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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

 
 
 
 
저   자
이형진
출판사
쌤앤파커스
가   격
14,000원(282쪽)
출판일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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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공부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동기’의 문제! 
세계를 놀라게 한 자랑스런 한국인 이형진의 공부철학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라며 윤리 교과서 같은 주장을 펼치는, 다소 ‘재수 없는’ 청년이 있다. SATㆍACT 만점, 아이비리그 9개 대학 동시 합격, ‘전미 최고의 고교생’ 아시아인 최초 선정, 최연소 ‘자랑스런 한국인상’ 수상…. 학업뿐만 아니라 테니스, 바이올린, 뮤지컬, 디베이트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무한 엄친아’로, 한국과 미국 학생들의 열등감에 그야말로 불을 활활 지핀다. 

이 발칙한 주장과 화려한 프로필의 주인공은 재미교포 2세 이형진 군. 이 책은 그가 자신의 공부철학과 공부법을 풀어낸 에세이다. ‘이렇게 하면 1등 한다’, ‘공부해야 성공한다’ 같은 이야기 말고, 공부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공부철학’을 풀어냈다. 그가 말하는 공부는 단순히 책을 파고드는 지리멸렬한 과정이 아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기 위한 진솔한 몸짓이다. ‘방법’이 아닌 ‘이유’에 대해 접근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공부 에세이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먼저 읽어본 독자들이 너도나도 추천하며 20만 부를 돌파했고, 리커버 특별판이 새로 출간되었다. 

■ 저자 이형진
저자 이형진은 SAT·ACT 만점, 아이비리그 9개 대학 동시 합격, 전미全美 최고 고교생을 뽑는 ‘웬디스 하이스쿨 하이즈먼 어워드’ 아시아인 최초 수상, 「USA 투데이」 주최 ‘올해의 고교생 20명’ 선정, 존 매케인 장학금 수여 등, 화려한 프로필로 세계를 놀라게 한 공부지존! 최연소로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모님이 결혼 직후 이민을 가시면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이지만, 치즈보다 고추장을 좋아하는 뼛속까지 토종 한국인. 공부뿐 아니라 테니스, 바이올린, 뮤지컬, 토론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무한 엄친아(?)로 한국과 미국 학생들의 열등감에 활활 불을 지피고 있다. 엄청난 공부벌레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엉뚱한 매력도 넘친다.『해리포터』의 광팬으로서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입학을 꿈꾸던 중, 순전히 고색창연한 예일대의 풍경에 반해 무수한 명문대를 뒤로 하고 예일대에 입학해 윤리, 정치, 경제학을 전공했다.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라는 마치 윤리 교과서 같은 주장을 펼쳐도 그 말이 허황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 그 철학을 온몸으로 실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공부는 단순히 책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 세상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과정이고, 그렇기에 그의 공부는 아마도 영원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 차례
프롤로그 _ 공부는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탐험?! 
Part 1. 내가 공부하는 이유? 나를 사랑하니까! 
-내가 전미(全美) 최고의 고교생이라고? 
-공부는 ‘How’가 아니라 ‘Why’다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은 눈물의 성적표 사건 
-나의 경쟁자는 오로지 ‘어제의 나’ 뿐이다 

Part 2. 공부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머니가 내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 독서습관 
-내가 밤새 화장실에서 나가지 못한 이유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시계를 잊어라 
-공부는 ‘노력이 필요한 놀이’이다 
-SAT 만점의 비밀이 체력관리라고? 
-스스로 만들어낸 지식은 끝까지 기억된다 

Part 3. 삶과 공부의 주인이 되는 기술 
-이걸 왜 공부하느냐고? 시험에 절대 안 나오니까! 
-100번의 복습보다 1번의 예습!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진다? 연관사고법 
-나의 비밀 병기, 색깔 볼펜과 포스트잇 
-노트 필기의 핵심은 최대한 지저분하게? 
-낭비 없이 보낸다, 방학필살기 
-집중력 Up! 왔다리 갔다리 공부법 
-삶과 공부의 주인이 되는 기술, 셀프컨트롤 

Part 4. 지금의 나를 만든 순간들 
-아버지와 작성한 한 장의 계약서 
-내 모든 도전을 가능케 한 근원, 부모님 
-과정을 즐겼다면 충분해, 랑코니 선생님의 조언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창, 선생님 
-굿바이 배링턴! 잊을 수 없는 서프라이즈 파티 

Part 5. 세상이라는 교과서, 배움엔 경계가 없다 
-세 살짜리 테니스 선수, <시카고 트리뷴>에 데뷔하다 
-“그때 너는 분명히 네 한계를 뛰어넘었어!” 
-백악관 무대에 선 꼬마 바이올리니스트 
-모든 처음은 다 두렵다, 하지만 처음이 없으면 지금도 없다 
-일리노이 주를 주름잡은 ‘스타 논객’의 탄생 
-하고 싶은 일에 한계를 정할 필요는 없다

Part 6. 세상에 ‘나’를 소리치다 
-함께 나누는 기쁨을 깨닫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꾸다, 남아공에서의 4주 
-배움에 있어 우린 무엇도 두렵지 않다, 예일대 정신 
-“넌 동양인이니까 공부를 잘하지!”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소설’이다
에필로그 _ 내가 세운 나의 원칙, 나의 기준으로 살아간다 

 



도서요약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나를 사랑하니까!

공부는 ‘How'가 아니라 ’Why'다

“숙제는 다했니?”

“학원은 몇 시에 끝나니?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올 거지?”

“이번 주에 시험은 없니?”


어디선가 들은 듯 익숙한 이야기들 아닌가? 그런데 이 이야기의 배경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면? 흔히 한국 학생들은 유독 한국이 교육열이 높고 부모님의 간섭도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도 만만치는 않다. 아니, 더 심하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의 경우, 상황이 좀 다르다. 참으로 다행이면서 감사했던 것이, 우리 부모님은 나와 누나에게 숙제는 다 했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물어보신 적이 거의 없다. 학교생활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시거나 어드바이스를 해주신 적도 많지 않았고, 숙제를 도와주신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생활과 관련해 상담할 일이 있으면 학교의 카운슬러 선생님을 찾아갔고, 숙제는 내 힘으로 ‘될 때까지’ 매달렸다.


우리 집에서 ‘착하다’는 말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신념을 갖고 매진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일찍부터 내가 할 일은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터득하게 해주셨다. 거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주신 셈이다.


이처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집안 분위기 덕분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즐겼다. 누구의 강요나 통제 없이, 그 누가 간섭하거나 시키지 않더라도 내가 만들어낸 에너지를 동력삼아 ‘알아서’ 공부를 해온 것이다.


나는 배움 자체를 나 자신에 대한 예의, 소중한 내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공부를 잘해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사회가 이야기하는 성공에 도달하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 접해야만 알 수 있는 ‘수많은 세상’을 내게 좀 더 많이 다양하게 보여주고, 그래서 숨어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나에 대한 예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 그래서 훗날 내가 도전하고픈 꿈이 생겼을 때 부족한 준비로 인해 그 꿈을 포기하는 불상사를 만들지 않는 것, 즉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나에 대한 예의라는 이야기다.


공부라는 것이 단지 수학, 영어 등 교과서에 있는 내용들을 파고드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좀 거창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세상을 더 많이 알고 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배우는 것이 바로 ‘공부’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알면 알수록 신나고 즐거운 일이 정말이지 많다. 소중한 삶을 더욱 의미 있게, 그리고 더욱 아름답게 가꿔갈 수 있는 여러 기회도 있다. 그런 것들을 탐색하고 기회를 잡는 과정이 바로 공부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공부가 ‘인생에 대한 예의’이자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1등’을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 공부했다면 SAT·ACT 만점이나 전미 최고 고교생 선정의 영광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제대로 된 마인드가 바탕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하우투(How-to)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확신과 믿음이 서지 않는다면, ‘어떻게’에 대한 답도 찾아내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유를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된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나의 경쟁자는 오로지 ‘어제의 나’뿐이다

한국도 비슷하겠지만, 미국은 철저한 경쟁사회다. 교육제도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경쟁’의 개념이 깔려 있다. 그러나 나 역시 결국은 경쟁이라는 파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능력이나 수준의 절대치를 가지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그저 누구보다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뜻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못하는 사람을 싸잡아 ‘못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그저 조금 나은 수준인 것을 가지고 ‘내가 잘나서’ 그런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비교하길 좋아한다. 훌륭한 ‘라이벌’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인데, 나는 다른 사람을 제치고 앞서 나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만족할 만큼 열심히 해내는 데만도 에너지가 부족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다 보니 경쟁자를 물리쳤을 때 느끼는 짜릿함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알던 것을 더 깊이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순수한 희열이 나에게는 더 소중하고 기뻤다. 물론 살면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순간도 많이 찾아왔지만, 그 순간에도 경쟁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실력이 향상되는 것,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열심히 해서 잘해내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재미가 있어야 몰두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재미가 있어야 즐길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야 어렵고 힘들어도 어떻게든 해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1등’이나 ‘만점’, ‘수석’에 대한 강박관념은 공부를 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모험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은 멋진 조언을 해주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부류는, 늘 경쟁자 뒤에서 무언가를 몰래 캐내려고 하고, 야비하게 이기려고 하고, 남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보다 상대방이 조금만 뛰어나거나 똑똑해도 시기심과 질투심에 불타서 어떻게든 상대방을 밟고 올라서려고 한다.


나는 이기고 지는 일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기보다는, 그 경쟁의 파도를 좀 다르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게 경쟁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에 대한 평가의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1등이든 꼴등이든, 등수 자체는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나’ 하는 것뿐이었다. 결과만 신경 쓰고, 라이벌과 비교하려고만 하면 공부 자체보다 성적표나 등수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내가 경쟁해야 하는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어제의 나’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행복하고 더 지혜로워지면 그걸로 충분히 기쁜 일이 아닐까? 재수 없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공부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다

공부는 ‘노력이 필요한 놀이’이다

공부를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은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공부를 즐겨야 한다’고 얘기한다(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런데 공부가 정말 즐거울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속으로 ‘누가 몰라서 못하냐? 그런 비현실적인 얘기는 안드로메다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라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공부와 재미의 선후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 공부를 재밌게 하라고 말하는 아이들, 즉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자기들이 공부를 잘하니까 공부가 재밌어진 것은 아닐까? 공부를 잘하는 것과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것, 어느 쪽이 먼저일까?


사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다를 바 없는 문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공부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공부’를 둘러싼 그 수많은 괴롭고 칙칙하고 암울한 것들(점수, 등수, 내신등급 등등)을 다 걷어내고,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조각조각 이어 붙여 멋진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공부’만을 따져보면, 공부가 그렇게 머리 아프고 지겨운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좀 더 긴 안목을 갖고 보면 공부도 충분히 재밌는 놀이가 될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노력’이 필요한 놀이지만, 우리가 어떤 놀이를 하든 노력하지 않고 잘하게 되는 길은 없는 것 같다. 게임에서 최고의 레벨로 올라가려면 많은 시간 동안 게임에 힘을 쏟아야 하듯이 말이다.


누구에게나 통용될 만한 만국공통의 공부비법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내 방법이 누구에게나 먹힐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은 분명히 있다. 하루 이틀만 하고 말 게 아니라 5년, 10년 계속해야 하는 게 공부라면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최선이다. 내게 가장 재미있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원칙만 기억해두길 바란다. 공부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을까?’하고 고민하며 찾는 과정만으로도, 공부가 훨씬 재미있어질 거라고 약속한다.


SAT 만점의 비밀이 체력관리라고?

누군가 나에게 SAT·ACT 만점의 비결을 묻는다면, 나 역시 첫째로 체력관리를 꼽을 것이다. 사실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사항인데, 의외로 많은 친구들이 컨디션 조절을 못해서 시험을 망친다. 특히 동양계 학생들의 경우 어릴 때는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뒤처지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체력 싸움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반면 아주 어릴 때부터 스포츠로 체력을 단련시켜온 미국 아이들은 공부의 양이 많아지고 공부시간이 늘어나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두 번째 비결을 꼽자면, 자기확신이다. 수능이든 SAT든 큰 시험을 목전에 두면 누구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아직도 공부해야 할 게 산더미같이 남았는데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흘러가고,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어떤 경우에는 걱정과 불안이 도를 넘어 그것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생기거나 시험을 망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것까지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한 포인트에만 집중하기’다. 내가 가장 중요한 비결로 꼽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시험문제를 풀 때도 지금 이 문제에만 100%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방금 푼 문제를 몰라서 대충 찍었거나 이전 시간의 시험을 망쳤더라도, 그런 것은 얼른 마음속에서 털어버려야 이후 문제들을 집중해서 풀 수 있다. 그래야 실수하지 않고 차분하게 내가 가진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지식은 끝까지 기억된다

수학공식이나 영어단어, 용어의 정의나 역사적 사실 등을 외우는 것은 생각의 재료들을 머릿속에 비축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게 준비된 정보들을 가지고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지식을 융합하는 과정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부다. 많은 책을 읽고 외워서 재료를 많이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문제가 주어졌을 때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결국 SAT나 수학능력시험의 본질도 그런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고 말이다.


공부에 있어 가장 좋은 것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언제 어디서든 활용해보면서 ‘자신만의 지식’으로 재생산하는 습관을 조금이라도 어릴 때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습관이야말로 지식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오래 지속되게 한다.


우리가 혼자서 지식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있는 지식에 내 생각과 경험과 노력을 더해, 나만의 지식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 주어진 정보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그것을 완벽히 숙지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공부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거기에는 ‘나’가 없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시험만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하는 것은 누구나 같은데, 어떤 사람은 점수만 받는 데서 끝나고 어떤 사람은 평생 머릿속에 남을 지식을 갖는다면, 전자는 어쩐지 좀 억울할 것 같다(장담컨대, 결국엔 후자가 시험도 잘 본다). 기왕 하는 공부라면, 평생 남을 자산이 될 지식을 쌓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라는 교과서, 배움엔 경계가 없다

“그때 너는 분명히 네 한계를 뛰어넘었어!”

테니스는 상대선수와 단독으로 붙어서 싸워야 하는 경기다(복식경기는 두 명씩이지만 나는 주로 단식경기만 했다). 달리기나 높이뛰기처럼 자신과 싸우면서 기록을 향상시키는 기록경기가 아니라서, 양쪽 다 실력이 형편없어도 상대방보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자신과의 싸움’과 ‘상대선수와의 싸움’, 둘 다 잘해야 좋은 경기를 할 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 나 자신과의 싸움은 정신력과 셀프컨트롤에 달렸고 상대선수와의 싸움은 기 싸움 같은 심리전부터 체력, 집중력, 전략까지 전면전의 양상을 띤다.


내가 중점을 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게임 내용이 좋지 않으면 이겨도 기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나보다 약한 상대를 만났을 때 상대를 얕보고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몰입도가 떨어진다.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하는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하다 보면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도 생기지 않고, 승리하더라도 결국에는 재미없는 시합이 되어버린다. 그런 시합은 이겨도 의미가 없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운 것도 아니고 잘못된 점을 고친 것도 아니니까 한 경기를 이긴 것 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게임 내용이 좋으면 설사 지더라도 마음은 뿌듯했다. 지금보다 1mm라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얻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보다 잘하는 상대방을 만나서 게임을 힘겹게 끌고 가거나 진 경우, 내가 몰랐던 새로운 기술도 알게 되고 ‘우와! 내가 이렇게 어려운 공도 받아내다니!’하면서 스스로에게 감탄할 기회도 자주 생기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칭찬하는 시합은 대부분 내가 월등히 상대를 앞서서 이긴 게임이었다. 친구들은 물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번은 내 테니스 코치였던 랑코니 선생님에게 내가 했던 게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언제였냐고 여쭤보았다. 그런데 랑코니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던 그날의 게임을 꼽으셨다.


“훈련이 어느 정도 되면 상대를 맞닥뜨리는 순간, 이 정도만 하면 이기겠다, 혹은 이번엔 이기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서기 마련이야. 그리고 이기겠다 싶은 경우는 실제로 딱 그만큼만 하면 이기지. 문제는 반대의 경우야. 많은 친구들이 이기기 힘들겠다 싶으면 실제로 붙어 보기도 전에 포기하거든. 내 말은 승부근성을 가지라는 얘기가 아니야. 모든 게임이 다 의미 있는 게임이 되어야 해. 그러려면 쉬운 상대든 어려운 상대든 최선을 다해야겠지. 최선을 다한 시합이어야 이기든 지든 의미 있는 게임이 되고 가치 있는 승부가 될 테니까. 내 기억에 네가 가장 잘했던 게임은 그 게임이었다. 그때 너는 분명히 네 한계를 뛰어넘었어. 훌륭한 시합이었다.”


랑코니 선생님은 나와 마음이 가장 잘 통하는 코치였다. 이기면 무조건 칭찬하고, 지면 무조건 꾸중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내가 팀 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랑코니 선생님 덕분이기도 했다.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신 분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내내 잘했더라도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승패가 갈리는 것이 스포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내용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내용이 좋았다면 나에겐 패배도 의미 있으니까 말이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서 잘하는 선수들과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고, 다른 학교의 최고 실력자들과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테니스를 통해 강건해진 정신력과 끈기는 공부에도 절대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처음은 다 두렵다, 하지만 처음이 없으면 지금도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마음만 불편하게 할 뿐 실제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닥치면 다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준비’지 ‘조바심’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모든 일은 결국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다. 게다가 진짜 어려운 시험은 언제나 예고 없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는 법이다. 만약 두려움이나 망설임 때문에 그 시험을 회피해 버린다면 결국 남는 건 후회뿐이다. 그런 것은 이미 유치원 때 겪었던 어떤 작은 사건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유치원 때 ‘미친 모자 콘테스트’라는 것이 있었다. 가장 특이하고 가장 창의적인 모자를 만들어 쓰고 온 사람을 뽑아 상을 주는 이벤트였다. 콘테스트 전날, 어머니와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아 밤늦게까지 낑낑대며 모자를 만들었고, 시카고 불스의 까만 모자는 엄청나게 많은 깃털과 반짝이, 술이 달린 괴상한 모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물건’(물건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을 보는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보고 이걸 쓰라고?’였다는 것. 그 바보같은 걸 쓴 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콘테스트 날 아침, 나는 결국 어머니께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안 쓸래요.”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는 내게 어머니는 괜찮다고, 멋지다고, 네가 일등이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그 모자를 들려 보내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나는 끝끝내 그 모자를 쓰지 않았다. 억지로 들고 가기는 했지만 너무나 창피해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교실 한쪽에 처박아둔 그것을 보고 선생님이 “이건 누구 거야?”하고 물어보셨을 때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모른 척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화난 목소리로 나를 다그친 것 같기도 한데 어쨌거나 나는 끝까지 모자를 쓰지 않았다.


그날 누가 어떤 괴상한 모자로 상을 받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모자를 만들어준 어머니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 번이라도 그 모자를 썼더라면 미안함이 덜했을 텐데···’하는 미련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요즘도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거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을 해야 할 때면 미친 모자 콘테스트를 떠올린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혹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기회를 빼앗아가 버리는가? 얼마나 큰 후회를 안기는가!


하고 싶은 일에 한계를 정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로 무언가를 정해놓고 가는 삶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누구와 비교하느라 그것들의 즐거움을 놓치고 산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 아닐까? 그리고 만약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잘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나는 내 삶에 자신이 있다는 것.


대학교 1학년 때 NBC 방송국에서 인턴으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인턴에게 복잡하고 중요한 일이 주어질리 없고, 단순한 일들만 하면 되니까 당연히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나는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고민하다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명함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명함을 받았고, 명함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냅킨이나 메모지 같은 것을 건네며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약 3시간 동안, 3년 가까이 그곳에서 일한 그 어떤 인턴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됐다. 내가 말을 건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내가 건네는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방해가 된다고 귀찮아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방의 한쪽 벽면은 누군가의 명함과 신상명세가 적힌 냅킨, 메모지 등으로 빈틈없이 도배가 되어 있다. 훗날 그들에게 연락할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이 사람이 누구지?’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그것들이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삶을 통째로 놓고 바라보면 공부나 학점 이외에 다른 것들도 보인다. 나를 향해 손짓하는 다양한 기회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나에게는 왜 기회가 오지 않는 거지?’하고 불평하기 전에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외쳐본 적 있는가. 기회가 없다고 투덜거리기 전에 그걸 먼저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공부만 하기에도 벅찬, 또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친구들에게는 내 이야기가 좀 사치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상황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고, 또 정말 뚜렷한 확신만 있다면 숨 막히는 상황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나 역시 지금껏 도전해온 많은 일들이 10년 후 나의 커리어와 전혀 무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한 가지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세상에는 다른 것도 많다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는 사람을 만나고 직접 경험하며 부딪쳐 봐야만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다. 두려움과 행복, 우울하고 기쁜 감정들, 모험심이나 성취감 등, 인생의 커다란 한 부분을 놓치고 지나간다는 건 어쩐지 좀 억울한 일 아닐까?


몸소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경험이 아니라 ‘탐험’이라고 불러도 좋다. 탐험가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자신이 느끼는 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안다. 나 역시 직감을 믿고 따라가길 좋아해서, 연극을 하고 싶으면 연극 팀을 찾아가고, 노래를 하고 싶으면 아카펠라 팀을 찾아간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걸 왜 해야 하는가 하는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어도 되고 몰라도 된다. ‘하고 싶다’는 자신의 느낌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고, 그러면 탐험도 계속할 수가 없다. 마음이 하는 얘길 믿고 따르는 것, 삶이라는 탐험을 계속해서 신나게 해내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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