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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저   자
박근호
출판사
필름
가   격
14,800원(200쪽)
출판일
2020년 06월
도서정보


■ 책 소개


“비가 그치면 떠오르는 무지개처럼
당신의 삶도 무지개가 되어 빛나길”


“산다는 게, 너를 사랑한다는 게 사뭇 닮았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살아가는 것이 곧 사랑하는 것임을, 저자의 글을 통해 깨닫는다.


빈곤, 가난, 궁핍이 박근호 저자의 또 다른 이름이었지만, 당신의 손을 더욱 꽉 잡을 수 있어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글은 우리의 마음을 깊게 울리며, 따뜻한 온도와 감성으로 어루만져준다. 또한 깊고 처절한 감정을 마치 제삼자가 한 걸음 뒤에 서서 전하듯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어 온전히 이야기 안에 머무르게 한다.


사랑을 잃고, 사람을 잃고, 시련과 우울감에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아주 찬란한 시절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아무리 세차게 비가 퍼부어도 언젠가는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삶 역시도 이내 무지개가 되어 빛날 것이다.


■ 저자 박근호
9월 1일생.
드라마 촬영지에서 태어나고
김포에서 자랐다.
잠시 살았던 원통리를 그리워하며
자신이 태어난 시간을 알고 싶어 한다.


■ 차례
작가의 말


1부
우리가 만나는 곳 | 여전히 미인 | 첫눈 | 남대문 시장 | 골목길 | 이상형 | 뒷모습 | 새벽 | 잠 | 축사 | 사람 | 사랑의 방식 | 아버지를 위한 기도 | 안개 | 종각역 | 꽃 | 갈남항 | 내 사랑 | 검둥이 | 누군가의 이름


2부
아픔의 정도 | 인사 | 비애 | 너를 좋아하는 일 | 오랜 습관 | 정아 | 예술가의 죄목 | 가을 | 내가 아는 사랑 | 포장마차 | 삼척 | 만일 | 서울역 | 경험 | 만약에 | 가장 사랑했던 사람 | 그때의 그 눈빛 | 흉터 | 사계절 한 사람 | 나를 위한 사람 | 꿈 | 무음 | 편지 | 외로움 | 사랑과 이별 | 태어난 이유 | 우리의 취향 | 나는, 너는 | 여인숙 | 장례식 | 목적지


3부
포옹 | 사랑해요 | 다짐 | 당신의 어깨 | 전하지 못한 말 | 낡은 필통 | 모퉁이 가게 | 바다 | 호수 | 소국 | 두 번째로 행복한 일 | 여행 | 허무함과 낭만 사이 | 뒤늦게 도착한 그리움 | 동행 | 오늘 | 떠나고 남은 것 | 어른 | 내 모습 | 일상 | 이유 | 유일한 축복 | 말 | 대나무 숲 | 찬란한 시절 | 이해하지 못하던 말 | 나이 | 버거웠던 시절


 



도서요약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우리가 만나는 곳

나는 대학교를 두 번이나 자퇴했다. 이유는 기껏 들어갔더니 맞지 않아서였다. 고등학교도 별로 다니고 싶지 않아 했던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져서였다. 나와는 다르게 평범한 모습으로 공부하는 또래 친구들이 부러웠다. 열아홉 살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도 평소 공부의 끈을 아예 놓고 살던 사람은 아닌지라 빠르게 적응했다. 주변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기도 했고 눈앞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제법 공부할 맛이 났다. 그렇게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조금이라도 닿아볼 수 있는 서울 4년제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니면 다닐수록 나와 맞지 않았다. 얼추 크기는 맞았으나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닌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무엇을 배워도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아서 고민하던 찰나 집에 일도 생겼다. 겸사겸사 대학교를 자퇴했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났다. 당시 만나던 여지친구 부모님께서 무엇을 하든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우리 누나도 무엇을 하든 학교 다니면서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교에 다시 들어갔지만 여전히 아닌 곳은 아니었다. 또다시 자퇴했다. 그 뒤로는 학업에 대한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시작하면 결실을 보아야 하고 꿈을 위해 손을 뻗었으면 무언가라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엄청난 성과다. 대학교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덕분에 학교를 나와야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내 리스트에서 지워졌다. 선택의 폭이 훨씬 좁아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할 수 있었다.


대학교를 준비하는 수험생도, 어딘가에서 다른 시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삶에 저녁이 없어져 버린 사람도, 미래를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사람도, 책임감 때문에 나를 잃어버린 사람도, 우린 모두 다 젊다. 그러니 가능한 한 많은 곳에 내리고 가능한 한 많이 울고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하길 바란다.



그날은 누워만 있었다. 열이 40도까지 오르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누워서 잠을 자는 일뿐이었다. 생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봤으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가려고 차 열쇠를 들었지만 운전을 할 자신이 없었다. 문앞까지 기어나가 병원으로 가지도 못하고 그곳에서 잠시 잠들었다. 바닥의 차가움이 이상하리만큼 춥게 느껴졌지만 시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에 있는 한 알 남은 종합감기약을 먹는 것이었다. 정신을 약간 차리고 침대에 누워 누군가 집으로 들어와 약을 사다 주기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때마침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온종일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보이는 집안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내 방문을 여셨다. 아버지께서 급하게 나가 사다 주신 약을 먹고 옷을 벗었더니 아주 약간은 숨쉴 만했다.


가만히 누워 온종일 불이 켜지지 않았던 방안을 들여다봤다. 몇 가지 생각이 끓는 머리 사이로 스며들어왔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아픈 것 같았다. 아프면 주변에 고마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다. 업무 연락과 일정을 조율해줄 수 있냐는 연락, 무수히 많은 연락 중에 종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나를 걱정해주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무런 답장도 하지 못할 만큼 머리가 뜨거웠지만, 다음 날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그 정신에도 알람은 맞춰야만 했다. 현대인들은 아프고 싶어도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하는 삶을 사는구나 싶었다.


불현듯 다른 생각도 났다. 속상한 일이 많을 때마다, 그리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마다 습관처럼 잠을 청하던 사람. 그를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잠은 생각보다 많은 고통을 잊게 해 준다는 걸. 어쩌면 인간이 밤에 잠드는 건 하루가 너무 고달파서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우린 잠에 들 것이다.



종각역

너에게 일어날 일이니 너무 놀라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고 듣거라. 너는 나이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네 또래 녀석들은 술 마시고 놀 것이고 또 누군가 깎아주는 과일을 먹을 동안 너는 끼니를 걱정할 것이다. 일을 해야 할 것이고 살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이며 예술을 사랑한다는 죄로 방안에 박혀 영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너는 싸우고 싶을 것인데 그건 이루지 못할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네가 맞고 있는 걸 손에 잡히는 눈만큼도 좋아하지 않을 테니 하늘이 말릴 것이다. 너는 노래를 하고 싶을 것인데 열두 달 중에 석 달은 목소리를 잃을 것이다. 너는 땀을 흘릴 수도 없으며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석 달을 살 것이다. 꽤 자주 그럴 것이다.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몇 번의 큰 이별을 할 것이다. 그때 한 줌도 남김없이 울거라. 다음에 누군가 다가왔을 때 먼저 안아주는 법을 배울 것이며 사랑을 자세히 할 줄 알게 될 것이다.


네 옆에 있는 사람이 많이 아플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너는 병원으로 가야 할 테고 계단에 앉아 울 것이다. 가끔을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인데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 그냥 울 것이고 울음이 그치면 집으로 돌아가 노래를 만들 것이다. 허나 너는 그 노래를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하는 삶을 살 것이다.


자주 혼잣말이 마음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그 문장을 기억하고 적을 것이며 어떨 때는 그 말에 멜로디를 붙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해 줄 것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 않아도 너는 그 자체를 사랑하니 쓰던 시를 마저 쓰거라. 어떤 동생은 형이 이상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알던 네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쓰던 시를 마저 쓰거라. 그들은 너를 모른다. 네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다.


너는 가난할 것인데 돈에 눈이 먼 사람이 되진 않을 것이다. 시인이 되고 싶던 그 어린 마음을 잊지 말거라. 먼 훗날 네가 사랑하게 된 시인과 악수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쓰던 시를 마저 쓰거라. 모든 글자가 지워지고 단 한 마디만 해야 한다면 당신이 당신을 믿는다면 결국 어떻게든 되고야 말 것이라는 말을 하겠다.



아픔의 정도

상처의 크기와

아픔의 정도는 달랐다

어디에 쓸리었는지도 모르는 채

티끌만큼 가진 손등이 너무 쓰라려

며칠을 어찌할 줄 몰라 했지만

내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포장마차

그곳을 처음 찾아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포장마차가 가고 싶었던 어느 날, 몇 해 전의 기억을 더듬어 신촌으로 향했다. 이십 대 초반일 때만 해도 신촌에는 포장마차 거리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신촌까지 가는 직행버스 정류장 근처였다. 여전히 그곳에 포장마차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지만, 그곳은 깨끗한 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떡볶이를 파는 주변 상점에 술 마실 수 있는 포장마차를 아시느냐고 여쭤보았더니 알려주셨던 곳.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줄곧 그 포장마차로 술을 마시러 갔다. 음식도 맛있고 양도 많아서 저녁밥처럼 먹기에도 좋았다. 그 곳으로 간 횟수는 많았지만 실제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 건 몇 차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갔을 때 닫혀 있는 날이 많았다. 오랜만에 문이 열려있었던 어느 날, 반가운 마음에 평소 건네지 않는 농담을 이모님에게 건네기도 했다. “저번에 왔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울면서 다른 곳으로 갔어요.” 이모님은 아파서 그날 하루 쉬었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


같이 온 동료들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자 이모님은 내게 오시더니 담담히 이야기하셨다. “다음 달까지만 할 것 같아. 부지런히 와.”


영업을 그만 두시는 이유가 건강상의 이유인지, 허가의 문제인지 알 수 없었으나 우리가 있었던 두 시간 동안 그 곳에는 단 한 명의 손님도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의 구석을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하루가 다르게 새것이 나온다. 낡은 것은 허물고 더 새롭고 더 좋은 것을 짓는다. 사람이 없는 곳은 사람이 계속 없어지고 이미 발자국이 찍힌 그곳만 사람이 넘친다. 그것 또한 의미 있다. 다만 모든 걸 갈아엎진 말아야 한다. 누군가 그곳으로 간다고 모두 그곳에 가진 말아야 한다.



서울역

햇빛에 얼굴이 그을려도

온기가 그리운 사내는

해를 향해 누웠다


돌바닥 위가 마룻바닥이라도 되는 듯

편히 자는 그의 얼굴에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일곱의 모습이 남아 있다


모퉁이를 돌면 건물 외벽이 더럽다는 이유로

밧줄 하나에 몸을 묶고

건물 옥상을 닦는 이들이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눈빛에 한때가 담겨 있다


그들도 아버지였고 아들이었다

노동자였으며 일꾼이었고 희망이었다

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다


누구도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구도 모든 걸 포기한 채 살고 싶어 하지 않지만

서울역은 그랬다



나를 위한 사람

세상에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 상대보다는 내가 우선이고 우리보다는 내가 더 우선인 사람들.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핍으로부터 시작된 지나친 욕심.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해본 적 없는 삶. 다룰 수 없을 만큼의 사랑만을 받아온 지난 시절. 세상 무엇도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기적이라는 것도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다. 그의 반대 성향인 자신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이기적인 것만큼 이것 또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이기적인 사람과 타인을 더 생각하는 사람 둘 중에 하나밖에 선택하지 못한다면 나는 후자를 고르겠다. 정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좋자고 무엇을 선택해서 혼자 많이 갖는 것보다 조금 덜 갖더라도 상대방 몫을 챙겨주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항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어차피 모든 건 다 사람 때문이라지만 내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남을 생각하는 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누군가 내게 해줬던 한 마디가 있었다. “어차피 사람들 알아서 잘 살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나쁘고 이기적이고 못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은 늘 자기가 겪는 일이 가장 힘들며 우린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들 알아서 잘 산다는 말이 맞다.


이젠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 가끔은 다른 사람 생각 그만하고 나부터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내가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의 시작은 나니까. 이제는 조금씩 나를 위한 사람이 되어 볼까 한다. 그래도 확실한 건 나를 위한다는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싶진 않다.



목적지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떤 낯선 곳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단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물었단다. 그곳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혹시 아십니까. 답을 한 사람의 정체가 뱃사공이었는지 그저 낯선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걸리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런 답을 했단다. “얼마나 걸릴지는 잊어버리고 가시오.”


어디로 가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 그곳은 먼 길이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를 까마득한 곳.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고 가야 할 만큼 먼 곳. 우린 모두 여행을 하고 있다. 당신도 나도 아득히 먼 곳을 향해 가고 있다. 누군가의 목적지는 행복일 것이고 누군가의 목적지는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며 누군가의 목적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일 것이다. 모든 곳에 들릴 수도 있고 취향에 맞춰 어떤 역에는 내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모두 여행자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무섭다. 불빛 하나 없는 집. 깊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만큼 진한 바다. 보이지 않는 미래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사람 마음처럼 말이다. 우린 무서운 것 앞에서 그것을 조금은 미리 경험하고 싶어 한다. 가보지 않는 곳의 대략적인 느낌을 얻고자 한다. 그도 그런 까닭에 그곳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봤을 것이다.


우리 삶도 영화처럼 예고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도 예고편이 있어서 우리의 이별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갔던 그 길이 내가 걸을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예고편이 알려주길 바라기도 했다. 잃을까 두려웠고 놓칠까 두려웠고 아플까 두려웠다. 세 개를 얻는 것보다 하나를 잃는 게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게 삶이라지만 그 어떤 예고편도 존재하지 않는다. 삶을 여행하는 우리 앞에 얼마나 많은 것이 존재할까. 얼마나 많은 길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바람과 얼마나 젖은 땅을 걸어야 할까.



다짐

내가 급하다는 이유로

이름 모를 이의 종이를 뺏어

숫자를 적는 사람이 되진 않겠다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어여쁜 마음 하나를

잘못 적은 종이처럼 구기는 사람이 되진 않겠다


내리는 비가 무서워

남의 우산을 탐하거나

숨을 곳만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진 않겠다


나보다 그 사람이

몇 공깃밥을 덜 먹었다 해서

처음 보는 이에게 말을 놓는 사람이 되진 않겠다


사랑을 모르고 용서를 모르고

이해를 모르는 사람이 되진 않겠다



모퉁이 가게

작은 가게 하나가 있습니다. 그곳의 주인은 여럿인 곳이죠. 매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주인은 아닙니다. 그곳을 만들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부은 사람만이 주인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입니다. 백수 생활을 오래 한 친구 녀석이 마음이 적적해서 그냥 들리기도 합니다. 퇴근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으로 매일 같이 오는 은행원도 있습니다. 그 은행원 손님이 말하길 연애랑 운동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답니다. 주인 녀석에게는 그런 말을 뱉으시고 정작 그 손님은 매일 저녁 게임을 하러 가십니다. 그게 아리러니한 주인 녀석은 요즘 운동은 잘 하고 계시냐는 질문을 가끔 던지기도 한답니다.


모든 건 마음이 제일 중요하답니다. 커피를 만드는 일도,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일도, 글을 쓰는 것도 마음이 중요하답니다. 물론 기술도 필요하겠지요. 커피를 만들 때 무수히 많은 기술이 필요하듯이, 글을 쓸 때도 무수히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요령이 필요하겠지만 그곳보다 마음이 우선이랍니다.


이 사람의 하루를 이 한잔이 안아줬으면 싶은 것. 자주 보는 손님의 끼니가 궁금한 것.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것. 사랑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머리를 신경 써 만지던 그 마음. 마음이 가장 애틋하고 가장 소중하답니다. 마음. 이 두 글자만 소리 내어 읽어도 어딘가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말이 수두룩하다. 내가 잊지 못하는 말은 괜찮다. 그쯤은 이겨낼 수 있다. 내가 걱정되는 건 내가 뱉은 말이다. 과거의 나는 말을 조절하는 힘이 약했다. 잘 표현하지 못하던 성격 때문에 큰 아픔을 겪고 난 뒤에는 일단 뱉고 싶은대로 뱉었다. 내가 안 아프기 위해서 선택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표현의 깊이가 깊었던 터라 아름다운 말을 뱉는다면 정말 아름다운 말을 뱉었지만 그 말이 날카로워졌을 땐 그 무엇보다 날이 섰을 것이다.


내 기억을 돌이켜보면 말에 상처를 받을 때 대부분 말을 한 사람은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는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나에게서 날카롭게 나간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나는 모르는 채 상처를 냈을 거 아닌가. 나는 그가 상처 입은 줄도 모르고 그 위에 또 뜨거운 무언가를 떨어뜨렸을 것 아닌가.


이 글을 통해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고자 한다. 내 가슴을 찢었던 사람도 내게 와서 사과를 건네고 말로 다리를 베었던 나도 누군가에게 가서 무릎 꿇고 사과를 건네고 싶다. 말만큼 아픈 것이 없을 텐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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