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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저   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역:이수경)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가   격
16,000원(308쪽)
출판일
2020년 04월
도서정보


■ 책 소개


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후보 선거 용지가 48.1cm에 이른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낸 탓이다. 사실 숫자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진짜 문제는 각각의 목소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경고장이자 편지는 매우 시의적절한 때에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상반된 두 가지 디스토피아, 즉 과도한 중앙집권화와 분열로 동시에 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민족을 끊임없이 호명하고 자극하며 동시에 국민 통제를 강화하는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정 정체성에 대한 신념으로 뭉쳐 외부와 담을 쌓은 정체성 집단이 출현하면서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공통의 합의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류의 진보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정신이 쇠퇴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향을 모색한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을까.’ 후쿠야마가 찾고자 하는 답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학교 프리먼 스포글리 국제학연구소Freeman Spogli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의 선임연구원이며 같은 대학 민주주의·발전·법치주의 센터Center on Democracy, Development, and the Rule of Law의 책임자다.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과 조지메이슨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 부국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정치 질서와 정치 쇠퇴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정치 질서의 기원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 《트러스트Trust》,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the Crossroads》 등이 있다.


■ 역자 이수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했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인문교양, 경제경영, 심리학, 자기계발, 문학, 실용 등 다양한 분야의 영미권 책을 우리말로 옮겨왔다. 옮긴 책으로 《친밀한 타인들》,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통치의 기술》, 《뒤통수의 심리학》, 《영국 양치기의 편지》, 《완벽에 대한 반론》, 《멀티플라이어》, 《소소한 즐거움》, 《마스터리의 법칙》, 《블루오션 전략 확장판》, 《앱 제너레이션》 등이 있다.


■ 차례
서문 
 
1장 존엄의 정치 
2장 영혼의 세 번째 부분
3장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4장 존엄성에서 민주주의로 
5장 존엄성 혁명 
6장 표현적 개인주의 
7장 민족주의와 종교 
8장 잘못 배달된 편지
9장 보이지 않는 인간
10장 존엄성의 대중화 
11장 정체성에서 정체성들로 
12장 국민 정체성 
13장 국민의식을 위한 내러티브
14장 무엇을 할 것인가 


 



도서요약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존엄의 정치

세계 정치는 2010년대에 진입한 이후 급격하게 변화했다. 197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말한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 기간에 자유민주주의는 세계 대다수의 나라에서 기본 정치 형태가 되었다. 비록 아직 현실적인 정착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도 적어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만은 가득했다.


정치 제도 측면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한편으로는 국가들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증가하면서 세계화가 진행됐다. 이런 세계화를 뒷받침한 것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과 이를 계승한 조직인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등의 자유주의 경제 체제였다. 이 기간에 국제 무역 및 투자 영역 성장률은 글로벌 GDP 성장률을 앞질렀고 세계 경제의 번영을 주동한 주요 동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경제 성장의 수혜를 받은 것은 주로 고학력 엘리트층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경제 성장이란 곧 세계 각지로 이동하는 재화와 자본, 사람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커다란 사회 변화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과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살던 사람들이 대도시에서 생활하면서 TV는 물론 휴대폰으로 인터넷까지 이용하기 시작했다. 제조업은 유럽과 미국을 떠나 동아시아를 비롯해 노동력이 싼 지역들로 꾸준히 이동했다. 이와 동시에 점차 서비스 중심으로 변해가는 새로운 경제에서 여성들이 남성을 대체했으며, 한편에서는 스마트 기계들이 저숙련 노동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개방된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향해 돌진하던 추진력은 2000년대 중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그 흐름이 반전됐다. 이런 변화는 두 가지 금융 위기와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2008 미국 서브프라임(subprime) 시장에서 초래돼 이후 대침체로 이어진 금융 위기, 다른 하나는 그리스의 파산 위기로 유로화 및 유럽 연합이 위협을 맞은 금융 위기다. 두 시기 모두에 엘리트적 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불경기와 높은 실업률이 발생하고 전 세계 수많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소득이 하락했다.


민주주의 이론의 세계적 석학 래리 다이아몬드는 이런 금융 위기 이후의 세계를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말로 규정했다.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민주주의 국가 숫자가 감소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다수의 권위주의 국가들은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을 공고히 하며 한층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헝가리, 터키, 태국, 폴란드 등 1990년대에 성공적인 자유민주주의 나라처럼 보였던 많은 국가가 어느새 다시 권위주의적 통치로 되돌아갔다.


20세기 정치에서는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좌파-우파의 스펙트럼이 형성된바, 좌파는 더 확실한 평등을 요구하고 우파는 더 많은 자유를 요구했다. 진보 정치는 노동자와 노조를 중심으로, 그리고 더 나은 사회 보장과 경제적 재분배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반면 우파는 정부의 크기를 줄여 경제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 부문을 확대하는 것에 주력했다.


모욕적 대우에 대한 분노는 민주 국가들에서도 강력하게 등장했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퍼거슨, 볼티모어, 뉴욕 등 미국 여러 도시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경찰에 의해 사망한 일련의 사건을 배경으로 일어났으며, 얼핏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는 경찰 폭력의 희생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세계 사회에 호소했다. 과거에는 뚜렷한 차별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트렌스젠더들도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많은 국민은 사회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덜했던 과거의 좋은 시절을 떠올리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기를 소망했다.


정체성은 민족, 종교, 민족성, 성적 성향, 성별 들을 토대로 매우 다양하게 형성되며 이들 정체성은 모두 정체성 정치라는 공통된 현상이 표출되는 매개물이다. ‘정체성(identity)’ 과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라는 용어는 상당히 최근에 등장했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사회적 범주나 역할을 지칭하고, 어떤 경우에는 개인에 대한 기본 정보를 의미한다.


정체성은 자신의 내적 자아, 그리고 그 내적 자아의 가치나 존엄을 충분히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적 규칙 및 규범을 가진 외부 세계, 이 둘을 구분함으로써 자라난다. 인류 역사 내내 개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불화하고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나 비로소 현대에 와서야 개인의 진정한 내적 자아는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외부 사회는 그 가치를 평가할 때 구조적 문제와 불공평성을 갖고 있다는 시각이 확립됐다.


내적자아는 인간 존엄의 기본 토대다. 그런데 그 존엄의 성격은 가변적인 것으로서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과거 여러 문화권에서는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존엄을 지닌다고 여겨졌다. 예컨대 기꺼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이 대표적이다.


인간 내면의 존엄감은 인정을 추구한다. 만일 다른 이들이 내 가치를 공적으로 인정해주지 않거나, 또는 더 나쁜 경우 나를 폄하하거나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존감은 타인의 존중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인정을 갈망하기 때문에 현대의 정체성 감각은 신속하게 정체성 정치로 진화하며, 이 정체성 정치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공적으로 인정받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정치는 민주주의 혁명이나 새로운 사회운동,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목격되는 정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치 투쟁들의 상당 부분을 아우르는 현상이다. 헤겔은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인류 역사를 끌어가는 궁극적인 원동력이자 근대적 세계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열쇠라고 주장했다.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현대의 정체성 개념에는 세 가지 다른 현상이 결합돼 있다. 첫째는 인정을 갈망하는 인간 본성의 보편적 측면인 투모스다. 둘째는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의 구분, 그리고 외부 사회보다 내적 자아를 도덕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시각이다. 셋째는 서서히 발전한 존엄에 대한 관점으로, 이 관점에서는 인정이 한정된 계층의 사람들이 아니라 마땅히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존엄의 확대와 보편화는 자아를 찾으려는 사적인 탐색을 정치적인 프로젝트로 전환시킨다. 서구 정치 사상에서 이러한 전환은 루소 이후 세대에서 일어났으며 이때 중심적인 역할을 한 철학자는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헤겔이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는 순수한 상태로 살고 있던 중에 뱀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이브를 유혹한다. 아담과 이브는 그 열매를 먹자마자 자신들의 벌거벗은 몸을 의식하고 부끄러움을 느껴 가리려고 시도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을 어긴 것에 대한 벌로 두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그때부터 인간은 이 원죄를 이어받아 타락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기독교의 존엄성 개념은 이러한 도덕적 선택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간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존재다. 인간은 선한 일을 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동물은 본능에 따라 살게 때문에 선과 악을 구별할 줄 모른다. 인간은 선택 능력을 갖고 있어서 동물보다 높은 지위를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을 일부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선택 능력은 하나님의 그것보다 불완전하며 이는 인간이 죄를 지을 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기독교 전통에서는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평등하다. 즉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선택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인 것이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과 <윤리형이상학 정초> 등의 저작에서 존엄성에 대한 이 같은 기독교적 관점의 세속적 버전을 제시했다. 그는 ‘선의지(good will)’를 제외하고는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선의지란 곧 올바른 도덕적 선택을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칸트는 이를 종교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도덕적 선택은 관념적인 이성의 법칙을 따르는 능력에 근거한다. 인간은 물리적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선택을 할 수 있는 도덕적 행위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수단으로 향하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 대해야 한다. 칸트에게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되는 것은 선의지이며 인간은 참된 행위자 또는 다른 어떤 원인에 의해 야기되지 않는 근본 원인이다.


헤겔도 도덕적 선택과 인간 존엄성 사이의 이런 연결 관계를 받아들였다. 그는 인간이 단순히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이성적인 기계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행위자라고 본다. 그러나 루소와 칸트와 달리 헤겔은 인간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 도덕적 행위 능력의 인정을 그 중심에 위치시킨다.


그는 <정신현상학>에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역사가 시작될 무렵에 있었던 최초의 인간은 영토나 부를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낳고 주인은 노예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유일한 합리적 형태의 인정은 결국 주인과 노예가 자신들이 공유하는 존엄성을 인정하는 상호 인정이다.


19세기 초에 이르면 현대의 정체성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들 대부분이 나타난 상태가 된다. 즉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의 구분, 기존 사회 제도보다 내적 자아를 높이 평가하는 것, 내적 자아의 존엄이 그것의 도덕적 자유에 달려 있다는 관점, 인간은 누구나 그런 도덕적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견해, 자유로운 내적 자아를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것이다.


헤겔은 현대 정치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 한 가지를 지적했다. 바로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에서 목격된 거대한 열정은 결국 기본적으로 인정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사실이다. 내적 자아는 단순히 개인적 자기 성찰이라는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내적 자아의 자유가 권리와 법률로 구현돼야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200년 동안 전개된 민주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추동한 힘은 자신의 정치적인 인격성을 인정받기를, 자신이 정치적 힘의 행사에 참여할 능력이 있는 도덕적 행위자임을 인정받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었다.


다시 말해 노예는 주인에게 저항해 반기를 들게 된다. 그리고 소수의 존엄만 인정하는 세상을 모두의 존엄을 똑같이 인정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 세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정체성에서 정체성들로

1960년대에는 세계 여러 선진국에서 일련의 새로운 사회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미국에서 일어난 인권 운동은 독립선언문에 담겨 있으며 남북 전쟁 이후 헌법에 추가된 인종적 평등이라는 약속을 이행할 것을 국가에 요구했다. 이후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여성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외쳤으며, 이는 노동 시장에 여성이 대량 유입되도록 자극한 동시에 그런 대량 유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현상이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1968년 5월 프랑스의 68혁명 이후 이와 유사한 사회 운동이 급증했다. 과거 프랑스의 좌파는 강경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됐으며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를 비롯한 많은 유명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동조했다. 하지만 68혁명 당시에는 그런 주제들 대신에 미국을 뒤흔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여러 사회 이슈가 전면에 부상했다. 즉 소수자 및 이민자의 권리, 여성의 지위, 환경 문제 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프랑스 전역을 휩쓴 학생 시위와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은 비슷한 시기에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반도 등지에서 일어난 시위들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운동들은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시민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이상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 사회들은 스스로 표방하는 그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각자의 인격과 능력에 따라 평가받지 못하고 집단의 구성원인지 여부에 관한 특정한 가정들을 토대로 평가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미국에서는 부끄럽게도 이런 종류의 편견이 오랫동안 공식 법규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흑인 아이들을 백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거나,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성에게는 선거권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법규들이 바뀌어 학교에서 인종차별 정책이 사라지고 여성도 선거권을 얻게 된 후에도 사람들이 집단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차별과 편견, 무시라는 정신적 짐은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정체성 정치를 채택한 것은 이해할 만한, 그리고 필요한 일이었다. 각 정체성 집단들의 체험은 서로 다르고, 그런 만큼 해당 집단에 맞는 고유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그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도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투 운동이 성희롱 및 성폭력을 세상으로 끌어낸 이후에야 많은 남성이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정체성 정치는 관련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문화와 행동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또한 정체성 정치는 보다 구체적인 집단으로 눈을 돌려 그들이 겪는 부당함에 주목함으로써 문화 규범과 실질적인 공공 정책에 반가운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해당 집단들이 더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으로 인해 미국 전역의 경찰들 사이에 소수 집단 시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강한 자각이 형성됐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이해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와 관련된 기존 법규의 취약점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따라서 정체성 정치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한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것은 불공평과 부당함에 대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반응이다. 하지만 정체성을 특정한 구체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주장하기 시작할 때 정체성 정치의 문제점이 부각된다.


좌파와 우파의 일부 운동가들이 믿는 바와 달리 정체성이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정체성 형성은 경험과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정체성은 좁은 관점으로도, 넓은 관점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사회는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숙고와 합의를 통해 공동의 목표도 달성해야 한다. 좌파와 우파 모두 점점 더 좁은 집단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어젠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소통의 가능성과 필요한 집단행동의 가능성을 위협한다.


이에 대한 해법은 정체성이란 개념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은 현대인들이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에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해법은 현재의 자유민주 사회가 지닌 실질적인 다양성을 고려하는 보다 넓고 통합적인 국민 정체성을 정의하는 일이다.



국민 정체성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 이후 시리아는 끔찍한 내전으로 치달아 지금까지 약 4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난민기구(UN Hight Commissioner for Refugees)의 발표에 따르면 480만 명이 시리아를 탈출했고(이 중 100만 명은 유럽으로 향했다) 660만 명이 시리아 내에서 피난민이 됐다. 시리아 내전의 영향으로 이웃 국가인 터키,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의 정치도 불안정해졌고 유럽 난민 사태가 유럽연합을 뒤흔들었다. 시리아는 한 나라의 분명한 ‘국민 정체성(national identity)’이 부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약한 국민 정체성은 그동안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 주요 문제였다. 예멘과 리비아는 실패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줬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소말리아는 내란에 시달려왔다.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이들 나라보다는 안정된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 여전히 약한 국민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에 휩싸여 있다. 그나마 안정이 유지되는 것은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돌아가면서 정권을 잡고 국민들을 약탈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남은 것은 극심한 부정부패와 빈곤 경제 발전 실패뿐이다.


반면 일본과 한국, 중국은 근대화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도 확고한 국민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 나라들은 19세기에 서구 열강들이 몰려들기 전 과거부터 국민 정체성이 강했다. 이 세 나라가 20세기와 21세기 초에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의 일부는, 국제 교역과 투자에 문을 열어젖히는 동안 자신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내적 질문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 정체성의 출발점은 한 나라의 정치 체제(민주 체제든 아니든)가 지닌 정당성에 관한 공통된 믿음이다. 국민 정체성은 공식적인 법과 제도에 담길 수 있다. 예컨대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지, 또는 어떤 언어를 나라의 공식 언어로 삼을 것인지 등을 법과 제도로써 규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연원이 어디인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 공통된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가, 공동체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등에 대한 인식이 여기에 포함된다.


현대사회에서 다양성(즉 인종, 민족, 종교, 성별 등을 토대로 하는 다양성)은 실제 삶의 현실인 동시에 하나의 가치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성은 사회에 이롭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는 흥미로운 여러 관심사와 자극물을 제공한다. 또한 다양성은 회복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환경생물학자들은 단일재배 작물이 유전적 다양성의 부족 때문에 병충해에 매우 취약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세계 곳곳에서 종의 다양성 감소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그것이 장기적으로 생물체의 회복력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양성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은 매우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돼 있지만 그런 다양성이 창의성과 회복력 대신에 폭력과 갈등을 낳고 있다. 케냐의 다양성은 여러 민족 집단들 간의 분열을 심화하고 정치 부패를 양산한다.


국민 정체성이라는 말은 이 시기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됐다. 민족에 근거한 배타적인 종족민족주의와 연관 짓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종족 민족주의는 자기 집단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핍박하고 타국에 사는 동족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외국인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국민 정체성이라는 개념 차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국민 정체성이 특정 민족을 강조하고 편협하며 공격적인 비자유주의 특성이 강한 형태를 띨 때 발생했다.


국민 정체성은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의 공존과 번성에 기여하는 공동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축할 수 있다. 인도와 프랑스, 캐나다, 미국은 이와 같은 길을 모색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그런 폭넓은 의미의 국민 정체성을 수립하는 일은 성공적인 현대 정치 질서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유는 물리적 안정 때문이다. 국민 정체성의 부재가 가져올 수 있는 극단적인 결과는 국가 붕괴와 내란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약한 국민 정체성은 국가 안정성과 관련된 다른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큰 정치 단위는 작은 정치 단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며 자신을 더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일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통합되지 않고 독립 국가로 남았다면 영국은 지정학적 무대에서 지난 수세기 동안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도로 분열된 국가는 힘이 약해진다. 바로 그래서 푸틴의 러시아가 유럽 곳곳의 분리 독립 운동에 조용한 지지를 보내온 것이고 정치 분열을 증가시키기 위해 미국 정치에 개입한 것이다.


국민 정체성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통치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통치(즉 효과적인 공공 서비스와 낮은 부정부패)는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국가 관리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만 가능해진다. 제도적으로 부패한 사회에서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자신이 속한 민족 집단이나 종교, 종족, 가문, 정당의 이익을 채우는 데에, 또는 자기 자신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에 공공의 자원을 유용한다. 사회 전체의 이익에 헌신할 의무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 정체성의 세 번째 기능은 경제 발전을 촉진하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 중국의 강한 국민 정체성은 개인의 부 축적보다는 자국의 경제 발전에 집중하는 엘리트층을 낳았다. 특히 급속한 경제 성장이 이뤄지던 초반에 말이다. 이런 종류의 공공 지향성은 발전 국가(development state) 기초였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는 훨씬 드물게 목격됐다.


넷째로, 국민 정체성은 넓은 반경의 신뢰를 만들어낸다. 신뢰는 경제 교환과 정치 참여를 촉진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신뢰의 토대가 되는 것은 비공식적 규범과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형성되는 무형의 자산인 사회적 자본이다.


국민 정체성이 중요한 다섯 번째 이유는 경제 불평등을 완화하는 견고한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커다란 대가족의 일원이라고 느끼면서 서로에 대해 높은 신뢰를 갖고 있으면 소외되고 약한 동료 구성원을 돕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훨씬 더 기꺼이 지지한다.


마지막으로, 국민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존속을 가능하게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과 정부 사이에, 그리고 국민들끼리 맺는 암묵적 계약이며 이 계약 하에서 국민들은 정부가 더 기본적이고 중요한 다른 권리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자유나 권리 일부를 포기한다. 만일 국민들이 같은 정치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느끼지 못하면 그 나라의 체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정체성은 투모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경험할 때는 자부심, 수치심, 분노 등의 감정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만일 국민들이 자부심과 애국심을 갖고서 입헌 정치와 인간 평등이라는 이념에 어느 정도 비이성적인 애착심을 갖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정서적 애착심을 이성적으로만 보면 절망하는 것이 옳아 보일 만큼 사회가 위기를 겪을 때 사회를 지탱시키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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