 평가에 대한 설명은 더 중요해진다. 기회를 제공한다는 말이 그 기회의 질을 묻지 못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려면 작은 과업의 가격을 올리는 일과 함께 무엇을 작업 시간으로 보는지 검토해야 한다. 지침을 읽고 판단을 익히며 모호한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포함되는가. 제출한 결과가 거부되었을 때 이유를 알 수 있고, 잘못된 평가를 다툴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노동자가 자신의 소득을 예상하고 업무를 개선할 능력과 연결된다. 설명받을 권한과 문제를 제기할 통로는 생산의 투명성을 높이는 조건이 된다.
데이터를 주문하는 기업의 시야도 넓어질 필요가 있다. 공급받은 결과물의 정확도만 확인하면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의 어려움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작업 기준이 실제 맥락에 맞는지, 보수가 어떤 경로로 지급되는지, 오류와 이견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모두에게 같은 답을 강요하는 것과 충분한 설명을 통해 좋은 판단을 얻는 것은 다른 방식이다. 노동자의 경험을 품질 관리에 연결할 때 비용표에서 놓친 정보도 드러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성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답이 얼마나 정확하고 빠른지 묻는다. 그 답을 준비한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생각했고 어떤 조건에서 일했는지까지 물으면 기술을 보는 기준이 달라진다. 서버의 효율, 데이터의 품질, 노동자의 생활은 하나의 생산 과정 안에 있다. 기계가 세상을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그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는가. 인공지능의 미래는 더 영리한 답을 만드는 능력과 함께, 그 답을 만드는 노동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