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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받아들일 때 삶은 더욱 특별해진다

 
 
 
 
저   자
청비쉬엔 (지은이), 김가경 (옮긴이)
출판사
이든서재
가   격
18800
출판일
202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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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가끔은 나를 다시 찾기 위해 잠깐 숨어도 괜찮다”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곤 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점만을 확대 해석하며 점점 위축되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불안과 긴장 상태에 빠진다. 결국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반복되며, 그럴수록 자기혐오와 낮은 자존감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외면하지 말고, 숨고 싶은 마음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상처 입은 내면을 회복하고 다시 나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소수만이 지닌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 저자 창비쉬엔(城閉喧)
심리 치유 전문 작가이자 SNS 채널 크리에이터.

SNS 채널 〈우울증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를 운영하며, 깊은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정신 건강 관리 지식과 치유의 글을 써 왔다. 특히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심리학을 통해 독자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예리한 통찰력과 마음을 치유하는 필력으로 중국의 다양한 SNS 플랫폼에서 100만 명 이상의 팔로워에게 깊은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

■ 역자 김가경  
덕성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어언문화대학에서 수학했다. 국방대학교 국방사업관리학 석사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공군 본부에서 복무 중이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마스터 마인드』 『세계를 점령한 중독 경제학』 『결국 마음먹은 대로 된다』 『식탁 위의 권력 미식 경제학』 『당신의 인생에서 꼭 한 번은 맹자를 만나라』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들어가며 _ 사랑하는 나에게 

Part 1. 때로는 나도 숨어버리고 싶다
· 사실 넌 그토록 너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아니야
· 세상의 문을 열 열쇠는 나에게 있다  
· 중요한 건 꺾여도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
· 아름다운 척하는 윤리적 가치의 함정
· 한없이 작은 세상 속에 사는 우리 
· 고독을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 악몽
· 소외감, 그 처절한 외로움

Part 2. 머릿속의 불행 회로를 멈춰야 해
· 회피형 인격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 남의 비위나 맞추던 인생에서 벗어나려면
· 사회불안 장애는 미지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 당신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감정, 자책
· 모든 생각을 멈춰야 하는 순간
· 거짓의 모래 위에 세워진 ‘자신감’이라는 성(城)

Part 3. 혼자만의 사랑은 이제 그만
· 사랑을 믿지도, 받지도 못하는 겁쟁이
· 감정이 흐르는 대로가 아닌, 현실이 이끄는 대로 
· 애정 결핍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법
· 나는 왜 항상 관계를 망치는 걸까?
·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욕먹을 기회조차 없는 ‘소심남’의 인생 

Part 4. 내면의 힘을 되찾아라
· 결국 넌 너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해 
· 외면과 내면이 마주 보는 효과
· 상실의 힘
· 실수는 인생의 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
· ‘낙관’의 반대편에 서지 마라
·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투의 힘으로

 



도서요약

평범함을 받아들일 때 삶은 더욱 특별해진다


때로는 나도 숨어버리고 싶다
사실 넌 그토록 너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아니야
만약에 ‘이 세상에서 누가 자신을 가장 싫어하는가?’를 겨루는 대회가 있다면 ‘내가 1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 역시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엉망인 사람이라고 여길 때가 있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마다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괴로워하는 극도의 ‘자기 혐오’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인지 그 근원부터 찾아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질병으로 생긴 ‘병약함’,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불우한 유년 시절’, 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두렵고 끔찍한 ‘과거의 실수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타인과의 비교’, 살아오는 동안 받아온 ‘부정’과 ‘억압’, 줄곧 경험해 보지 못한 ‘칭찬’과 ‘인정’, 자신의 부족에서 비롯된 ‘열등감’,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는 ‘죄책감’ 등등 너무 많은 원인이 우리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만들고, 이 마음이 깊어지면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들이 자주 하는 표현이 있다. 이들은 대개 ‘난 중요하지 않아’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양보가 미덕이라는 듯이 항상 다른 사람을 앞세운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난 상관없어”, “난 아무거나 다 좋아”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도 그들은 언제나 가슴 깊이 숨겨두는 혼자만의 사랑을 선택한다. 상대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이 자신의 추함을 비추어 드러나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마찰을 두려워하고, 갈등이 생길 때는 항상 도피를 선택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는 자신에게 “난 자격이 없어”라고 말한다.

사실 그들이 이렇게 표현하게 된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다.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부족해서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과는 함께할 자격이 없다고 느껴서 짝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당하고 부정당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다.

사람은 두려워하는 일이 많을수록 자기혐오감을 느끼기 쉬워져서 고통과 번민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당신은 자신을 정말 그토록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단지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스스로 보호하기를 갈망할 뿐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에 맞추어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당신도 자기 보호를 위해 스스로 비하하며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 칼에 베이면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으면 아픔을 느낀다. 그렇지만 한 사람을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게 할 정도의 상처가 ‘나약함’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커다란 상처를 입었던 사람은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상태가 되어 현실에서 마주하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참담한 처지에 놓인 낯선 누군가를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은 그에게 동정과 위로의 마음을 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자신이라면, 당신은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있는 힘껏 공격한다면, 이는 그 자신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증명이다.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마음은 스스로 거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며 이는 결국 일종의 집념이 되어 간접적으로 ‘자기혐오감’을 증폭시킨다. 그런 부정적 경험들이 쌓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고, 나약하고 열등한 존재로 전락시킨다면 우리는 그 경험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모든 불행이 바꿀 수 없는 과거에서 시작된 것이라 여기는 태도는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 그 시점부터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여, 모든 삶이 여전히 ‘상처받은 아이’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난 피해자일 뿐이야. 그런데 왜 내가 이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는 거지?” 마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종종 던진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책임져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처럼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고,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은 뼛속 깊이 아로새겨져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그 아픈 과거가 설령 자기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한다. 어쩌면 너무 잔인하게 들릴 테지만 자신에게 아픈 기억을 만든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도 되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원망해도 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책임은 직접 감당해야만 한다. 만약 당신이 일평생 자기 연민에 빠져 끝도 없는 고통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도록 자신을 내버려둔다면 이는 자신의 과오가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과오를 범한 사람의 명분을 지지하는 ‘불행의 아이콘’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당신은 반드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자라지 않는 아이’를 스스로 키워내야만 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끔찍하리만치 싫어하는 지난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도려내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용기를 내어 용감하게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생각하는 바를 능동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단기간에 감정을 잘 처리하는 방법을 익히기는 어려울 테지만 다른 사람과의 더 많은 경험을 통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다음 사랑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은 좀 더 성숙해진 태도로 감정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진정한 감정만이 우리 마음의 허전한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 과해보상을 바라는 심리와 허구에 가까운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마음은 당신이 정한 목표에 가까워지는 듯해도 가슴 한구석은 더욱 막막하고 공허한 느낌만 남을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높은 목표를 성취해도 자기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다. 마음이 자라기 시작하면 ‘자기혐오감’이 서서히 줄어들어 마음속의 상처받은 그 아이와 진정으로 작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서 밝은 정신으로 자신의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냉정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다른 낯선 이를 분석할 때처럼 똑같이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하다 보면 언제 어떻게 왜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왜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사실과는 다른, 그 일과 관련되었던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한때 자기혐오감에 빠졌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머릿속의 불행 회로를 멈춰야 해
사회불안 장애는 미지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사회불안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신나는 일이다. 어떤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발표할 차례가 되자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고,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해졌으며,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며 난처했던 적이 있었다. 문득 내 귓가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제부터는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지라도 이렇게 당황해서 덜덜 떠는 상태에 빠질 수는 없어.’ 이 소리가 들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듯이 보였다. 불안한 나의 상태를 거의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긴장을 풀고 미소를 지은 채 남은 발표를 순조롭게 마쳤다.

그 후 나는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발길이 머문 도시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비록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아직 서툴고 어색했지만, 낯선 이들과 교류하는 즐거운 경험을 했고, 이 중 몇몇 사람들과는 개인적 친분도 쌓을 수 있었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사회성은 왜 이렇게 떨어지는가?’라는 의문이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인데 왜 나는 사회 공포증을 갖게 된 걸까? 내 생각에 많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미지수 때문이다.

두려움의 근원은 알 수 없는 ‘미지’에서 비롯된다. 사회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만나는 순간을 위험으로 가득 찬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두려움이 짓누른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수동적 자세를 취한다. 그들에게 있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은 모험을 의미하며,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에 의한 파멸을 의미한다. 이런 연유로 사람을 사귀는 과정에서 극도로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상대방의 의도를 과대해석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상대방을 대신해 나 자신을 얕잡아 본다. ‘그 사람은 왜 말이 없지? 분명 나를 싫어하는 거야. 나랑 말하는 게 재미가 없나?’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어. 난 자격이 없어.’ ‘차라리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게 낫겠어. 난 부정적 에너지가 가득 찬 사람이라 분명 나를 싫어할 거야.’

사회불안 장애가 있으면 낮은 자존감을 기준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때문에 상대방이 분명 자신을 싫어하리라 추측한다. 상대방이 정말로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확인하면 역시나 자신의 느낌이 정확하다고 판단하며 더욱 수동적으로 변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결국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대재앙이 닥쳤다’고 느끼면서 간절히 도망치고 싶어 한다.

나는 과거에 사회불안 장애를 앓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나에게 가장 알맞은 생활방식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자주 보았던 장면은 매번 비슷한 곤경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거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놀라 움찔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어떤 태도로 대할까? 대략적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나의 어떤 행동이 그들의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통제가 가능해진 지금의 상황에서 더 이상 내가 두려워해야 할 일은 없었다. 문득 여태껏 두려워해온 것은 미지의 어둠 그 자체가 아니라 미지의 어둠 속에 있는 자신의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어떤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미지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느끼는 ‘감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든다면 미지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영원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미지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한 번이라도 마주친다면 다음에 조우할 미지의 두려움 속에 처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쩔쩔매지 않을 것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상대방의 성격을 알 수 없다. 낯선 장소에 가면 그곳의 규칙을 모른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요구받았기에 잘 해낼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긴장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단련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상황에 처했을 때 두려워하는 자신을 딛고 과감히 도전하도록 단련해야 한다. 만약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배워서 헤엄을 칠 수 있다면 그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중증의 ‘사회불안 장애’ 환자였던 나는 ‘경청하기’를 시작하면서 변할 수 있었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사람의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점차 알게 되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서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훗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올 때 과거처럼 공황 상태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돌연 이제는 상대방의 느낌을 알 수 있고,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방법도 알고 있고, 이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괴팍한 성미에 수동적인 태도를 고집하던 나로서는 너무나 즐겁고 보람된 변화였다.

우리와 타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대부분 우리 자신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생긴다. 나는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익을 위한 활동에 참가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감사와 칭찬의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굉장히 쑥스럽고 민망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심의 감사 인사를 자주 받다 보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임을 점차 깨닫고 더 이상 민망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다. 용감하게 문을 박차고 나서라. 그러면 당신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얼마나 진실하고 선량한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또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자격도, 타인에게 사랑받을 가치도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혼자만의 사랑은 이제 그만
사랑을 믿지도, 받지도 못하는 겁쟁이
감정에 결함이 있는 사람일수록 친밀한 관계나 사랑에 대해 완벽을 꿈꾼다. 그들은 관계나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기 때문에 신격화하고 이를 신앙처럼 믿는다. 바로 이런 까닭에 그들은 비할 데 없이 나약해진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황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를 ‘행복할 줄 모르는 겁쟁이’라 부르고 싶다. 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다가오면 당황하고 몸을 돌려 도망친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병이다. 몸 어딘가에 채울 수 없는 틈에 숨어서 자신을 가두어 두고 벗어날 줄 모르는 병인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좋아하는 것은 혼자서 일방적으로도 가능한 감정이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 당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용기 있게 그 사람 앞으로 나아가서 두 사람 사이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교집합을 형성해야 비로소 일말의 사랑의 가능성이 생긴다.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겁쟁이에서 상처받아도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은 본디 낭만적이면서도 속되고, 위대하면서도 평범한 것으로 인간들이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산물에 불과하다.

세상 하늘 끝까지 함께 가는 것도 사랑이고, 동네 슈퍼를 함께 가는 것도 사랑이다. 달콤한 밀어도 사랑이고, 화가 났을 때의 다툼도 사랑이다. 낭만적인 장미도, 손수 장만한 음식도 모두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당신은 천상의 사랑을 현실 세계로 내려오게 해야 한다. 진짜로 사랑 그 자체에 빠져서 ‘허망한 사랑을 좇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진정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과거의 나는 주관적이고 순수하며 정신세계의 이상향을 좇는 폐쇄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용기 있게 다가서 가슴속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좋아하는 그 마음이 더 나은 삶을 지향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 힘은 활력과 생명력을 뿜어낸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다면 반드시 상대방에게 그 마음을 알려줘야 한다. 당신 자신이 아무리 엉망진창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좋아하는 그 마음은 티 없이 깨끗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향유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해 보자. 아름다운 사람들, 풍경, 음식,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서 말이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빛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겁내지 말아야 한다.


내면의 힘을 되찾아라
결국 넌 너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해
삶을 포기하려던 한 친구를 도와 다시 그녀의 삶 앞에 데려온 적이 있다. 그 후 그녀는 계속해서 나의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도우려면 끝까지 도와야지.’ 이런 생각으로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주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강구하고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내가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요구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매번 내가 그녀의 답을 찾아준 후에는 약간 호전되는 듯 보였지만, 이내 그녀의 기분은 더욱 가라앉을 뿐이었다. 당시 나는 상대방이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 안의 모든 인내심을 발휘해서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점차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내가 그녀의 증상이 호전되도록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녀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은 것이었다. 그녀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도와주는 것은 문제없지만, 문제가 크건 작건 관계없이 무조건 돕다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사람이 무언가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진 동력을 잃어버린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습관이 생기면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그녀의 해답 찾아주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처음에 그녀는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녀를 돕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나 역시 그녀가 서운해하거나 이를 떨치고 일어서지 못할까 염려스러웠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마침내 스스로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건 없이 돕는다는 것은 마치 자식에게 한없이 베푸는 부모가 자기 자식은 아무것도 할 줄 모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런 부모들은 아이가 무엇을 하든 매우 염려하고 제지하며 결국 아이를 대신해 준다. 이런 경우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는 빼앗기고, 아이는 결국 의존적으로 변한다. 그러면 아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게 되고, 잘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존감마저 낮아진다. 부모는 아이를 적정 시기에 독립시켜서 어려움에 직면하게 해야 한다. 아이가 잘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우울증에 빠진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움은 부모처럼 한없이 의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부축하고, 그들이 길을 잃고 막막해할 때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힘을 회복하기 시작하면 적당한 시기에 손을 떼는 것이다. 좋은 인도자는 결코 그 사람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많은 사람을 경험하면서 경청을 즐기게 되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에 부딪혀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면 아마도 끊임없이 문제를 분석하고 나서 그에게 해결 방안을 직접적으로 제시했을 것이다. 표면상 그는 당신이 제시한 의견대로 하고, 일도 해결되었지만 동시에 그는 당신 의지의 실행자가 되었다. 그가 다시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당신에게 해답만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인도자는 더 많이 경청하고, 문제 이면에 숨겨진 잠재적 원인을 찾고, 더 많은 질문을 통해 그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며, 그가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비록 그가 고통스럽고 무력한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도와달라고 요청할지라도 당신은 감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지주목이 되어주고, 거울처럼 그가 당신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보며 정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도움은 주지 말아야 한다. 그가 스스로 해답을 찾아낼수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마음속에는 저마다 나름의 해답을 갖고 있다. 다만 불안함과 같은 감정적 요소 때문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체를 바라볼 수 없거나 정답 옆에 도움을 받아 치워야 할 약간의 장애물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들이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설사 그 답이 틀렸다 하더라도 또 객관적으로 보아 그에게 유리한 답이 아니더라도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더욱 의미가 있다. 그래서 좋은 인도자는 단지 하나의 도구만을 제공하여 상대가 이를 통해 더 쉽게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며, 상대를 끌고 가지는 않는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력 없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울감에 휩싸이면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정서에 통제된다. 이때는 일시적으로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의심하고 과소평가하여 열등감, 자책, 자기혐오와 같은 사고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어야 자신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능동적으로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 과거에 당신이 무엇을 경험했던 지금 연약한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더 이상 자신을 해치지 말고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누구나 잘 쉬고 나면 마침내 모든 문제를 해결할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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