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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네이션

스타트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

경제의 불로초, 스타트업

매주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이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최악의 고용 대란을 겪는 한국 청년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이웃 나라 중국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동영상 메신저 ‘틱톡(Tiktok)’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는 매주 월요일마다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중관촌(中關村)에 자리한 바이트댄스는 이미 2만 명의 인력을 보유한 거대 기업이지만,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중국 젊은이를 끌어들이고 있다. 2018년 바이트댄스의 기업 가치는 750억 달러, 우리 돈을 85조 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바이트댄스는 불과 1년 만에 기업가치가 7배 이상 급증했다.

중국 스타트업의 성장이 단지 거대한 내수 시장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자회사인 핀테크 스타트업 앤드파이낸셜(Ant Financial)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5초 만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군사 안보를 이유로 중국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설치를 배제한 미국이지만 중국 드론 메이커 디제이아이(DJI)의 드론 기술력에는 두 손을 들었다. 중국 스타트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지만 중국 스타트업은 여전히 언더독(Under dog)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의 탑독(Top dog)은 미국이다. 미국 경제는 이미 스타트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미국 하이테크 산업 일자리 증가의 60%가 스타트업에서 창출됐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2007년 120만 개, 2011년 110만 개, 2016년 150만 개의 일자리를 미국 청년에게 꾸준히 제공했다. 스타트업이 일자리 하나를 만들어내면 다른 산업에 5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생겼다.

스타트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질도 좋다. 2016년 기준으로 기술 기반 스타트업 종사자의 평균 연봉은 102,000달러로 미국 전체 평균 연봉의 2.13배를 기록했다. 미국 경제가 120개월 연속 성장이라는 엄청난 호황을 누리는 배경에는 스타트업이 만들어낸 양질의 일자리가 있다. 스타트업은 미국 경제에 ‘불로초’ 역할을 담당하며 새로운 활력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2008년과 2018년의 미국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을 비교해보면 서로 겹치는 기업은 5개뿐이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간판이 불과 10년 만에 절반이나 바뀌었다.

글로벌 스타트업 대전에 유럽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유럽에 주목할 점은 설립 이후 100만 이상 투자를 유치하거나, 최근 3년 동안 총매출액 또는 직원 수가 연평균 20% 이상 증가한 스타트업인 스케일업 기업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유럽 스케일업 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생태계 때문이다. 100개의 스타트업이 창업하면 90개가 1년 안에 망하고, 나머지 10개 중 5개는 3년 안에 망하며, 다시 5개 중 3개는 5년 안에 망한다는 이야기는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에 따라 유럽은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해 스타트업 경제의 혁신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동시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정책적 대응을 시도하는 중이다.

유럽의 대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가 핀란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삼성이라면, 핀란드는 노키아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노키아는 정보통신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쓰러졌고 그 여파는 핀란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자 핀란드는 스타트업에서 해법을 찾았다. 과감한 규제 철폐와 투자가 더해진 핀란드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년간 다섯 차례 마이너스 성장을 겪어야 했던 핀란드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은 왜 스타트업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한국 반도체는 세계 최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18년 다시 한 번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 반도체는 왜 이리 강할까? 선제적 투자와 기술 혁신 등 많은 성공 요인이 있지만, 핵심은 수요에 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가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제조사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쌀’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ICT 기기는 반도체를 필수로 탑재한다. 개인이 생산하고, 유통하며, 소비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반도체가 처리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쌀을 만들어낼 뿐 ‘밥’은 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농경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스타트업은 우리가 밥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스타트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스타트업이 창출한 고용 효과는 주로 청년층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스타트업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진 것도 고용 없는 성장 때문이다. 한국은 매년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에서 6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다. 밖에서 돈을 잘 벌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계속 성장해야 하지만 우리는 항상 경제 위기를 걱정한다. 왜냐하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서 자본의 양은 늘었지만 고용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떨어지지 않는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다. 고용이 뒷받침되지 않는 부동산 산업은 자본이 늘어나도 유통하지 못하고 버블을 양산한다.

자본 총량과 고용이라는 두 요소의 물꼬를 동시에 터줄 산업은 서비스업과 스타트업뿐이다. 이 가운데 서비스업은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한국인은 소비할 돈이 없다. 부동산, 사교육, 육아에 많은 돈이 묶여 있다. 서비스업은 소비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경제 주체의 여력이 없다 보니 돈이 돌지 않고 신규 고용도 늘지 않는다.

한국 경제에 있어서 스타트업이 가진 중요한 의미는 이뿐만 아니다. 한국 경제에서 청년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분야는 없다. 성장을 멈춘 대기업은 40대 직원도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했다. 스타트업은 청년 기업이다. 청년이 창업하고, 청년이 운영하며, 청년이 청년을 고용한다. 오로지 청년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이 많을수록 청년 일자리도 덩달아 늘어난다. 한국 경제에 스타트업이 절실한 이유다.

한국 스타트업은 우울하다. 수치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종사자와 언론의 평가도 박하다. 한국을 스타트업의 ‘무덤’으로 표현하고 스타트업 CEO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고 폭력을 불사하고, 정치인과 공무원은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느라 스타트업을 옥죄고 있다. 공유 차량 서비스를 생각해보자. 매년 태국을 방문하는 100만 명의 한국 관광객은 방콕에서 우버와 그랩(Grab)을 이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심지어 한국 공무원과 택시 기사도 태국을 여행하면서 손쉽게 두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버가 세계 최대 유니콘으로 성장하고, 그랩이 현대 자동차로부터 2,800억 원 이상 투자를 유치하는 와중에 한국의 공유 차량 스타트업은 파산하고 있다.

예상되는 피해와 문제점을 최소화하려는 사회적 대응은 필요하지만 새로운 혁신의 도입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 산업혁명 당시 러다이트운동과 구한말 쇄국 정책에서 알 수 있듯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움직임은 결국 파괴적 결말로 이어질 뿐이다.

혁신은 예상할 수 없다: 김종윤 스캐터랩 CEO

스캐터랩은 감성형 AI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현재의 기능형 AI와 달리 언어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진일보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애완동물이 수행하는 감성적 역할을 AI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다. 또한 그는 IT 기술의 발전이 인터페이스에 좌우한다고 믿었다.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시작해 터치에 이른 인터페이스 기술은 곧 언어로 소통하는 단계로 이어지리라 전망했다.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스타트업 분야에서 국가가 선수로 뛰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혁신 성장에 있어서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정부 주도는 경쟁력 있는 산업 육성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가 중요하죠. 국가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어요. 예를 들어 AI 분야에서 인프라에 해당하는 데이터 세트가 있습니다. 흔히 ‘말뭉치’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떤 말이 있으면 그 안에 문장 구조와 품사가 어떻게 돼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특정 기업이 이것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영어는 워낙 자료가 방대해 이미 구축돼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죠. 이런 것이 국가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스타트업마다 수요자가 원하는 부분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리고 수요자가 원하는 부분을 찾기 위해 결국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적 편의를 제공하죠. 스캐터랩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 IT 제품의 변화는 인터페이스가 이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메인 인터페이스였습니다. 지금은 터치가 핵심이죠. 앞으로는 대화를 통한 인터랙션으로 변합니다. 언어는 인간적 특성입니다. 언어로 상호작용하면 그 자체를 인격화합니다. 그래서 제품이 소셜 능력을 갖추는 게 AI 제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상대화 능력이 AI 제품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스캐터랩의 가치는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죠.

소셜 능력에 주목했기에 스캐터랩 창업 이후 꾸준히 ‘감정’을 이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네요. 그렇다면 감정이 지닌 비즈니스 잠재력은 어떻다고 보세요?

- 감정이 주는 가치는 쉽게 측정할 수 없지만 사용자의 제품 경험에서는 큰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제품에서 중요한 경쟁의 축이 될 것입니다. 감정의 영역이 쉽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단점이지만 대기업이 쉽게 뛰어들 수 없는 스타트업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될 수 있어요.

경제의 역동성을 자극하는 스타트업

대표님은 한국 경제에서 스타트업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 여러 측면에서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스타트업의 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경제적 불평등, 부의 세습, 금수저 논란 등 젊은 층에서 희망이 없다는 얘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부를 1등에서 100등까지 줄 세우고 그 상위 1%가 전체 재산의 몇 퍼센트를 갖느냐로 불평등 정도를 재는데, 저는 그것이 불평등을 규정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불평등한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단편적으로 보면 부의 편중이 심각한 사회입니다. 상대적으로 유럽은 덜한 편이죠,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미국이 훨씬 다이나믹한 사회입니다. 미국에서 상위 1%는 항상 바뀌지만 유럽은 고정된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어느 사회가 더 불평등하냐는 질문에 저는 유럽이라고 생각해요.

혁신은 말 그대로 변화지요. 대표님이 주력하는 AI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경제에서 혁신의 의미는 전통적 경제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 혁신은 결코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이 예상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죠. 혁신은 말이 안 되는 것이어야 하나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애플이 스마트폰 1위를 하리라 10년 전에 누가 예상했겠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데다, 예측하지 못하고, 계획할 수 없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은 정부와 잘 안 맞죠. 정부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성과를 보장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혁신과 정반대죠. 혁신보다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획기적이지 못합니다. 혁신은 극단적 상황에서 예측할 수 없게 발생합니다. 저는 이게 점점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빠르게 변하고 경계도 사라지기 때문에 이제는 누가 경쟁자인지도 모르겠어요. AI 분야에서 아마존이 AI 플랫폼인 ‘알렉사’를 개발해서 판매하리라 누가 생각했겠어요.

연결의 혁신으로 사회적 연대를 꿈꾸다: 이효진 8퍼센트 CEO

사실 8퍼센트는 하이테크 스타트업이 아니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으로 금융 소비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다른 스타트업이 무엇을 시장에 던질지 초점을 맞춘다면 8퍼센트와 이효진 대표는 무엇이 시장에 필요한 것인가에 집중했다. 혁신은 새로움이다. 다름은 새로움의 다른 말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바라보면 지금까지 외면했던 가치가 새롭게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이효진 대표는 다르게 시도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영자다.

본질과 혁신의 연결

은행에서 일하다 해외 P2P 금융을 접하고 창업을 결정했나요?

- 일단 은행을 그만뒀어요. 알아보고 퇴사한 게 아니라 먼저 그만 뒀죠. 새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때 좋은 회사 다니며 연봉도 많이 받던 친한 친구가 18% 금리를 쓰더라고요. 그 친구를 목격한 후 마침 그 주에 다른 친구와 미국에는 이런 모델이 있는데 한국은 왜 없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불현듯 ‘아! 이 친구의 문제를 저 친구가 해결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친구의 어려움과 다른 친구의 아이디어로 창업한 흥미로운 스토리네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P2P 금융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죠. 첫째는 기술 발전입니다. 신용평가를 정확히 하고, 온라인으로 효율적으로 처리하며, 자동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이 모든 것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기술로 지금에서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죠. 둘째는 자금을 연결하는 방법이 다양해졌어요. 기존에는 대형 금융 기관이 개인 자금을 싸게 조달해서 대출했죠.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온라인에서 쉽게 클릭 몇 번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연결 방법이 다양해졌습니다. 이게 본질이에요.

경험이 축적되는 사회를 향해

8퍼센트는 창업 당시 어떠한 도움을 받았나요?

- 2014년 11월에 1호 서비스를 출시하고 두 달 만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이트를 차단당했어요. 금감원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법률상 대부업 등록을 해야 대출을 할 수 있어요. 이때 많은 스타트업 지원 기관과 언론이 도와줬습니다. 핀테크 육성하자면서 이런 규제를 왜 하느냐 말이죠. 한 달 만에 사이트를 다시 오픈했어요. 그때 도움을 받으며 사업에 대해 확신했습니다.

외국은 시간상으로 경험을 축적해야 가능한 변화가 종종 일어나죠. 이것은 사회제도의 뒷받침이 있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스타트업이 실패했을 때 국가가 제도적으로 무엇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똑같이 실패해도 40대보다 20대가 좀 더 남는 게 많죠. 사실 필요한 것은 제도보다 문화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제도를 제안하기 어렵지만 문화적으로 대안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해요. 저만 해도 실패하면 인생의 다음은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 많거든요. 한국은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이래서 어찌 용기를 내겠어요?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시장을 개척하다: 권순범 이큐브랩 CEO

권순범 CEO는 영어를 많이 활용했다.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조차 그는 영어로 표현했다. 문장이 아니라 단어를 말하면서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니 그가 연세대 출신이라는 이력을 몰랐다면 유학생으로 착각했을 것 같다. 그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박람회에서 아침부터 술을 마시며 돈독함을 유지하는 백인 남성들만의 업계 이너서클(inner circle)에 들어가기 위해 권순범 대표는 영어를 잘해야 했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문가 느낌이 나는 완벽한 영어가 필요했다.

그는 프로다워야 했다. 권순범 대표가 이큐브랩을 창업한 계기는 비즈니스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지저분한 대학가와 고생하는 환경 미화원을 보며 시작한 일은 점점 그의 소명이 되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스타트업으로 사회에 진정한 가치를 전하고 싶어 한다.

창업하지 않는 청년

일반 스타트업과 조금 다르게 시작했네요. 아직 소셜 벤처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모델을 갖출 형태가 소셜 벤처인가요?

- 일단 이큐브랩은 소셜 벤처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경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소셜 벤처인으로 빌 게이츠를 꼽습니다. 돈을 잘 벌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전문 영역이 아니지만 온갖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죠. 비즈니스하면서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참 어려워요. 기업은 열심히 돈을 벌려 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개념적으로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큰 파급력을 주기 위해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고, 그것을 다시 긍정적으로 환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국 청년은 창업에 관한 생각이 확고하고,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자연스러운 창업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닐 때가 많죠. 대표님이 보기에 똑똑한 한국 청년들은 왜 창업하려 하지 않고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보시나요?

-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가 미국 직원을 뽑을 때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이 바로 능동적 사고입니다. 한국과 미국 직원 모두 명문대 출신의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한국 직원은 가야 할 길이 제한적이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요. 주입식 교육의 폐해입니다. 창업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시겠지만 미국 수업은 어떨까요? 서로 말하려고 난리입니다. 미국 청년이 똑똑해서 창업한다기보다, 창업이 잘 맞는 친구가 좋은 교육과 공정한 평가를 받아 사회에 진출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경우 교육 뿐 아니라 마켓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요. 한국에서 1조 원짜리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은 드물어요. 쿠팡은 좀 다르고, 배달의민족 정도? 시장이 너무 작아요. 그래서 함부로 하면 안 돼요. 미국처럼 용기 낸다고 성공이 담보되지 않는 규모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사실 한국은 애매합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잘해요. 이스라엘은 국내 시장이 없으니 처음부터 글로벌을 지향합니다. 일본은 규모가 크지만 고립되어 있어요. 내수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니 글로벌로 잘 안 나와요. 그래서 한국이 일본 모델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

미국 볼티모어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성공적으로 미국 공공 조달 시장에 입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 이큐브랩의 프로젝트가 현지에 잘 맞았어요. 그래서 해외에 집중하려 합니다. 쓰레기 산업은 이너서클이 굉장히 강해요. 전부 백인 남성들이고요. 동양인이면서 어리니까 시장을 뚫기 전에 신뢰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백인이 될 수 없고, 아저씨가 빨리 될 수도 없으니 제가 선택한 신뢰 형성의 방법은 완벽한 영어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국적은 한국이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지낸 사람들로 구성했죠. 내년에는 아예 이너서클에 있는 백인을 스카우트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들어가지 않고 아예 우리 편으로 만드는 전략입니다.

비즈니스 성격과 마켓의 특성에 따라 달라서 해외 진출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한국은 무시해도 될 정도의 작은 나라입니다. 해외 진출을 하려면 언어부터 문화까지 완전히 현지 스타일로 바꿔야 해요. 쉽게 생각해서 전시회 나가고, 현지 아르바이트생 뽑아서 진행하고, 코트라(KOTRA) 도움을 받아 적당히 하려면 아예 안 하는 게 낫습니다.

국내에서도 영업을 전개하는데 해외와 비교해 어떤 부분이 가장 걸림돌인가요?

한국은 어려워요. 가장 큰 이유는 구조 자체가 달라요. 한국은 정부에서 모두 컨트롤하지만 해외는 사기업이 합니다. 특히 대기업이 하죠. 쓰레기 산업만 해도 아시아 국가들은 정부에서 하지만 유럽과 미국은 매출 수십 조 원대 기업이 담당해요. 좋고 나쁨을 떠나 사기업이 담당하면 효율적으로 생각하죠. 쉽게 말하면 돈을 따지니까요. 정부는 어떨까요? 정부는 돈보다 일자리를 우선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큐브랩 파트너가 사기업이냐, 정부냐에 따라서 마켓의 매력이 달라집니다.

조달 시장을 뚫기도 어려워요. 공무원과 이야기하면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본인이 담당하는 시기에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죠. 해서 책임지느니, 안 하는 게 낫다가 기본 정서입니다. 그래서 이큐브랩은 국내 영업팀이 없어요. 요청이 있으면 하는데 대응만 하는 수준입니다. 한국에서 판매한 제품은 모두 상대 기업에서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희망, 스타트업 네이션

스타트업 정책은 이미 존재한다. 주요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다양한 방법의 지원과 규제를 포함한 스타트업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CEO는 여전히 불만을 토로한다. 지원은 비효율적이고, 규제는 성장을 가로막는다. 정부는 현장의 요구에 귀 막은 채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한 수치를 내놓을 뿐이다.

스타트업 네이션 10 X 1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장 원동력은 스타트업이다. 그래서 한국을 스타트업 국가로 바꾸겠다는 당위성에 대해선 모든 경제 주체가 동의한다. 핵심은 이러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느냐에 있다.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해야, 이에 합당한 실현 방안을 채택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고용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목표를 수립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정부와 정치인이 스타트업 활성화를 말하지만 정작 한국 스타트업의 현황을 알려줄 정확한 통계 수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쉽게 나타나서 쉽게 사라지는 스타트업 특성상 현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스타트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그리고 국가 경제 구조를 스타트업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노력에 비해 정책의 기초가 허술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한국에서 핀테크, 헬스케어, 주문형 서비스, e커머스 분야는 규제 개선만 이뤄지면 빠르게 새로운 유니콘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문형 서비스를 살펴보자. 주문형 서비스는 택시처럼 사람이 사람을 나르거나, 택배처럼 사람이 물건을 나르는 모든 것을 모바일로 처리한다. 따라서 e커머스와 함께 가장 많은 유니콘이 출현하는 분야다. 이외에도 클라우드처럼 스타트업 성장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인터넷 서비스와 오랫동안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게임 분야에서도 단기가 내 유니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정책이 유니콘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유니콘의 존재는 한국 스타트업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유니콘을 배출할 수 있도록 지금의 스타트업을 예비 유니콘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 책이 스타트업 CEO의 의견을 고려해 제시하려는 정책은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 10 X 10’이다. 여기에서 ‘스타트업 네이션’은 한국 경제 구조를 스타트업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하려는 당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10 X 10’은 스타트업 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목표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 네이션 10 X 10’은 스타트업의 개수와 고용 규모를 10년 이내에 10배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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