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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그리는 남자

저   자
이정현
출판사
매일경제신문사
가   격
15,000원(208쪽)
출판일
2020년 02월
도서정보


■ 책 소개


볼보 자동차 미래를 그리는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


볼보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 세계 3대 디자인 스쿨 유학생, 볼보 베스트셀러 모델의 메인 디자이너… 화려한 수식이 붙는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기계설계학을 전공한 저자가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과정, 매일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부딪힌 2년간의 대학원 생활, 볼보에 입사하기까지 겪어온 시행착오가 모여 그의 수식어를 한 땀 한 땀 채워갔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 실력을 커버하기 위해 남몰래 단어장을 만들고,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 밥 안 먹고 잠 안 자며 프로그램을 독학하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3개월짜리 프로젝트에 영혼까지 갈아 넣었지만 불경기로 입사가 취소된 적도 있다. 수많은 어려움을 ‘노오력’으로 견뎌낸 그에게 주어진 수식이기에 전혀 과하지 않다.


이 책은 ‘비하인드 스토리 모음집’에 가깝다. 그의 경험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관한,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관한, 볼보라는 브랜드에 관한, 그리고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꿈에 한 걸음 가까워진 한 사람에 관한 작은 파편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이정현
볼보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 면접도 테스트도 없이 포트폴리오만으로 볼보에 입사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입사 3년 만인 2012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볼보의 베스트셀러 모델 XC60의 메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볼보 LA디자인센터에서 리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건국대학교에서 기계설계학을 전공하고, 20대 중반까지 남들이 가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 졸업할 시기가 되어서야 뒤늦게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기 시작했다. 영어도 서툴고 디자인 프로그램 하나 다룰 줄 몰랐지만 스웨덴 우메오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매일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치열하게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10년 볼보에 입사했다. 볼보에서 일하는 동안은 가장 볼보다운 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 차례
1장 볼보 그리는 남자
 
볼보를 그리다
- 스웨덴 볼보의 첫 한국인 디자이너
- 볼보를 대표해 스웨덴 광고에 출연하다
- 첫 번째 업무
- 디자인의 전환점이 된 리더의 등장
- 볼보의 스테디셀러, 2세대 XC60을 디자인하다
- SUV는 꼭 남성적이어야 할까
- 한국에서의 XC60 론칭 행사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 자동차 디자이너가 하는 일
- 자유롭고 친밀한 디자인 스튜디오
[note] 볼보 디자인 스튜디오의 모든 것
- 디자인보다 중요한 ‘잘 듣기’
- 자동차 역학을 잘 아는 디자이너
-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프레젠테이션
[note] 자동차 디자이너가 꼭 기억해야 할 네 가지


2장 디자이너를 만든 시간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다
- 생애 첫 자동차와 포르쉐 964
- 갑자기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 비전공자도 디자인 대학원을 갈 수 있을까
- 세계 3대 디자인스쿨, 우메오대학교로
 
스웨덴 유학생활 고군분투기
- 미운 오리 새끼
- 독일에서 빛을 발한 졸업 작품
- 갑자기 입사가 취소됐다고?
- 볼보에 도전하다
- 문제적 남자에서 못 다한 이야기


3장 볼보에서 찾은 볼보의 진짜 매력


‘볼보’라는 브랜드
- 볼보가 절대 타협하지 않는 한 가지
-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 북유럽 감성을 품은 자동차
- 꿈의 플랫폼 도입
[note] 볼보의 역사를 다시 쓴 SPA 플랫폼


앞으로의 볼보, 앞으로의 자동차 디자인
- 볼보의 디자인적 지향점
- 디자인의 진짜 역할
- 공기역학적인 디자인
- 미래의 자동차 디자인


 



도서요약


볼보 그리는 남자


볼보 그리는 남자

볼보를 그리다

스웨덴 볼보의 첫 한국인 디자이너

2015년 12월경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회사 직원들이 출연하는 광고 촬영 건으로 캐스팅 디렉터가 짧은 인터뷰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뷰 당일,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 있는 작은 방에서 메일을 주고받았던 캐스팅 디렉터를 만났다. 이번 광고는 ‘MADE BY PEOPLE’이라는 콘셉트로 자동차 자체보다는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또한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을 등장시켜 최고의 자동차는 특정 국가, 특정 국적의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했다. 정말 볼보다운 콘셉트였다.


얼마 후 캐스팅 디렉터로부터 다시 메일을 받았다. 1차 면접에 통과했으니 2차 면접을 보자는 내용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영상을 찍어간 첫 번째 인터뷰 이후 업무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두 번의 면접을 더 거치고서야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광고에 출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볼보 직원이었고 그중 네 명이 메인 역할을 맡았다. 네 명 중 한 명으로 출연이 결정된 것이다.


촬영은 3~4회에 걸쳐 회사 안팎에서 이루어졌다. ‘사람이 만든다’는 콘셉트를 드러내기 위해 일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출근 전부터 퇴근까지의 일상을 담기로 했고, 아침에 출근하기 전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윈드 터널(공기 역학을 테스트하는 공간)에서 자동차를 테스트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며칠 후 광고 관계자에게 연락이 왔다. 광고는 4분짜리 영상으로 티브이에 방영되고 방영 며칠 전부터 티저 광고가 나갈 거라고 했다. 물론 유튜브로도 공개되어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다. 영상에는 디자이너인 나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의 직원들이 메인으로 출연한다. 마지막에 ‘Made by’라는 글자 뒤에 볼보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국적을 일일이 적어주는데, ‘MADE BY REPUBLIC OF KOREA’가 뜨는 순간은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던데 나는 유럽에 티브이 광고를 남겼다.


볼보의 스테디셀러, 2세대 XC60을 디자인하다

볼보에 입사한 지 3년이 가까워질 무렵, 지금까지 볼보 자동차 디자인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크고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바로 2세대 XC60이다. 1세대 XC60은‘유럽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중형 SUV’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볼보의 볼륨 모델이자 캐시카우, 즉 회사에 가장 큰 이윤을 가져다주는 차종이다.


보통 신차가 나오면 신차 효과로 인해 판매량이 급격하게 올라갔다가 해를 거듭할수록 서서히 판매량이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1세대 XC60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늘어나는 기현상을 일으켰다. 따라서 2세대 XC60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볼보 자동차 디자이너 모두에게 베스트셀러를 뛰어넘는 차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였고, 동시에 막중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프로젝트였다.


아직도 첫 번째 스케치 프레젠테이션을 잊을 수 없다. 나의 발표는 비교적 간단했다. 까만 배경에 스케치 3장. 디자인 프로세스 초반의 발표였기에 내가 생각했던 다음 세대 XC60의 비율과 테마를 최대한 심플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발표가 끝나자 토마스는 ‘지금 네가 보여준 스케치가 내가 생각해 왔던 XC60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이지 등부터 뒷목까지 땀이 쭉 빠지는 느낌이랄까. 토마스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이며 칭찬에 상당히 인색한 보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프레젠테이션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듯하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측면부의 실루엣을 호평했다. 초기 단계에서 내가 생각했던 XC60의 측면부는 일반SUV와는 달리 다소 둥그런 형태의 창을 통해 다이내믹한 60시리즈만의 색깔을 표현하고자 했다. 전 체적으로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출발선에 선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총성이 울리지 직전,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긴장감이 포인트다.


전면부의 경우 나는 항상 사람의 표정을 생각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차향이 어떤 사람의 얼굴을 닮아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는 <007>시리즈의 주인공, 다이엘 크레이그의 무표정하면서도 편안한 느낌, 동물로 비교하자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자의 얼굴이었다.


마지막으로 후면부 디자인은 차가 바닥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잘 표현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체적으로 역동적이고 긴장감 있는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후면부만큼은 볼보의 정체성이기도 한 ‘안전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원했다. 후면부를 보면 테일 램프가 빔을 꽉 쥐고 있어 단단한 빔으로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토마스는 항상 큰 그림에 집중해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 차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한번 디자인 방향을 정하면 끝까지 고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큰 그림 안에서 다양한 안을 실험적으로 시도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큰 그림을 바꾼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는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굉장히 좋은 점 중 하나다.


이러한 토마스의 스타일 덕분에 나의 디자인 초안은 순조롭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종 8개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도로 위를 달리는 생명으로 탄생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자동차 디자이너가 하는 일

자동차 디자인은 흔히들 ‘디자인의 꽃’이라고 불린다. 내가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영역 안에서 여러 분야의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맡고 있는 분야는 익스테리어 디자인 즉 자동차의 외관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자동차의 외관은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로만 디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태우고 움직이는 물체이다. 사람을 태운다는 것은 타고 있는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시 해야 함을 의미하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든 동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당연히 엔지니어링 즉 다양한 분야의 공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자동차는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즉 인테리어 디자인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동차의 외관을 감상하는 시간보다 내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시트(의자),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스크린, 기어노브, 페달, 카펫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기에 인테리어 디자인 역시 가구 디자인, 조각, 패션 디자인 등의 결합으로 이뤄진다.


익스테리어 디자이너인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하는 일이다. 여러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창의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특성에 따라 2D 스케치나 렌더링을 활용하기도 하고, 알리아스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3D모델링을 하기도 한다. 이때 디자인 디렉터들과의 리뷰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끊임없는 수정을 거친다. 이러한 단계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과 발전이 이뤄진다.


하나의 양산 모델을 탄생시키기 위해 디자인 부서뿐만 아니라 회사의 모든 부서 간 협업이 보다 성숙한 단계로 진행된다. 최종안이 결정된 후에도 약 2년의 발전 과정이 더 필요하다. 회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디자인 발전 과정을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도 걸린다.



디자이너를 만든 시간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다

갑자기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지금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천직인 듯하지만, 처음부터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던 건 아니다. 막연히 이것저것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뚜렷한 목표 없이 기계공학과에 진학했고, 학교에서 흥미를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군에 입대했다. 학과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기왕 전공을 살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공군에 기체 정비 특기병으로 지원했다.


군에서 고참이 되어가면서 점점 시간이 많아졌다. ‘제대하면 뭐하지’를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나는 기계 전공자다. 자동차를 좋아한다. 뭐든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병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찾은 꿈이 자동차 디자이너다. 미술은 배워본 적도 없고, 디자인 프로그램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단을 짬이 날 때마다 디자인 서적을 찾아 읽으며 준비를 하기로 했다. 스물 다섯이었다.


우선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면 디자인을 전공해야한 한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내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실기 시험과 수능을 다시 볼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대학교를 기계 전공으로 졸업하고 2년 과정인 대학원을 디자인 전공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30개월의 긴 군 생활이 끝나고 복학을 하면서 대학생활의 2부가 시작되었다. 학사 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던 터라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학점이 필요했다. 군대에서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졌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정했기에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분명해졌다. 이유와 목적을 알고 나니 공부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학점 관리 다음으로 할 일은 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솔직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작정 디자인으로 유명한 대학의 교수님들에게 메일을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상담요청을 했다. 학부에서 기계를 전공하고 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내 말에 대부분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는데, 그중 한 분이 편입학원을 다녀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셨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로 학교 근처 편입학원에 등록했다. 편입을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부족한 공부를 하자는 데 의미를 두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언제나 뭔가를 그리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내 실기 능력은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4학년 1학기까지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학점 이수에 올인한 뒤, 4학년 여름방학 때 자동차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수 있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왕복 4~5시간 정도 걸리는 통학 시간에도 항상 자동차 잡지나 버스 창밖의 자동차들을 분석하면서 학원을 다녔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 하다못해 광고판에 붙어 있는 화장품 케이스의 형태까지 모든 사물에서 디자인적인 요소를 습득하고자 했다.


스웨덴 유학생활 고군분투기

미운 오리 새끼

학교생활은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막상 합격을 하고 보니, 유럽 여행조차 해본 적 없는 내게 스웨덴은 너무도 낯선 나라였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대학원 과정이었기에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귀로 알아듣고 행동했다기보다는 눈치로 상황에 맞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스웨덴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해서 내가 조금만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미안할 정도로 열심히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스웨덴 사람들은 더불어 사는 사회의 중요성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는다.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배우는 우리와 달리,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로 교육 시스템과 사회 시스템으로 정착시켰다.


대학원 수업은 대학 시절 수업과는 많이 달랐다.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전문적인 실기 교육을 기대했으나, 다 같이 앉아서 뭔가를 배우는 정규 수업보다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주를 이뤘다. 몇몇 프로그램을 배우는 수업과 프레젠테이션 스킬 수업이 있기는 했지만 매우 제한적이었다. 대학원 과정이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은 대학 시절 어느 정도 습득하고 왔다는 가정하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나의 가장 큰 걸림돌은 프로그램 활용 능력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라, 기본적으로 포토샵이나 알리아스 등 2D, 3D프로그램에 매우 익숙했다. 그에 비해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연필과 펜, 마커 등을 이용해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스케치뿐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가장 실력이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한없이 낮출 수밖에 없었고 또 그래야만 했다. 그러고 나니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승이었다. 모든 학생, 교수님들, 인터넷, 잡지, 서적, 건물, 하다못해 길가에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도 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의 석사 과정 동안 첫 1년은 디자인 능력이나 테크닉, 프로그램 활용 능력 면에서 다른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추고, 2년 후 졸업할 때는 그들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로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대학원 생활은 기억에 남는 추억이 하나도 없다. 밥 먹고 머리 깎는 시간도 아껴가며 2년간 작업과 공부에만 몰입했다.


갑자기 입사가 취소됐다고?

진로를 바꿔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참 많았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고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도전을 하며 스스로를 몰아쳐야만 했다. 비자가 나오기까지 몇 달 동안은 고생한 스스로에게 꼭 상을 주고 싶었다.


비자 신청 후 약 3개월 후 대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워킹 비자를 신청했는데 영주권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런 경우는 대사관에서 일하면서도 처음 접한다며 축하해주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았다.


며칠 후 돌아온 답장은 당황스러웠다. 요즘 회사 경기가 좋지 않아 내가 맡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을 시작하는 시기를 연기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그간 다른 회사에 지원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사실 내가 졸업한 2008년은 국제 경기 악화로 취업난이 굉장히 심했고, 특히 자동차 기업들의 상황은 심각했다. 회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갔으나 계약서에 공식적으로 사인도 한 상황에서, 영주권까지 나온 마당에 입사 무기한 연기라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한 달 정도 후에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는데, 쉽지 않을 거라며 가능 여부를 물었다. 게다가 스웨덴이 아닌 독일에 있는 지사에서 근무해야 했다.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독일이든 스웨덴이든 상관없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면 됐다. 헐레벌떡 짐을 챙겨 출국 준비를 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비행기에 올라 독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프로젝트의 실체가 드러났다. 중국의 한 신생 자동차 회사에서 셈콘에 디자인을 의뢰한 작업이었는데, 3개월 만에 구동이 가능한 콘셉트카 한 대를 만들어야 했다. 보통 콘셉트카는 구동 가능하게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구동이 가능한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라고 미리 경고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경기 악화로 다른 프로젝트가 없었던 셈콘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생길이 훤하기는 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다.


독일에 파견 나온 3개월이 지난 후 회사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따라서 3개월 후의 나의 미래 역시 보장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파견 기간 동안 반드시 뭔가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나 자신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와 비슷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업무를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밤낮없이 디자인 작업에 몰두해야만 했다.


역시 백 번의 연습보다 한 번의 실전이 낫다는 말은 옳았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구동 가능한 콘셉트카를 만드는 일은 내게 굉장히 좋은 훈련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모델러와의 협업에 있어서 실전 감각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내가 먼저 존중하면 상대로 나를 존중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낮추되 자기만의 의견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휩쓸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나만의 의견이 정립되었다.


디자이너 두 명이 3개월 안에 할 수 있는 업무량을 초과하는 듯 느껴졌다.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서 밤 9시 이후에 퇴근하는 날이 매일 이어졌다. 주말도 거의 없었다. 주말 중 하루는 반드시 스튜디오에 나와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막바지에 다다르자 급기야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기에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콘셉트카는 무사히 완성되었다. 디자인이 스케치북이나 모니터 화면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서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작업이 끝나자 스웨덴 회사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유럽의 경기는 3개월 만에 좋아지지 않았고, 일단 스웨덴 본사로 돌아가긴 했지만 여전히 내 미래는 불투명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확답을 듣고 싶어 디자인팀 상사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상사는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다시 불러줄 것을 약속하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언제 경기가 회복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약속만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볼보에 도전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은 너무 좋았다. 몇 주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족, 친구들과의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놀기만 할 수는 없었다. 영주권도 받았겠다, 언젠가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장기적으로 다닐 직장보다는 단기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대학 강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얻는 것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운 좋게 디자인으로 유명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공업디자인과 강사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학습 방법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난생처음으로 해본 강의였기에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고, 그러려면 학생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이 훨씬 많았다. 한 학기 강의를 마치고 다음 학기 강의를 시작할 때 즈음 스웨덴에서 연락이 왔다. 볼보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볼보 자동차는 내가 스웨덴 유학을 결심할 때부터 마음에 둔 회사였으므로,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강의를 하며 틈틈이 업데이트한 포트폴리오를 볼보 측에 보내고 소식을 기다렸다.


2주 후,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가능한 빨리 출근을 원한다는 소식이었다. 인터뷰도 하지 않고 바로 합격이라니, 기쁘면서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입사 후에 나를 뽑아준 디렉터에게 왜 면접도 보지 않고 뽑았는지 물어보았다. 디자인 테이스트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볼보에 지원하는 대부분의 포트폴리오가 컴퓨터 작업이었던 것에 반해, 나의 경우 손으로 작업한 결과물과 컴퓨터 작업이 함께 구성된 포트폴리오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굳이 면접이 필요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디자이너를 꿈꾸기 시작한 그때부터 볼보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기까지, 운이 좋기도 했고 운을 잡기 위해 매 순간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 시간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어서 조금 돌아왔다 생각했던 순간들이 볼보에서 커리어를 쌓는 데 빠짐없이 도움이 되었다.



볼보에서 찾은 볼보의 진짜 매력

‘볼보’라는 브랜드

볼보가 절대 타협하지 않는 한 가지

차에 타면 가장 먼지 습관처럼 하는 일이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다. 우리가 매는 안전벨트는 어깨에서부터 가슴을 가로질러 양 골반을 감싸도록 연결된 3점식 안전벨트이다. 시중에 출시된 모든 차량에 의무적으로 장착된 3점식 안전벨트를 처음으로 개발한 회사가 바로 볼보다.


1959년, 볼보의 엔지니어 닐스 볼린은 기존에 사용되던 2점식 안전벨트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에 속하는 어깨와 가슴뼈, 골반 뼈를 지나가는 2점식 벨트를 개발했다. 이후 볼보는 3점식 안전벨트에 대한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하며, 많은 차종에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왔다.


미국에서는 1968년부터 3점식 벨트 탑재가 새롭게 양산되는 모든 자동차에 의무화됐고 지금은 전 세계의 자동차 제조사가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사용될 기술이기에 특허가 창출할 수 있는 이윤은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안전’에 관한 기술이라는 이유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항상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안전하지 않은 자동차는 아무리 빠르고 실용적이더라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브랜드 철학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특히 볼보에서 실시하는 자체 안전도 테스트는 국제 기준보다도 더욱 엄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출시되고 있는 볼보의 모든 차종은 유럽 자동차 안전진단 기관인 유로 엔켑 테스트를 비롯해 각종 국제 안전도 테스트에서 가장 안전한 차 1위로 손꼽히고 있다.


사실 볼보에 입사하기 전에는 볼보가 내세우는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단순히 마케팅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볼보에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인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인간이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자동차를 탈까? 자동차가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느 자동차 디자이너들처럼 나 역시 언젠가는 나만의 시그니처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볼보 자동차를 디자인하며 볼보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관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볼보다운’차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지금은 나를 비롯해 가족 구성원 다수가 볼보 자동차를 타고 있다. 가족의 안전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볼보를 운전하고 있노라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 차가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이유 있는 듬직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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