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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저   자
박혜성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가   격
14,500원(236쪽)
출판일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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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61세에 생업에서 은퇴한 뒤 꿈을 그린 프랑스의 행복한 화가
루이 비뱅의 인생과 그림 그리고 꿈에 관한 감동 에세이!

파리 시민들이 ‘행복한 화가’라고 부르며 오래도록 기억하는 화가가 있다. 바로, 61세에 생업에서 은퇴한 뒤 화가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 ‘루이 비뱅’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그림에 재능이 많았던 그는 생계 등의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대도시인 파리로 가 우체부가 되었고, 그곳에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직업인으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성실한 삶을 살았다. 비록,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일요일이면 편지를 배달하며 자신의 눈에 담았던 파리의 풍경을 종이에 옮기며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우체부 시절의 그는 바쁜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짬을 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 시간을 ‘꿈의 요일’이라 부르며, 매주 그날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어쩌면 실제로 비뱅의 삶 대부분은 고되고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상을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재능을 가진 그는,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특별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그림들이 하는 말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빛나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공이며, 어쩌면 평범하게 지나친 지금 이 순간이 당신 인생의 가장 특별한 순간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라고.

■ 저자 박혜성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00여 회 이상 국내외 전시를 한 화가이자 어려운 미술 이야기를 흥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쉽게 풀어주는 에세이 작가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미국, 멕시코 등 2014년부터 일 년에 한 달은 해외에 살며 미술관 탐방을 하고 있다.

아트 스토리텔러로서 미술 인문학 강의, 누적 방문자가 260만 명에 달하는 미술 분야 인기 블로그 〈화줌마 ART STORY〉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2021년, 2016년 네이버 미술 분야 〈이달의 블로그〉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키라의 박물관 여행 10: 뉴욕현대미술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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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blog.naver.com/heasungpak
인스타그램 @auntist_story

■ 차례
들어가며_꿈을 이루기 가장 좋은 때

PART1. 인생을 그리다
_그림을 사랑하던 소년, 파리의 우체부가 되다
1. 봉주르 파리, 너의 꿈은 뭐니?
2. 꿈이 있어 행복한 우체부
3. 꿈이 피어나는 몽마르트르
4. 시청 앞 꽃 시장과 여왕의 추억
◇ 봉주르, 파리1. 미술관 같은 파리 시청사
5. 비뱅이 존경한 화가, 코로와 쿠르베
◇ 봉주르, 파리2. 비뱅이 즐겨 찾은 뤽상부르미술관
6. 무채색을 닮은 화가

PART2. 꿈을 그리다
_외톨이 화가, 파리의 낭만을 담다
1. 사소함을 그린 화가
2. 다른 화가, 비슷한 그림
3. 서툴러서 오히려 신비한 그림
4. 꽃이 된 외톨이 화가
5. 파리의 하늘 아래 샹송이 흐르고
6. 파리는 날마다 축제
◇ 봉주르, 파리3. 행동하는 지성인 헤밍웨이

PART3. 행복을 그리다
_비뱅, 행복한 화가가 되다
1. 레알 광장에서 동화 같은 하루
◇ 봉주르, 파리4. 카유보트의 아름다운 기부
2. 노래하고 춤추는 그림
3. 행복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방법
4. 예술 그 자체로 충분해
5. 모마에 작품이 소장된다는 것

PART4. 장소를 그리다
_비뱅, 파리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빠지다
1. 몽마르트르에 눈이 내리면
2. 대체 불가의 매력 오페라 가르니에
3. 파리의 영혼, 노트르담대성당
4. 에펠탑과 사랑에 빠지는 곳
5. 루브르박물관보다 오르세 미술관
6. 프랑스 왕궁 정원에서 파리지앵의 여유를
7. 파리의 모든 개선문

마치며_꿈은 행복이다

부록
1.빌 헬름 우데와 소박파 화가들
2.루이 비뱅 연보

참고도서

 



도서요약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인생을 그리다 _그림을 사랑하던 소년, 파리의 우체부가 되다

꿈이 있어 행복한 우체부

생업에 종사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 소박파(Naive Art)의 대표 화가가 된 앙리 루소는 49세까지 말단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퇴직 후 화가의 길을 갔다. 파리 근교 상리스의 가정부 세라핀 루이는 남의 집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파리의 우체부 비뱅은 집에 버릴 쓰레기조차 없을 정도로 궁핍했지만 퇴직 후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독학을 해야 했던 예술가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생활은 가난했어도 영혼은 자유롭고 독립적이었으며 행복했다.


비뱅이 47년간 살았던 몽마르트르의 5층짜리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되어 벽과 천장이 변색되고 허름했다. 좁은 복도 사이로 똑같은 집이 늘어서 있었는데 주로 하급 공무원이나 연금 생활자들이 살았다. 아파트는 모두 방 두 개와 부엌이 있는 같은 구조였고 비뱅의 집은 꼭대기 층인 5층에 있었다. 생동적인 길거리와 달리 아파트 안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곳이었다. 이는 비뱅의 일상과 좀 닮아 보인다.


우체부로서 비뱅의 삶은 늘 똑같고 제한적이었다. 사실 그 시기 우체부는 언제 바뀔지 모를 스케줄에 따라 근무하며 창문 하나 없는 기차의 우편 칸에 실려 짐짝처럼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이 유동적인 일정 때문에 비뱅은 프랑스 전역을 누구보다 많이 누볐다. 그 결과 비뱅은 전국에 있는 우체국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고 프랑스 모든 우체국을 표시한 우편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그가 그린 지도 시리즈는 정부가 수여하는 교육공로훈장을 받았고 비뱅은 감독관으로 승진도 했다. 당시 우체국 고위직은 인쇄비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지도를 인쇄하지 않았지만 이 일은 잔잔하고 평범한 비뱅의 일상에서 몇 안 되는 업적이자 우체부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일탈이었다. 비뱅은 자신의 지도가 그림인지 아닌지 자문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한때 화가를 지망하던 우체부로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 일로 상까지 받았으니 마냥 즐겁기만 했다.


비뱅은 우체부 일을 그만둘 때까지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미술관, 재래시장, 파리 시내 등 어느 곳을 가든지 화가의 시선으로 그 장소들을 바라보며 기억 저장고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 기억들은 머릿속에 잠들어 있다가 어느 순간 현실로 불쑥 튀어나와 좋은 창작 재료가 되어주었다. 비뱅의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아마추어가 그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림에 담긴 그 아이 같은 순수함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는 힘이 있었다.


비뱅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비뱅과 처지가 비슷했던 세관원 루소, 가정부 세라핀 등이 행복했던 이유도 바로 꿈을 실현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의 과정과 결과를 저울질하지 않고 용감하게 행동한 것이었다. 이런 비뱅과 소박파 화가들의 삶은 꿈을 이루는 것은 학벌이나 조건이 아니라 열정과 용기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무채색을 닮은 화가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의 거리를 둘러보면 무채색 옷을 입은 파리지앵이 무척 많다. 젊은이들은 물론 중년 남녀에 이르기까지 파리지앵의 집에 찾아가 옷장을 열어보면 어김없이 무채색 옷이 많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국기가 하양, 파랑, 빨강으로 이뤄진 화려한 삼색기인 점을 떠올려보면 형형색색이 파리와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비뱅도 파리의 풍경을 그릴 때 무채색인 회색을 즐겨 사용했다. 청명한 시골에서 자랐고 자연을 사랑한 비뱅이 무채색을 자주 썼다는 것이 뜻밖이기도 한데 파리의 우체부로 살면서 그 또한 파리지앵의 무채색에 점점 동화된 듯하다. 사실 비뱅이 살던 때 파리 거리에 나가면 회색 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 본연의 색이 그렇다기보다 세월의 때가 묻어 자연스럽게 먼지가 쌓이고 빛이 바랜 것이다. 지금은 파리시에서 건물 청소 정책을 시행해 본연의 색을 찾았지만 비뱅의 시대에는 회색 톤의 건물이 사실에 가까웠던 셈이다.


이런 도시의 모습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것을 흡수하는 비뱅의 모습과 닮았다.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비뱅의 성격은 색으로 표현한다면 회색일 것이기에 그가 회색을 즐겨 사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특히 비뱅이 사용한 회색은 사실에 가까운 색이면서 동시에 반 고흐처럼 자신의 감정이 반영된 것이었다. 비뱅은 삶이 비극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원색보다는 회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렇다고 비뱅이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을 비극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야생의 약육강식, 사냥꾼에게 쫓기는 동물, 도시의 어두운 일상 등을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따름이다.


비뱅은 도시 풍경화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그려 삶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동물화를 통해 약육강식에 따른 생존의 처절함을 보여준다. 평생 우체부였던 그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우편물을 나르며 타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녹록치 않은 인생을 회색 톤으로 표현했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고 왜 우울하지 않겠는가? 어느 날은 아름답고 또 어느 날은 슬픈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리라.


비뱅이 무모한 꿈보다 현실에 맞는 소박한 꿈을 꾼 것은 평생 우체부였던 그의 직업적 특성이었을까, 아니면 인생의 이치를 깨달은 노년에 붓을 들어서였을까? 때로는 빠른 시작보다 늦은 시작이 좋을 때도 있음을 비뱅의 그림을 통해 배운다.



꿈을 그리다 _외톨이 화가, 파리의 낭만을 담다

꽃이 된 외톨이 화가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마치 사랑 고백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꼭 연인뿐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꽃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 꽃에 의미와 존재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홀로 그림을 그리던 외톨이 화가들의 이름을 불러준 이는 빌헬름 우데라는 눈 밝은 미술 평론가였다. 독일인인 우데는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 전시를 최초로 열어주었고 소박파를 세상 밖으로 비상하게 한 놀라운 능력자였다. 우데는 어떻게 이름 없는 화가들을 발굴하게 되었을까?


1922년, 우데는 몽마르트르 가두 전시회에서 비뱅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비뱅은 카미유 봉부아 등과 함께 전시했는데 이 전시를 본 우데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화가의 열정과 순수한 매력에 깊이 매료되었다.


사실 우데는 10여 년 전부터 아마추어 화가들의 소박한 그림에 주목했다. 첫 화가는 앙리 루소였다. 루소는 양식에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원시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이 점이 우데의 눈에는 무척 신선하게 보였다. 루소는 파리 세관원으로 근무하며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리는 일요화가였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명화를 모사하며 실력을 쌓다가 49세에 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우데는 1907년 루소에 관한 논문을 최초로 발표했고 1911년 루소의 첫 개인전을 열어주었는데 안타깝게도 루소는 전시회가 열리기 1년 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우데가 발굴한 또 다른 화가는 세라핀 루이였다. 1912년 프랑스 북동부의 아름다운 마을 상리스에 휴양을 갔을 때 우데는 운명처럼 세라핀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세라핀이 그린 정물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라핀은 그림 공부는커녕 어떤 배움도 없이 시골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는 외톨박이였는데 그림의 불타는 듯한 색채와 꿈틀거리는 꽃잎에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기운이 있었다. 세라핀의 집념과 예술혼에 감동한 우데는 그녀의 작품을 사고 향후 파리에서 개인전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제공황이 닥쳐 전시는 미뤄지고 그사이 세라핀은 정신병을 앓다가 생을 마감한다. 세라핀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에야 우데의 노력으로 파리와 다른 도시에서 그녀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세라핀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우데와 비뱅이 처음 만난 것은 몽마르트르 가두 전시회 3년 후인 1925년이었다. 우데는 비뱅의 그림을 보고 나서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우데가 비뱅의 몽마르트르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비뱅은 자신의 초기작과 퇴직 후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비뱅의 아파트 한쪽 벽에는 큰 습지에 있는 플라밍고 그림이 걸려 있었다. 비뱅이 1889년 우체국 직원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었다. 우데는 이 그림을 구매하고 카르티에라탱 지역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35년 동안 함께했다.


우데는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소박파 화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마침내 1928년과 1932년 두 번에 걸쳐 전시를 했다. 사람들은 이를 ‘전설적인 소박파전’이라고 불렀다.


우데는 루소와 세라핀에게 그림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비뱅과도 자주 만나 진솔한 토론을 하고 그들의 친구이자 멘토가 되었다. 우데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소박파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 우데는 고립된 무명 화가들의 이름을 불러 꽃으로 만들어주었다. 소박파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주었고 세계 미술관에 그들의 자리도 마련해주었으니 소박파의 대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을 그리다 _비뱅, 행복한 화가가 되다

노래하고 춤추는 그림

은퇴 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비뱅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경유 램프에 불을 붙이고 이젤 앞에 앉았다. 그의 책상과 의자에는 언제나 삽화가 있는 책, 잡지, 꽃 사진들, 다색 석판으로 인쇄된 그림엽서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이 자료들이 작품의 소재가 됐다. 그는 여러 자료 중 하나 또는 몇 개를 조합해 그림으로 재구성하고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자신만의 색감을 덧입혔다. 비뱅의 그림은 초기 초현실주의 작품 같다고 평가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작업 방식이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비뱅이 1920년에 그린 <개 콘서트>와 <작은 개들>을 보자. 비뱅의 반려견인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동일한 소재로 두 점의 그림을 그렸다. 같은 시기 파리에 살았던 헤밍웨이가 개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은데 돈이 없어 그럴 수 없다고 푸념한 것을 보면 형편이 그보다 더 어려웠던 비뱅이 반려견을 키우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개 콘서트>는 가로 40센티미터, 세로 25센티미터 8절 스케치북 정도의 크지 않은 유화 작품이다. 세 마리 개와 두 마리 고양이가 아래위의 구도로 나누어 선 채 마주 보고 있다. 다섯 마리의 동물이 내는 소리가 마치 노래를 하는 듯 시끌시끌해 ‘개 콘서트’라는 제목을 지은 것은 아닐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개의 위세에 놀라 테이블에 올라간 고양이 두 마리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지만 아래의 개 세 마리는 여유로워 보인다. 개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의자와 테이블도 눈길을 끈다. 배경에 그려진 액자와 거울은 원근법을 고려하고 봐도 너무 작다. 주인공인 개를 부각하는 것이 그림의 기본이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데에는 엉뚱한 재미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 같은 개를 소재로 한 <작은 개들>은 가로 세로 길이가 모두 10센티미터인 정사각형의 손바닥만 한 그림인데 어린 고양이를 겁주는 강아지들의 모습이 참 앙증스럽다.


강아지 그림을 그린 지 5년 후 비뱅은 <발레>라는 그림을 그렸다. 장소는 파리의 대표 명소 중 하나인 오페라 가르니에로 보인다. 비뱅의 주머니 사정을 짐작해보건데 직접 공연을 보고 그렸다기보다는 엽서나 사진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연을 경험하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 같다. 무대에서 춤추는 발레리나와 관현악단의 흥겨움이 객석에도 전해지고, 그림을 보는 사람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무대배경은 비뱅의 또 다른 작품인 <트리아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고 무대 위 상단에 그려진 나팔 부는 천사도 <알레고리> 속 천사를 닮았다. 첫눈에 <발레> 그림이 끌린다면 그림에서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발레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의 객석은 이렇게 밝지 않다. 그럼에도 비뱅은 흥겨움을 표현하기 위해 조명을 밝게 하고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또 무대를 중심으로 봤을 때 1,2층의 객석의 소실점이 일치하지 않는데 바로 이런 불완전함이 이 그림의 매력이다. 한껏 멋을 부린 부인들, 춤추는 발레리나, 한 땀 한 땀 그은 좌석의 선들이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다. 비뱅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깜찍하고 발랄한 그림을 탄생시켰다.


비뱅은 자신이 직접 본 적에든 간접적으로 본 것에든 자신의 색을 입힐 줄 아는 재능을 가졌다. 형편상 많은 것을 몸소 체험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캔버스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고 있다. 한국 서양화가인 황영자 작가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대리 만족을 한다고 하는데 비뱅도 상상으로 그림을 그리며 기쁨을 느끼지 않았을까. 비뱅은 가진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상상력만큼은 부자인 행복한 화가였다.


행복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방법

‘인스타그램에는 슬픈 날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정말 세상에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 리는 절대 없으니 상대적 박탈감은 금물이다. 인스타에는 각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올리는 것인데 보는 사람들은 매번 그런 사진만 보이니 나만 행복하지 못하다는 착각이 드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SNS에 올라오는 행복한 장면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행복을 갈망하는 인간의 심리다. 그런데 행복의 불이 켜지는 스위치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소유할 때 행복해지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스킨십에 행복을 느낀다. 또 여행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공유할 때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행복해지기도 한다. 우리의 행복 스위치는 어떤 순간에 온(ON)될까?


나는 비뱅의 그림을 찾다가 행복 스위치가 켜진 적이 있다. 바로 비뱅이 그린 파스텔 톤의 이탈리아 풍경을 보고서였다. 피렌체의 골목 사이로 두오모 성당이 보이고 근사한 곤돌라가 관광객을 태우고 베네치아를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었다. 2017년 우리 가족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두 아들이 성인이 된 후 처음 가는 가족 여행이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타지에서 시소처럼 엇갈리게 살다 보니 함께 긴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마침 그해 여름 동시에 한 달을 비울 수가 있었다.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낙원 1위’인 아말피 해안과 토스카나의 농가 민박 아그리투리스모 등에서 보낸 여름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로마, 르네상스가 꽃핀 피렌체, <최후의 만찬>이 있는 밀라노, 동화 같은 베네치아 등 모든 일정이 꿈만 같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여행을 생각할 때면 늘 행복 스위치에 불이 켜지는데 비뱅의 그림을 보고 바로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여행하던 날들이 떠오른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피렌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좋다. 너무 좋아”를 연발했다. 그때 봤던 두오모 성당과 조토의 종탑, 여행객을 태우고 지나가던 마차가 비뱅의 그림 속에 그대로 담겨 있어 더욱 친근감이 느껴진다. 비뱅이 그린 베네치아의 곤돌라 풍경 역시 내 추억을 떠오르게 했는데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고 사랑스러운 그림이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이 “와,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세상이 있지!”였으니 비뱅의 동화적인 표현은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린 셈이다.


그런데 비뱅이 이 그림을 이탈리아에 가서 그렸을 리는 없을 듯하다. 아마도 앞의 다른 그림이 그랬듯 이탈리아에 직접 간 것이 아니라 엽서나 잡지의 사진을 보고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요즘은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었지만 그 시절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비뱅은 안 되는 일을 푸념하는 대신 다른 방식의 여행을 꿈꿨다. 바로 그림이었다. 어쩌면 넉넉지 못한 형편의 비뱅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비현실이었을지 몰라도 캔버스라는 상상의 공간에 표현된 동화적인 풍견은 현실의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비뱅이 이탈리아 여행을 갔는지 가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이탈리아를 그리며 행복했고 우리는 비뱅의 그림으로 행복해졌으니 그것으로 감사한 일 아닌가? 인생에서 행복해지는 비결은 행복한 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든, 캔버스든 어디에든 기록해 행복의 빛이 희미해질 때쯤 꺼내 보는 것이다.



꿈은 행복이다

열심히 달려온 인생길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픈 청춘을 보냈거나 어쩌다 꿈을 놓친 사람들은 그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어느 날 내게도 그 소리가 조금씩 들리면서 꿈에 관한 소리가 깊어질 무렵 파리의 우체부 화가 비뱅을 만나게 되었다.


비뱅의 그림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주류층의 화풍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보는 사람이 저마다 갖고 있는 소중한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그의 순수한 그림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마음속 아이와 만나며 신기하게도 가슴에 용기의 불씨가 조금씩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평생 우체부로 산 비뱅이 전업 화가가 된 것이 그가 퇴직한 후란 사실은 내 가슴을 더 뛰게 만들었다.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위해 비뱅과 만나며 매 순간 많은 위로를 받았다. 젊은 시절의 꿈과 멀어졌던 나는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때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비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아울러 진정성과 꾸준함이 타고난 재능보다 더 큰 동력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만약 비뱅이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 쓰느라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그의 그림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뱅에게 그림이란 삶의 동기였지 목표가 아니었다. 즉, 그림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린 것이 아니라 그림이 곧 삶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비뱅은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았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는 꿈을 이야기하며 자란다. 하지만 누구나가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런 우리에게 비뱅은 자신의 그림과 인생을 통해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준다. 그러니 지금 당장 여건이 안 된다거나 부족하다고 해서 섣불리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행복인 삶, 그것이 비뱅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인생의 비밀이다. 또 꾸준함은 언젠가 재능을 이긴다는 사실도 말이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소박파 전시가 개최되어 비뱅의 작품을 직접 볼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그럼 가장 먼저 전시장으로 달려가서 환한 목소리로 이렇게 인사를 할 것이다.


‘봉주르, 비뱅. 당신은 행복한 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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