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누구를 위해 말하는가
- 1968년의 급진 경제학자들은 숫자의 학문을 권력과 민주주의의 언어로 바꾸려 했다
[Key Message]
경제학의 변화는 새로운 이론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무엇을 연구하고 누구의 경험을 경제 문제로 인정할 것인가가 달라지는 순간 학문의 지도도 바뀐다.
1968년의 급진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사회와 분리된 중립적 전문지식으로 보지 않았다. 연구와 교육, 시민 참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려 했다.
여성과 흑인, 노동자와 도시 빈곤층의 경험이 경제학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노동시장과 차별, 교육과 기업 권력은 더 이상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의 문이 좁아지자 급진 경제학은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대중출판과 정책연구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학계 밖이 오히려 새로운 경제 지식을 만드는 실험장이 됐다.
가장 오래 남은 유산은 하나의 경제이론이 아니라 경제학자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었다. 전문가가 답을 내려주는 대신 시민과 함께 문제를 정의하는 경제학이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경제학 강의실에 1968년이 들이닥치다
1968년 미국 대학의 강의실 밖은 조용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반전 시위가 캠퍼스를 뒤덮었고, 학생들은 대학이 정부와 군사정책, 기업 권력에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를 따져 묻기 시작했다. 역사학과 사회학만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냉정한 숫자와 정교한 모델을 앞세워 사회과학의 중심으로 올라서던 경제학에도 시대의 소음이 강의실 문틈으로 밀려들었다.
그 무렵 미시간대학교가 있는 앤아버에서는 젊은 경제학자와 대학원생들이 급진정치경제학연합을 조직했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이들의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했다. 경제학은 성장률을 잘 계산하고 물가와 실업률도 정확하게 측정하는데, 왜 흑인 노동자가 구조적으로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지, 왜 여성의 가사노동은 경제활동에서 잘 보이지 않는지, 왜 가난한 지역이 오랫동안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불만이었다. 경제는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드는데 정작 경제학은 사람을 숫자 뒤에 세워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복잡한 수식보다 훨씬 직접적이었다. 경제가 성장했다고 할 때 그 성장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할 때 누구에게 효율적인가, 노동시장이 균형에 도달했다고 할 때 그 균형 아래에서 계속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사람은 없는가를 물었다. 경제학의 계산을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엇을 계산하고 무엇을 경제 문제라고 부를 것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요구였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경제학 전체를 흔들 수 있었다. 측정하는 대상이 달라지면 문제의 모습도 달라지고, 문제를 다르게 정의하면 정책의 방향 역시 달라진다. 경제학자들이 바라보는 렌즈를 조금 돌리는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배경처럼 흐릿하게 보이던 노동자와 여성, 소수자와 지역사회의 경험이 갑자기 화면 한가운데로 들어올 수 있었다. 급진 경제학의 이야기는 바로 이 렌즈의 이동에서 시작한다.
숫자는 정말 중립적인가
경제학은 오랫동안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을 구분하려 노력해왔다.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는 일과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지를 주장하는 일은 다르며, 경제학자는 가능한 한 전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태도다. 과학적 학문을 지향한다면 자연스러운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급진 경제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에는 정말 가치판단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실업률은 매달 정교하게 계산하면서 직장 안에서 누가 누구에게 명령할 수 있는지는 거의 측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기업의 생산성과 이익률은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육아와 돌봄은 경제활동 바깥으로 밀어낸다면 어떨까. 임금 차이를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숙련도 차이로 설명하면서 성별과 인종에 따른 구조적 차별은 주변 변수로 취급한다면, 통계 자체는 정확하더라도 현실의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급진 경제학자들이 통계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숫자가 보여주는 세계의 범위를 넓히려 했다. 노동시장에서는 임금과 고용량뿐 아니라 노동자와 기업 사이의 힘의 차이를 살펴야 했고, 교육에서는 학교를 다니면 소득이 얼마나 늘어나는가뿐 아니라 누가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는지도 따져야 했다. 기업 역시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결합하는 기계가 아니라 누군가는 명령하고 누군가는 그 명령을 따라야 하는 조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렌즈를 조금 옆으로 돌리자 경제학의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사회학이나 정치학의 문제로 밀려나 있던 권력과 차별, 조직 내부의 위계가 경제학의 질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급진 경제학의 중요한 도전은 새로운 공식 하나를 발명한 데 있지 않았다. 기존 경제학이 잘 보지 않던 곳을 가리키며 저기도 경제다라고 말한 데 있었다.
학회를 바꾸려다 경제학의 권력을 발견하다
젊은 급진 경제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논문만 쓰지 않았다. 경제학의 내용이 바뀌려면 경제학을 운영하는 조직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수는 누가 뽑는지, 어떤 논문이 유명 학술지에 실리는지, 학술대회에서는 누가 발표 기회를 얻는지, 무엇이 중요한 연구로 인정받는지를 살펴보면 학문의 방향을 결정하는 또 다른 힘이 보인다고 판단했다.
1960년대 말 미국경제학회에서도 갈등이 나타났다. 급진 경제학자들은 학회 운영과 교수 채용, 학술지 편집 과정에 더 다양한 관점이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여성 경제학자들의 문제 제기는 날카로웠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차별을 분석하는 경제학이 정작 자신의 교수 채용과 학문 공동체에서는 여성의 낮은 지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경제학이 말하는 객관성과 공정성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경제학의 연구 대상과 경제학자의 현실이 서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의 차별을 연구하면서 경제학과 내부의 차별은 보지 않아도 되는지, 사회의 권력을 분석하면서 학문 공동체 내부의 권력은 분석하지 않아도 되는지가 새로운 논쟁거리가 됐다. 학문을 바꾼다는 것은 좋은 논문을 한 편 더 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가 경제학자가 될 수 있고 어떤 질문이 경제학으로 인정받는가까지 손대야 했다.
주류 경제학이 순순히 자리를 내준 것은 아니었다.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들 가운데는 급진 경제학이 새로운 학문적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만큼 독자적인 이론과 경험적 성과를 보여줬는지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많았다. 불평등과 노동, 차별 같은 문제는 기존 경제학의 분석도구로도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는데 굳이 경제학 전체를 적과 아군으로 나눌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논쟁의 핵심은 점차 분명해졌다. 주류 쪽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과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봤다. 급진 쪽에서는 같은 분석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무엇을 중요한 문제로 보느냐가 다르면 전혀 다른 경제학이 될 수 있다고 맞섰다. 경제학을 둘러싼 싸움은 수식의 옳고 그름을 넘어 어떤 현실을 바라볼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으로 번졌다.
혁명보다 어려웠던 교수 되기
세상을 바꾸겠다는 젊은 경제학자들에게 예상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찾아왔다. 바로 직장이었다. 경제학을 급진적으로 바꾸겠다는 열정과 미국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얻고 종신재직권을 확보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일부 급진 경제학자들은 임용과 승진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고, 학계 내부에서는 정치적 차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를 명확하게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어떤 연구자가 채용되지 않은 이유가 학문적 성과 때문인지 정치적 견해 때문인지 분리하기 어렵고, 교수 선발 과정에는 수많은 판단이 개입된다. 그럼에도 급진 경제학자들에게 이 경험은 강렬했다. 시장과 권력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몸담은 학문 세계에서도 기회와 권력의 불균형을 직접 경험하게 된 셈이었다.
중심부 대학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연구자 가운데 일부는 다른 대학으로 이동했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와 뉴 스쿨 같은 곳은 주류와 다른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 됐다.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사라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에서 노동과 계급, 젠더와 제도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학문의 역사는 흔히 유명 대학과 권위 있는 학술지를 중심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이 실제로 성장하는 장소는 때때로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다. 주류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모든 모서리를 다듬을 필요가 없는 곳에서 새로운 강의와 교과서, 연구 주제와 학문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급진 경제학의 역사는 학문의 주변부가 반드시 지적 주변부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노동시장에 힘이라는 변수를 넣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노동시장은 비교적 깔끔하다.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며, 노동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임금이 결정된다. 그런데 현실의 취업 면접장을 떠올리면 그림이 훨씬 복잡해진다. 면접관과 지원자는 정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조건을 협상하고 있을까.
지원자는 월급이 필요하다. 집세를 내야 하고 생활비도 마련해야 한다. 반면 기업은 여러 지원자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채용 자체를 미룰 수도 있다. 기업이 공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겠다고 할 때 노동자는 가족과 주거지를 두고 쉽게 따라갈 수 없으며, 노동조합이 있는 직장과 그렇지 않은 직장에서는 같은 노동자라도 협상력이 달라진다.
급진 경제학자들이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집어넣으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런 힘이었다. 임금이 개인의 생산성과 교육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의 협상력, 인종과 성별, 노동조합의 존재, 기업 내부의 위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시장에서 관찰된 결과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만든 균형으로만 이해하면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누가 더 많은 선택권을 가졌는지를 놓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노동시장 자체가 하나라는 생각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안정된 고용과 높은 임금, 승진 기회가 있는 일자리와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반복되는 일자리가 서로 다른 경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경력을 쌓으면서 계속 더 좋은 일자리로 이동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리 오래 일해도 비슷한 저임금 일자리를 반복해서 옮긴다. 그 차이를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면 노동시장 자체의 구조를 들여다봐야 했다.
교육도 같은 질문 앞에 놓였다.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생산성이 높아지고 소득도 증가한다는 설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누가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지와 교육기회가 얼마나 공평하게 나뉘는지도 함께 봐야 했다. 경제학이 교육을 받으면 얼마나 더 벌 수 있는가를 계산할 때 급진 경제학자들은 한 가지 질문을 추가했다. 왜 사람들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하는가.
여성의 일이 숫자에서 사라지는 순간
여성운동과 급진 경제학이 만나는 순간 경제학의 경계는 한 번 더 넓어졌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며 빨래와 청소를 하는 일은 분명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다른 가정에 가서 돈을 받고 그 일을 하면 경제활동으로 기록되지만, 자신의 집에서 하면 상당 부분 통계 밖으로 사라진다. 돈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똑같은 활동의 경제적 가시성이 달라지는 셈이다.
여기에서 꽤 곤란한 질문이 생긴다. 시장에서 가격이 붙어야만 경제적 가치가 생기는 것일까. 가정 내부의 돌봄과 가사노동이 없다면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데, 왜 경제학에서는 오랫동안 이 영역을 주변적으로 취급했을까. 여성 경제학자들과 여성운동은 이 지점을 파고들며 임금격차뿐 아니라 돌봄과 가사노동, 직업 분리, 승진 기회의 차이까지 경제 문제로 끌어들였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연구 주제가 하나 추가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을 노동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생산이라고 부를 것인지에 대한 경제학의 기본 정의가 도전을 받았다. 시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도 사람들의 경제적 기회와 소득, 노동시장 참여를 크게 좌우한다면 그것 역시 경제 분석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이 힘을 얻었다.
오늘날에는 성별 임금격차와 돌봄경제,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정부와 국제기구의 주요 정책 의제로 자리 잡았다. 지금 보면 당연해 보이는 질문도 처음부터 경제학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급진 경제학의 흔적을 찾으려면 특정 학파의 이름이 교과서에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를 세기보다, 과거에는 경제학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문제가 오늘날 얼마나 자연스럽게 경제학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
대학 문이 닫히자 경제학을 들고 거리로 나가다
학계 내부에서의 변화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자 일부 급진 경제학자들은 대학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보니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곳이 의외로 많았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 임금을 올릴 수 없다고 주장할 때 재무자료를 읽고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고, 지역 주민은 대형 개발사업이 일자리와 임대료, 지방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야 했다. 여성단체도 동일임금과 고용차별을 주장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와 분석이 필요했다.
경제학자와 시민의 관계도 바뀌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전문가가 문제를 정하고 연구한 뒤 그 결과를 일반인에게 설명하는 흐름이 익숙했다면, 현장에서는 노동자와 활동가가 먼저 질문을 던지고 경제학자가 분석을 돕는 방식이 나타났다. 회사가 정말 적자인지, 공장을 폐쇄해야 할 경제적 이유가 있는지, 도시개발의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현장의 문제에서 출발해 함께 조사했다.
이런 활동은 경제교육의 의미도 바꿨다. 복잡한 경제학을 쉬운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시민이 전문가의 설명을 잘 이해하도록 만드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 스스로 경제 문제를 질문하고 자료를 읽고 주장을 검증할 수 있어야 했다. 경제학의 목적이 시험문제를 잘 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싼 경제적 결정을 해석하는 데 있다는 생각이었다.
1974년 보스턴에서는 급진 경제학자들이 경제 시사 간행물 달러와 센스를 만들었다. 물가와 임금, 기업 권력, 노동분쟁과 국제경제를 다루면서 전문적인 경제 문제를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냈다. 경제뉴스가 물가가 올랐다고 보도하면 왜 올랐는지를 묻고, 회사가 임금 삭감을 요구하면 기업의 재무상태를 살폈으며, 정부가 어떤 정책이 성장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그 성장의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따졌다.
경제학자의 역할도 달라졌다. 정답을 가진 권위자라기보다 복잡한 경제현상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사람이 됐다. 수식과 전문용어 뒤에 숨지 않고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설명해야 했으며, 경제학이 대중과 만나기 위해서는 경제학자 자신도 말하고 쓰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대학 바깥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경제학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시험하는 또 하나의 연구실이었다.
경제민주주의 회사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1970년대 이후 급진 경제학자들의 관심은 정책연구기관과 시민단체로도 이동했다. 정부 예산과 노동정책, 여성의 경제적 지위, 지역개발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조직이 만들어졌고 일부 경제학자는 이곳에서 연구와 사회운동, 정책 활동을 연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경제민주주의라는 생각이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갖게 됐다.
질문은 어렵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투표소에서만 필요한 것일까. 사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지만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회사의 중요한 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 공장이 폐쇄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면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지만 그 결정은 소수 경영진과 투자자만으로 내려질 수도 있다.
지역개발도 비슷하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집값과 임대료, 교통과 고용을 바꾸지만 주민들은 계획이 상당 부분 결정된 뒤에야 내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급진 경제학자들이 말한 경제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시민에게 공공의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주는 것처럼 일터와 기업,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결정에도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때 경제학자는 다시 다른 위치에 선다. 전문가가 완성된 정책을 만들어 시민에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가 자신의 정책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자료와 분석을 제공하는 협력자가 된다. 전문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의 목적이 달라진다. 내가 전문가이므로 내 말을 따르라가 아니라 당신도 판단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겠다라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변화는 경제학자의 권위를 없애려는 시도와도 달랐다. 복잡한 경제자료를 읽고 분석하는 전문적 능력은 여전히 중요했다. 다만 그 능력이 시민보다 위에 서기 위한 자격증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경제 문제를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경제학을 민주화한다는 말은 경제학자를 없애자는 의미가 아니라 경제 지식을 사용하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자는 의미에 가까웠다.
주류를 이기지 못했지만 질문은 살아남았다
급진 경제학의 역사를 누가 이겼느냐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결과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주류 경제학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경제학 교과서가 급진 경제학 중심으로 전면 개편된 것도 아니다. 세계 주요 대학의 경제학과가 모두 새로운 이념 아래 재편되지도 않았으며, 급진 경제학이라는 이름 자체도 시간이 흐르면서 1960년대와 1970년대만큼 강한 존재감을 갖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실패한 운동일까. 여기에서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학파의 이름은 흐려졌지만 이들이 집요하게 던졌던 질문 가운데 상당수는 오히려 경제학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성별 임금격차와 노동시장 차별, 교육 불평등과 세대 간 이동, 기업의 시장지배력, 노동자의 협상력,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오늘날 경제학에서 낯선 주제가 아니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급진 경제학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학 내부에는 다양한 연구 전통이 존재했고 새로운 데이터와 분석기법도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한때 경제학의 주변부에 있던 문제들이 중심 연구 의제로 이동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급진 경제학자들의 역할은 완성된 답을 제공했다기보다 경제학이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를 확장하는 데 있었다.
여기에서 학문의 성공을 판단하는 흥미로운 기준이 생긴다. 자신의 학파 이름을 교과서 첫 장에 남기는 것이 성공일까, 아니면 자신이 던진 질문이 경쟁 학파와 다음 세대의 연구 속에 스며들어 더 이상 급진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성공일까. 후자의 기준으로 보면 급진 경제학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가장 성공적인 급진적 질문은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이 그것을 더 이상 급진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질문이 되는지도 모른다.
급진적 기대가 오늘 다시 흥미로운 이유
제목인 급진적 기대에서 급진적이라는 단어는 극단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단어는 오히려 기대다. 지금 존재하는 경제제도와 학문, 전문가와 시민의 관계가 반드시 영원히 지금 모습으로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대학도 바뀔 수 있고 경제학의 연구 주제도 달라질 수 있다. 노동자가 기업의 결정에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여성과 소수자가 경제학자가 되기 어려운 구조도 바뀔 수 있다. 전문가가 시민 대신 모든 답을 결정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현실이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일 자체가 당시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질문은 이상할 만큼 낯익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얼마나 바꿀 것인지,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볼 것인지 개인사업자로 볼 것인지, 집값 상승의 이익과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비용을 누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지를 놓고 사회는 다시 경제학자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분석할 데이터는 1968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계산 능력도 강력해졌지만 어떤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하는가는 여전히 숫자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래서 1968년의 논쟁은 오래된 사진 속 장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측정할 것인지, 누구의 경험을 경제 문제로 인정할 것인지, 누가 문제를 정의할 것인지, 전문가의 지식은 누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된다. 경제학의 기술은 크게 발전했지만 경제학이 누구를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하나의 정답이 없다.
급진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꿈꾸었던 모습으로 경제학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제학의 문을 두드리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질문 하나를 안쪽에 남겨놓았다. 숫자를 더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과 권력의 관계까지 바라봐야 하는가. 급진적 기대가 되살리는 것은 과거의 한 학파가 아니라, 경제학이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오래된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