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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Count Sheep 일상의 작은 꿈들을 카운트하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2015년을 맞으며 세계경제의 축인 미국의 경기가 좋아지고 있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지구촌의 경제 여건이 더불어 개선되리라고 기대하고는 있지만, 여건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경제가 불안하고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불경기의 소비자는 무조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구매의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은 단호하게 지출을 끊고, 만족을 주는 소비에는 비싸도 지출을 몰아준다. 중요한 것은 낮은 가격이 아니라 "이 제품은 나에게 가격만큼의 가치를 주고 있는가?"에 대한 납득이다. 소비자가 그러한 납득을 느끼는 대상은 늘 변화하고, 우리는 그것을 트렌드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누가 먼저 잡아낼 수 있느냐다. 다시 말해 트렌드 대응 능력이 생존의 핵심적인 덕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SNS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발달로 일반 소비자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즉, 양치기로 비유되는 지도자·공급자보다 양으로 비유되는 시민·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양이 희생의 대상이거나 무력하기만 한 존재가 아닌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양의 이미지가 현대사회를 잘 표현해낸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양은 겉보기에는 유순하고 힘없는 동물 같지만, 일단 무리를 지어 고개를 들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트렌드 코리아>가 전망하는 2015년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거대한 메가트렌드의 물결에 획일적으로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두 마리 양을 세듯 작은 일상에서 평화롭게 만족을 구하는 이미지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쉽게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와중에 소소하지만 풍요한 감각에 탐닉하거나, 평범함으로 사치하고, 좁은 골목길의 가게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하고,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덤에 영향을 받으며, 내밀한 일상의 경험을 SNS로 자랑하면서, 가볍게 치고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현대사회에도 햄릿이 많다. 마트의 진열대에서, 인터넷 쇼핑몰의 검색 결과에서, 혹은 음원 사이트의 산더미 같은 신곡 리스트 앞에서, 현대의 소비자들은 햄릿처럼 망설인다. 『트렌드 코리아 2015』는 이처럼 너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결정을 유예하거나 타인에게 결정을 맡겨버리는 소비자의 선택 장애 상황을 햄릿증후군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신상품은 봇물처럼 쏟아지고 새로운 정보가 물밀듯이 넘쳐나는 시대다. 회원이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추천해주세요", "골라주세요" 하는 글이 자주 눈에 띈다. 맥주와 같은 제품 선택은 물론이고 소개팅 때 입고 나갈 의상, 아기 이름, 취업준비생의 회사 선택, 썸 타는 이성들 중 누가 더 괜찮으냐는 질문까지, 공과 사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의 결정 부탁이 넘쳐나고 있다. 우유부단함의 대명사 햄릿의 모습이 4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2014년 현대인의 자화상과 겹쳐지고 있다.

"내 선택이 옳은지 어떻게 알죠?"

소비자들이 선택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정보 과잉의 시대를 맞아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를 접하게 되면서 정작 결정에 필요한 핵심 대안과 정보를 놓치게 됐다. 또한 정답을 맞추고 대세를 따라야 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 아래서 많은 소비자들이 자기 선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자신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의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처럼 선택장애, 즉 햄릿증후군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은 결국 둘 중의 하나다. 아무거나 무작위로 선택해버리거나, 타인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 내리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햄릿들은 왜 이렇게 자기 확신을 잃게 된 것일까? 먼저 결정장애가 만연하게 된 사회구조적 배경을 살펴보고, 햄릿증후군이 불러일으키는 산업적 변화를 진단해본다.

정답사회가 낳은 획일화된 동조 심리

우리나라는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다. 학교에서 치러야 했던 객관식 시험에만 정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남들 다 하듯이 취직해야 하고, 결혼해야 하고, 자녀를 가져야 한 소리를 듣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든 가장 바람직한 정답이 존재한다는 규범은 구성원들에게 내가 정답을 선택했는가? 하는 커다란 스트레스를 준다. 이러한 규범이 내면화되면,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도 타인의 판단에 맞을지의 여부를 자기 검열하게 된다. 그 결과,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서 스스로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타인의 기준에 맞추거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비 행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모방소비 혹은 동조소비의 형태로 나타난다.

소비 시장은 이러한 정답사회의 부작용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곳이다. 대표적인 예가 사치품 소비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명품은 성공을 치장하는 액세서리가 되어 자기만족보다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품으로 더 큰 가치를 지닌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의 소비의 정답이 소위 명품이었던 것이다.

만족보다 최적, 큐레이션 커머스의 확대

제품의 정품 유무, 최저가 비교, 성능 확인 등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할 때 체크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보 과잉과 상품의 홍수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의 조언을 받고 싶은 소비자의 니즈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상품을 구매하기까지 길게는 몇 날 며칠을 심사숙고하고 갈등하는 햄릿증후군 소비자에게 구매 결정을 빨리 도와줄 수 있는 서비스는 여러 기회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반가운 솔루션이다. 이들에게 만족이라는 단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적이라는 단어다. 소비자가 자신의 선택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만족을, 누군가 전문가가 제공해줄 수 있는 최적의 옵션으로 대체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소비자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서비스가 큐레이션 커머스다.

큐레이션 커머스는 큐레이션의 개념이 유통에 접목된 것으로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고객 입장에서 제품을 선별해서 추천하는 형태의 서비스를 이야기한다. 기존의 소셜커머스가 공동구매의 형식으로 값싸게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큐레이션 커머스는 신뢰할 만한 전문가가 추천하는 품질 좋고 우수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맞춤화하여 제공하는 형태의 서비스다. 최근에는 전문가 특정인이 아니라, 고객 정보가 담긴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들의 니즈, 구매 패턴 등을 상세하게 분석해 소비자에게 꼭 맞는 제품을 선별해주고 있다.

결정장애를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만큼 상품은 다양하지만 그만큼 선택이 어려운 오픈마켓의 단점을 큐레이션 서비스가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매년 방대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적절한 콘텐츠 발견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2013년 이 셀카놀이, 즉 셀피(selfie)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셀피란 스마트폰, 웹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 사람 혹은 그 사진을 뜻한다. 고해상도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의 보급과 페이스북·플리커·인스타그램과 같은 이미지 친화적인 SNS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셀피는 더 이상 소수의 취향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 마스크팩을 붙이고 있는 지극히 사적인 셀카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기념비적인 모습이 담긴 인증샷도 SNS 세상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상적인 수단이 되었다. 감성 충만한 10대 소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셀카가 2014년 국경을 지우고 세대와 계층을 넘나드는 셀피로 진화하며, 2015년 더 흥미롭고 볼거리 충만한 무대의 서막을 열고 있다.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에 제대로 꽂힌 셀카봉은 셀피 시대의 수혜를 듬뿍 받은 대표 주자다.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셀카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막대형 제품은 전년과 비교해 판매량이 열 배 이상 급증하며 셀피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급부상 중이다. 셀피를 위해서라면 남우세스럽고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막대기마저 자랑스럽게 치켜드는 사람들.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3억 5,000만 장의 셀피가 SNS에 오른다. 시간이 갈수록 기세등등해지는 셀피들의 시각적 욕망은 매 순간 색다른 이미지들을 생성해내며 타임라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일상이 자랑이 되고 자랑이 일상화되는 타인지향적 나르시시즘의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네가 휴가를 갔어도 인증샷이 없으면 간 게 아니다."

찍지 않으면 본 것이 아니고, 올리지 않으면 경험한 것이 아니다. 카메라 렌즈가 현대인의 눈이 되고 있다. 이제 존재는 기록이다. 물론 기록도 기록 나름이다. 기존의 일기장이 자신의 속내를 여과 없이 담은 내밀한 것이었다면, SNS는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연출된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구매에서 경험으로, 위시리스트 지고 버킷리스트 뜨고

리트윗과 좋아요가 자기 존재감의 근거가 되는 타아도취의 세상에서 SNS는 자랑하는 방식과 표현 방법을 바꾸고, 아울러 소비하는 아이템과 패턴을 바꿔놓았다. 이 자랑질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사야(구매해야) 할 것들로 빼곡하던 위시리스트 대신, 누려야(경험해야) 할 것들로 채워진 버킷리스트가 뜨고 있다. 사고 싶은 잇 아이템(it item)을 손에 쥐는 것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과시하고자 하는, 보다 드라마틱한 연출 공식이 등장한 것이다. 버킷리스트에는 꼭 가봐야 할 여행지는 물론 공연·캠핑·쇼핑·봉사까지 갖가지 미션이 즐비하다. 락 페스티벌 하나쯤은 필수 코스인 양 발도장을 찍으며 손목에 두른 티켓 팔찌와 함께 현장샷을 찍고, 친구와 유명 뮤지컬 관람을 마친 후 포토존에서 문화생활 인증을 수행한다. 유기견 돌보미 등의 자원봉사를 하면서도 뿌듯한 미소가 담긴 셀카를 잊지 않는다. 인파 속에서 스마트폰을 높이 치켜든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대한민국의 평범한 풍경이 되고 있다.

노골적인 표현 대신 은근한 부분샷으로

셀피 시대의 연출 공식, 그 두 번째는 바로 은근한 노출이다. 셀카를 찍는 사람들은 대체로 스스로 가장 예쁜 각도와 포즈를 찾아 사진을 찍거나 무의식중에 찍힌 듯 자연스러운 사진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SNS에 실시간으로 포스팅되는 수많은 오브제 사진들은 정제되어 있지 않은 프레임에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는 실험적 각도로 촬영된 것들이 많다. 우연히 찍힌 듯 연출한 이미지들이다. 얼마나 우회적으로 자랑할 수 있느냐가 이용자들의 능력이 된 것이다. 특히 부분샷을 잘 활용하면 노골적인 자랑 대신 격이 있는 자랑질을 할 수 있다. 과시하고 싶은 제품의 로고 전체를 훤히 드러내는 하수들과 달리 셀피의 고수들은 사진 속에서도 밀당의 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예를 들어 프레임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것은 흔한 커피전문점의 일회용 컵이지만, 귀퉁이 아래로 자동차 핸들의 고급 자동차 로고가 아주 살짝 등장하게 하는 식이다. 상징적인 컬러나 이니셜 등 브랜드의 일부만 노출되게 무심한 듯 사진을 크로핑(cropping, 편집)하여 촬영하는 은근함이 필요하다.

경험과 라이프스타일을 팔아라

시시콜콜한 일상을 멋진 사진으로 연출하고 그 이미지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폼 나는 물건보다 그 물건을 통해 할 수 있는 폼 나는 행위를 찾는다.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팔아야 하는 이유다. 불편을 파는 가구업체 이케아(IKEA)는 배송되는 완제품 가구 대신 직접 싸 들고 가 설명서를 보고 조립하는 동안 얻게 되는 성취감과 애착의 감정을 판다. 카페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테마 카페들은 더 이상 커피만을 파는 곳이 아니다. 커피 한 잔과 더불어 노트북을 펼치고 리포트를 쓰거나 책을 읽는 곳, 혹은 친구들과 모여 그들만의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백화점 역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찾는 빈도수보다 아이와 함께 또는 애인과 함께 쾌적한 시간을 보내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몰링(malling)을 위해서나 문화센터 강좌를 듣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셀피들은 본인이 느낀 기분을, 새로운 경험을 지인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SNS에 소개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다른 셀피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파급 효과는 생명력이 강하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깨고 셀피들이 누릴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팔아야 하는 이유다.

편집권을 주어라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2014년 5월, 새로운 화장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메이크업 지니어스Makeup Genius라고 하는 이 앱은 소비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셀카를 찍은 후 화장wearing 버튼을 누르면 마치 그 자리에서 로레알의 신제품을 사용한 것처럼 사진 속 얼굴에 화장을 시켜준다.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유명 회사의 제품 수백 가지를 자신의 얼굴에 시연해볼 수 있다. 소비자가 보다 손쉽게 제품에 접근하고 보다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비주얼을 선택하도록 편집권을 준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소비자에 의해 재생산되는 미디어의 본질을 활용한 좋은 예이자 사용자들이 양산해낸 콘텐츠가 브랜드의 미래라는 것을 시사한다. 로레알의 화장 앱은 화장품업계로서는 낯선 시도였지만, 현재 중국과 미국 등에서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썸 타다: 관심 가는 이성과 잘 되어가다.

썸남·썸녀: 관심을 두고 있는 상대 남성·여성

썸이란 썸씽(something)의 준말로, 교제하기 전 이성 간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신조어로, 최근 TV 드라마부터 가요·웹툰·광고 등 대중문화를 사로 잡고 있는 트렌드다. 썸은 2000년대 학번들에게 익숙한 밀당(밀고 당기기)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밀당의 최종 목표가 연인이 되는 것이라면, 썸은 그렇지 않다. 썸의 목적을 연애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썸은 간질간질하되, 구질구질하지 않아야 한다. 즉, 언제든 치고 빠질 수 있는 불구속의 원칙이 작용한다. 이 때문에 일대일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밀당과 달리 썸은 동시에 여러 명과의 관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29.8%가 썸을 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 언젠가(someday) 누군가(somebody)와 무엇(something)을 기대하는 심리가 결정을 유예시킨다. 그래서 썸(some)이다. 미확정의 불안이 설렘과 낭만이라는 역설적인 감정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냥 쿨할 수는 없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썸이라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궁금하고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 남녀 관계다. 썸 타는 청춘들의 늘어나면서 대중문화에도 썸 바람이 불고 있다. 음악·예능·서적에 이르기까지 연애 기술을 알려주는 콘텐츠들이 급증했다.

특히 그린라이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연애 코칭 프로그램의 강자로 손꼽히는 JTBC의 <마녀사냥>은 19세 미만 시청 금지라는 연령 제한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본래 그린라이트란 야구에서 주자가 스스로 판단하여 자의로 도루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지만, <마녀사냥>에서는 남녀 관계에서 호감을 보이는 신호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한없이 연애에 무심한 듯 쿨하게 치고 빠지는 썸남·썸녀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심함 또한 관리해야 하고 학습이 필요한 신호다. 치고 빠지는 시대, 찌질남, 진상녀가 되지 않기 위해 현대의 썸남·썸녀들은 쉴 새 없이 연애 코칭에 나서주는 TV 앞을 떠날 수가 없다.

연애뿐만이 아니다. 인간관계에도 치고 빠지기 전략은 유효하다. 각자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가족·친구·연인과 약속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정하는 일은 꽤 번거로운 과정이다. 게다가 혹 거절이라도 당하면 어쩐지 모두가 바쁜 세상에 자신만 한가로운 잉여인간이 되어버린 듯 자괴감마저 따라온다. 이 때문에 그저 시간되는 사람들끼리, 또는 거리상으로 가까운 이웃들끼리 모이는 소셜다이닝이 뜨고 있다. 이 게릴라성 만남은 누구나 부담 없이 모임을 만들고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매번 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한다거나 불참하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등의 의무가 전혀 없다. 그 자리에 참석해 맛있게 먹고 즐기면 그만이다.

만남 이전의 관계를 저울질할 필요도 없고, 만남 이후의 상황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일회성 관계가 선사하는 부담감 제로는 미래가 불투명한 현대인에게 오히려 투명한 관계로 다가온다. 실제로 소셜다이닝에 참가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와 고민을 모임에서 털어놓는다고 한다. 마치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처럼, 때로는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주변 사람보다는 낯선 타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직장과 학교, 집뿐만 아니라 온라인까지 관계의 그물로 얽혀 있는 현대사회에서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심리가 일회성 만남을 부추기고 있다.

치고 빠지기는 불확실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자들이 택한 전략과도 같다. 이제 하나의 제품이나 브랜드가 영원한 지위를 누리는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의 선택은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모든 결정을 재고 또 재는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것도 저것도 선택하기를 망설이는 소비자에게 무조건 구매를 호소하기보다는 간 보기를 장려하는 전략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 시장을 필두로 활성화된 무료 체험의 기회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의료용 기기부터 웨딩 박람회에 이르기까지 소비자가 직접 써보고 결정할 수 있는 체험형으로 탈바꿈하는 추세다. 날로 증가 추세에 있는 렌탈 또한 말 그대로 테스트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상품인지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만 빌리기를 원할 것이다. 즉, 렌탈의 기간이 월 단위, 일 단위로 더욱 세분화될 전망이다.

2015년 더욱 유연해질 소비트렌드에 대처하기 위해 가장 현명한 자세는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모와 도 사이에 모호한 회색 지대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간극에서 영원한 의리를 기대하기보다 팽팽한 썸의 긴장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소비자와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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