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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모멘트

 
 
 
 
저   자
EBR 제작진 외
출판사
EBS BOOKS
가   격
18.000원(304쪽)
출판일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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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세계 초일류 기업들의 운명을 결정한 그해,
도전과 모험, 성공과 실패의 숨막히는 순간들

이 책 『비즈니스 모멘트』는 세계 초일류 기업들의 운명을 결정한 ‘그해’에 초점을 맞추어 성장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사건과 전후 역사를 들여다본다. 여기서 ‘그해’란 기업이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중대한 시기를 말하며, 이는 곧 기업의 역사에서 ‘모멘트’로 기록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찾은 그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판을 뒤집은 그해, 혁신으로 한 걸음 도약하는 그해, 바닥을 치고 일어나 상승하는 그해가 바로 기업의 모멘트다.

모멘트를 중심으로 기업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저마다의 사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밟아온 흥망성쇠의 여정이 펼쳐진다. 여기에는 치열한 경쟁과 도전, 최후의 승부수를 던지는 모험,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기업의 운명을 건 결단 등 더없이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 저자 
EBR 제작진
대한민국 리더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EBS 비즈니스 리뷰EBR〉는 수준 높은 비주얼과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한 국내 지상파 최초의 본격 경제경영 콘텐츠입니다. 몰입감 높은 클립형 콘텐츠 포맷으로 15분의 지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혁신은 만들어질 때보다 확산될 때 비로소 그 존재 가치가 증명됩니다. 〈EBS 비즈니스 리뷰〉는 국내 최고의 스토리텔러를 발굴하고, 그 스토리텔러들을 통해 전 세계 기업의 성공과 도전, 혁신의 순간을 포착하고 이야기합니다. 짧지만 강한 콘텐츠, 뉴미디어 전성시대에 EBS가 내민 야심찬 도전장입니다.

팩트스토리 (원작)
오리지널 스토리 작성

구본권 한겨레 기자 | 김은형 한겨레 기자 | 김진철 한겨레 기자 | 박수지 한겨레 기자 | 박준호 서울경제 기자 | 유선주 칼럼니스트 | 이완 한겨레 기자 |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 정혁준 한겨레 기자 | 황주윤 프리랜서 작가(전 MBN 기자)

■ 차례
서문

1부 무한경쟁에 뛰어든 기술 중심의 거대 기업들, 이들은 어떻게 시장의 승자가 되었나
대한민국 대표 반도체 기업의 성장사-삼성의 모멘트 1983년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의 잃어버린 10년-애플의 모멘트 1997년
대한민국 자동차 1위 기업이 걸어온 길-현대자동차의 모멘트 1999년
하늘길을 연 회사의 운명을 건 도박-보잉의 모멘트 1952년
세계 자동차 업계 1위 기업의 성공 열쇠-토요타의 모멘트 1966년
상업용 드론의 표준을 만든 기업-DJI의 모멘트 2013년

2부 생활밀착형 제품으로 성공한 기업들, 이들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업그레이드했나
새 시대를 연 발명품 워크맨으로 전 세계를 접수하다-소니의 모멘트 1980년
끈기와 집념이 탄생시킨 청소기-다이슨의 모멘트 1986년
16년 연속 성장 신화의 비밀-LG생활건강의 모멘트 2005년
가구 DIY 시대를 연 세계 최대의 가구 기업-이케아의 모멘트 1956년
실패에서 찾은 혁신의 성장 동력-3M의 모멘트 1980년

3부 패션과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들, 이들은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는가
시대를 앞서간 세계 최대 OTT 기업-넷플릭스의 모멘트 2007년
장난감을 넘어 문화를 만드는 기업-레고의 모멘트 2004년
세계 1위 스포츠 브랜드의 성장기-나이키의 모멘트 1985년
숙박 업계를 뒤엎은 숙박 공유 플랫폼-에어비앤비의 모멘트 2009년
도전을 즐기는 세계 1위 자전거 기업-자이언트의 모멘트 1987년
죽은 종이 매체 시대에 탄생한 매거진-모노클의 모멘트 2007년

참고문헌
EBR 〈모멘트〉 방송 목록

 



도서요약
비즈니스 모멘트


무한경쟁에 뛰어든 기술 중심의 거대 기업들, 이들은 어떻게 시장의 승자가 되었나

상업용 드론의 표준을 만든 기업 - DJI의 모멘트 2013년

성큼 다가온 드론 택배 시대, 그리고 시장의 절대 강자

드론(drone)은 원래 ‘윙윙거리는 소리’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드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군사 작전을 목적으로 만든 무인항공기가 드론의 시초라는 데는 의견이 모인다. 오늘날에는 군사용이 아닌 상업용으로 보급되면서 점점 다양한 분야에서 드론을 활용하고 있다.


드론이 인기를 끌면서 함께 ‘윙윙’거리며 떠오른 기업이 있다. 전 세계 상업용 드론 시장에서 76퍼센트의 점유율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DJI(Da Jiang Innovation)다. DJI은 중국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드론 업체로, 드론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다. 전 세계 상업용 드론의 표준 기술은 대부분 DJI가 채택하고 있거나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사용 드론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지만, 일반 상업용 드론 시장에서는 중국 DJI가 절대 강자이며, 미국, 독일, 일본도 DJI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


DJI 창업자 프랭크 왕의 어린 시절

DJI의 창업자는 1980년생 프랭크 왕(Frank Wang)이다. 중국 이름은 왕타오이며,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 전 회장과 같은 항저우 출신이다. 프랭크 왕이 하늘을 향한 꿈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어린이 과학 만화책에서 처음 본 빨간색 헬리콥터에 마음을 빼앗긴 뒤 하늘을 나는 기계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형 헬기를 갖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랐지만 성적을 올리면 사주겠다는 대답을 듣고는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집념을 보이기도 했다.


드론계의 스티브 잡스

프랭크 왕은 까칠한 CEO로 알려져 있다. 모든 직원들이 자기처럼 일에 몰두하기를 원하며 끊임없이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왕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상대에게도 완벽주의를 요구하며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집요함은 주변 사람들을 무척 힘들게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실험을 요구했고, 결과를 빨리 알고 싶어 했다. 또한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이 회사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기를 원했지만 직원들은 이런 완벽주의 성향을 힘겨워했다.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 그리고 생각의 전환

직원들이 연이어 퇴사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DJI는 자금난의 조짐마저 보였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던 프랭크 왕은 미국의 콜린 권이라는 사업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권은 항공 촬영 영상을 만드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어떻게 하면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항공 영상을 촬영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 제어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던 프랭크 왕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나눈 후 2011년 8월 미국 인디애나주의 먼시에서 열린 비즈니스를 위한 상품 전시회인 트레이드 쇼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권은 프랭크 왕에게 한 가지 흥미로운 조언을 건넸다. 비행 제어 시스템을 구매하는 사람의 90퍼센트가 드론을 사용한다며 완제품 드론을 제작해보라는 조언이었다.


프랭크 왕은 권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는 비행 제어 시스템 기술에서 더 나아가 드론 완제품을 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드론 완제품 개발은 DJI의 기술이 진가를 발휘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완제품 드론이 출시된다면 개인이 여러 부품을 조립해 직접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줄 수 있고, 기업이나 연구소, 마니아가 아닌 일반인도 드론을 날릴 수 있으니 이는 새로운 시장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완제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장에서 드론 완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었다.


기술은 DJI의 강점이었다. 왕은 DJI의 비행 제어 시스템을 활용해 흔들림 없이 촬영할 수 있는 드론 시제품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 완성된 시제품을 보고 뛰어난 기술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권은 왕에게 DJI 북미 지사 설립을 제안했다. 이들은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드론 개발과 판매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팬텀과 함께 날아오르다

DJI의 완제품 드론은 2013년 1월 ‘팬텀(Phantom)’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팬텀은 당시 DIY에 기대고 있던 드론 시장에 그 이름처럼 마치 유령을 만난 듯한 충격을 가져왔다. 그리고 곧이어 막 태동하고 있던 미국과 중국의 상업용 드론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11년 420만 달러(49억 원)이었던 DJI의 매출은 2013년 1억 9000만 달러(약 1526억 원)으로 30배 이상 급증했다.


사방 30센티미터의 크기에 네 개의 프로펠러를 장착한 팬텀은 쉽고 빠르게 하늘로 날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화질 카메라로 항공 촬영도 가능한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전문가들은 과거 애플의 애플 Ⅱ가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것처럼 DJI의 팬텀도 무인항공기 시장에서 그런 이정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팬텀의 대성공 이후에도 DJI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DJI는 팬텀이 나온 지 9개월 만인 2013년 10월, 카메라 일체형 드론인 ‘팬텀 2 비전’을 내놓으며 드론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했다. 팬텀 2 역시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후로도 DJI는 이전 모델의 기술과 성능을 보완해 팬텀 3, 팬텀 4 등 후속 모델을 잇달아 선보이며 시장을 장악해갔다.


DJI 드론의 대중화가 가능했던 이유

팬텀이 출시된 2013년은 DJI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장 큰 의미는 아마도 세상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새로운 시장은 중간 지대를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전에도 드론은 있었고, 액션캠도 있었다. 하지만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팬텀이 하나로 묶었다. 하늘을 나는 드론에 영상을 촬영하는 기기를 결합해 판매한 것이다.


DJI의 팬텀은 드론을 대중화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론의 대중화는 가격 경쟁력과 관련이 있다. DJI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개발한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가격을 낮춰 일반인 구매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완벽함으로 얻은 기술

DJI는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드론 시장에서 최강의 지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지난해 2020년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 상업용 드론 시장에서 기업별 판매 점유율을 보면 DJI가 76.1퍼센트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고, 그다음 2위에 오른 인텔의 점유율은 고작 4퍼센트에 불과했다. DJI 드론이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DJI가 이러한 위상을 다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완벽함으로 얻은 기술 덕분일 것이다. 그 기술을 얻는 과정에서 프랭크 왕이 보여준 지독한 고집과 독선은, 때로는 기업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생활밀착형 제품으로 성공한 기업들, 이들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업그레이드했나

가구 DIY 시대를 연 세계 최대의 가구 기업 - 이케아의 모멘트 1956년

열일곱 살에 이케아를 탄생시킨 창업 신동

이케아를 설립한 잉바르 캄프라드는 어린 시절부터 장사꾼 기질을 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1943년 캄프라드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자 아버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용돈을 주었다. 캄프라드는 그동안 모든 돈과 아버지에게서 받은 용돈을 합해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오늘날의 이케아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때 그는 용돈벌이의 수준을 넘어 정식으로 사업체를 꾸렸다. 업체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 ‘잉바르 캄프라드’에서 이니셜인 I와 K를 따고, 그가 자란 농장의 이름 엘름타리드에서 E를, 농장이 위치한 곳의 지명 아군나리드에서 A를 각각 따와 이를 합쳐 ‘IKEA’라고 지었다.


가구를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48년이었다. 캄프라드는 자신이 살던 지역의 장인들이 수공예로 제작한 가구를 들여와 팔기 시작했다. 다른 가구 업체들과 차별점이 있었는데, 보통 제품에 일련번호를 붙이는 것과 달리 이케아는 제품마다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그중 ‘루트(Ruth)’라고 이름을 지은 의자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100만 크로나라는 매출을 올렸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DIY 원칙으로 인한 이케아 효과

이케아의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된 해는 1956년으로, 플랫팩 방식으로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플랫팩은 부품을 상자에 담아 배송하면 소비자가 수령해서 직접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완제품이 아닌 부품을 모아서 포장하기 때문에 가구의 패키지는 말 그대로 평평해진다. 이는 이케아 하면 떠올리는 ‘DIY(Do It Yourself)’ 원칙을 전면화했다. 플랫팩 아이디어는 1955년에 최초로 떠올렸지만 본격적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인 1956년부터였다.


플랫팩 방식으로 판매된 제품들은 고객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립식 가구를 판매한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던 시기였으니, 가구 업계에서는 ‘콜롬버스의 달걀’에 비유될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플랫팩 포장을 개봉하면 나오는 가구 부품들은 기본 도구만 있으면 제품으로 조립할 수 있었다. 이때 조립은 번거롭지만 동시에 자신이 뭔가를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주었다. 고객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되 만드는 행위의 즐거움을 맛보고, 스스로 집을 꾸미는 데 관심도 높아졌다. 이로써 이케아가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품을 작게 포장해서 비용을 줄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이 판매할 수 있다는 표면적인 효과 외에도, 플랫팩의 성공에는 숨은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케아 효과’였다. 듀크대학교 행동경제학 교수 댄 애리얼리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 교수 마이클 노턴은 실험을 통해 이케아를 선호하는 이유를 심리적 만족도에서 찾았다.


실험 참가자에게 종이접기를 시킨 후 그 결과물을 구입한다면 얼마에 살 것인지 가격을 적어내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더니, 자신이 직접 만든 종이접기의 가격을 다른 것보다 훨씬 높게 매기는 결과를 나타냈다. 심지어 전문가가 만들어서 완성도가 더 높은 비교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든 것에는 자신의 노동력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더 높은 가치를 매겼다. 이처럼 가구에서도 조립형 제품을 구입해 손수 조립할 때 완제품을 구입했을 때보다 더 큰 애착과 만족감을 느끼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를 ‘이케아 효과’라고 일컫게 되었다.


캐시 앤 캐리, 이케아 시스템을 완성하다

이케아는 스웨덴 자국에 있던 생산공장을 철수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폴란드에 공장을 세우면서 또다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70년 9월 스톡홀름 외곽에 있던 이케아의 대형 가구 전시장에 화재가 발생해 내부에 진열된 제품들이 모두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이케아는 화재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당시 스웨덴 역사상 최대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사고 이후 이케아는 화재에서 살아남은 양호한 제품들의 정상가의 90퍼센트까지 할인 판매하는 이벤트를 열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화재 사고를 기회로 삼아 이케아는 가구 전시장을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시스템을 개편했다. 이전까지는 고객이 전시장에서 가구를 보고 고른 후 판매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이케아는 주문 받은 가구를 찾아 플랫팩 포장된 제품을 배송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을 원활하게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비용 절감을 통한 고효율을 추구했던 캄프라드는 캐시 앤 캐리(cash and carry)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객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처럼 원하는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치른 후 직접 가지고 나가는 방식이었다.


이케아는 가구 전시장에 창고형 매장을 구축했다. 이 창고형 매장에 플랫팩 제품들을 쌓아놓으면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을 찾아서 계산대로 가져와 계산한 후 직접 집으로 운반해간다. 기존 가구 업체의 작업량 가운데 80퍼센트가 제품을 운송하고 조립하는 데서 발생했는데, 이케아는 캐시 앤 캐리 시스템을 통해 그만큼의 노동량과 그에 따른 비용을 절감했다.


디자인 전문가 베른트 폴스터는 이케아의 시스템에 대해 “컨베이어 벨트를 고객의 거실까지 연장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는 소비자가 생산의 상당 부분에 관여하게 되므로, 공급자는 생산을 하고 수요자는 구매를 한다는 대명제를 아예 깨뜨린 셈이었다.


이케아는 어떤 기업으로 남을 것인가

지금의 이케아를 있게 한 인물로 첫손에 꼽히는 사람은 단연코 잉바르 캄프라드다. 2018년 1월, 아흔한 살을 일기로 타계한 그는 생전에 막대한 부를 쌓아 스웨덴 최고의 부자이자 세계 8위의 부자로 등극했다. 경제 전문 매체 블룸버그가 추산하길 생전 그의 순자산은 587억 달러로, 2018년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3조 원에 이르는 자산가였다.


1976년, 그는 이케아의 기업 철학을 담은 ‘한 가구상의 성서’라는 글을 썼다. 서두에서 그는 기업의 설립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중을 위해 더 나은 일상을 창조하라. 그러기 위해 뛰어난 디자인과 우수한 기능의 다양한 제품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지불할 수 있는 낮은 가격에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다수의 편에 서기로 했다.”


훌륭한 디자인의 제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이러한 이념에 따라 이케아의 디자인을 ‘디자인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소수의 특권층만 이용하는 값비싼 가구가 아니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구를 지향함으로써 디자인과 생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캄프라드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다.


이케아가 이룬 혁신과 디자인의 민주화는 분명 되새겨볼 가치가 있는 한편, 해결해야 할 문제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환경 문제다. 이케아의 핵심 전략인 저가 정책을 고수하다보니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고, 이로 인한 환경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전 세계 기업들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딴 ESG 경영에 주목하는 가운데, 이케아는 2020년을 ‘지속가능성의 해’로 지정하고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예를 들어 재활용 목재나 재생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들고, 고객이 사용하던 제품을 다시 매입해 판매하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가 앞으로 이케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이케아의 역사에서 유의미한 터닝 포인트를 또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패션과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들, 이들은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는가

시대를 앞서간 세계 최대 OTT 기업 - 넷플릭스의 모멘트 2007년

두 창업꾼의 아이디어로 사업의 싹을 틔우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2016년 1월에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해 5년이 지난 현재 국내 유료 가입자 수는 약 330만 명, 월 사용자 수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넷플릭스는 어느날 우연히 뚝딱 차린 사업이 아니었다. 넷플릭스를 공동으로 창업한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는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퓨어 아트리아에서 인연을 맺었다. 헤이스팅스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했다. 1991년에 자신의 첫 회사 퓨어 소프트웨어를 창업해 5년 후인 1996년 아트리아 소프트웨어와 합병해서 탄생한 것이 푸어 아트리아였다. 마크 랜돌프는 퓨어 아트리아가 인수한 스타트업 인티그리티 QA에서 마케팅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헤이스팅스는 랜돌프에게 퓨어 아트리아의 마케팅 부사장 자리를 맡겼다.


퓨어 아트리아를 꾸린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헤이스팅스는 이 회사를 래셔널 소프트웨어에 매각한 후 새로 사업을 구상했다. 헤이스팅스는 이미 창업과 인수 합병에 대한 여러 경험과 실력을 쌓았고, 마크 랜돌프는 마케팅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 아이디어맨이었다. 둘은 모두 새로운 사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랜돌프가 자신이 구상한 사업 아이템을 하나씩 던지면 헤이스팅스가 이를 평가하고 진단하면서 토론을 이어갔는데, 그때 거론되었던 사업 아이템 중 하나가 비디오 우편 대여 사업이었다.


영화계의 아마존이 되자!

1997년 초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는 우편을 이용해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주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사업이 이미 궤도에 올라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이들이 생각한 사업 모델은 웹사이트에서 비디오를 빌리고 우편으로 반납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디오를 보낼 때마다 우편 요금으로 4달러가 들어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었다.


“CD 정도의 크기인데, 영화 한 편이 통째로 들어간다니까!” 당시 헤이스팅스의 한 친구가 이제 곧 DVD의 세상이 될 거라며, DVD라는 새로운 발명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6년 일본의 소니, 도시바, 네덜란드의 필립스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DVD는 비디오테이프를 대체할 새로운 영상 매체였다. 이들은 DVD를 구하지 못해 CD를 봉투에 넣어 헤이스팅스의 집 주소로 시험 삼아 발송해보았다. CD를 담은 봉투는 다음날 무사히 헤이스팅스의 집으로 도착했고, 한 번 보내는 데 우편 요금으로 32센트가 들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배송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비용 절감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비디오테이프 대여가 아닌 DVD 대여 사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1998년 5월,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는 ‘세계 최초 온라인 DVD 대여점’으로 넷플릭스를 설립했다. 회사의 이름은 인터넷을 뜻하는 ‘넷(net)’과 영화 대여 주문을 뜻하는 ‘플릭스(flix)’를 합쳐 ‘넷플릭스’라 지었다. 직원 30명, 925편의 DVD 영화를 확보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그 후 넷플릭스는 영화 보유 편수를 점차 확대해 월정액으로 20달러를 내면 수만 편의 DVD 목록 가운데 한 번에 세 편 이내로 신청할 수 있었다. 사용자는 연체료 걱정 없이 보고 싶은 대로 빌려서 보고 우편으로 다시 재발송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이용했다. 넷플릭스는 배송 시스템에 신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 50여 곳의 물류센터를 세우고 배송 도중 DVD가 파손되지 않도록 전용 우편 봉투도 만들었다. 이 사업 모델로 넷플릭스는 2001년 초까지 40만 명의 회원과 120명의 직원을 확보한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다

2007년 넷플릭스는 DVD 우편 배송과 별개로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스트리밍 서비스는 넷플릭스를 크게 도약시킨 터닝 포인트이자 이후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


헤이스팅스와 랜돌프가 포착한 것은 DVD 시장의 정체 및 매출 감소 현상이었다. 넷플릭스의 DVD 대여 사업은 점차 성장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지만, 헤이스팅스는 그것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판매 실적에서 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스트리밍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2007년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해는 곧 넷플릭스의 모멘트가 된 시기로 기록된다.


무제한으로 즐기는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는 넷플릭스를 양적, 질적으로 도약하게 했다. 사용자 측면에서 보면 DVD는 한 달에 세 편까지만 빌릴 수 있는 제한이 있으면서 대여 순서를 기다려야 하지만, 스트리밍은 무제한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2010년을 기점으로 넷플릭스의 주력 서비스는 DVD 대여가 아니라 스트리밍으로 넘어갔다.


코드 커팅을 주도하는 선두주자이자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발돋움

넷플릭스는 ‘코드 커팅(cord-cutting)’ 현상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코드 커팅이란 말 그대로 TV를 볼 때 필요한 케이블선 등을 끊는다는 의미다.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스트리밍으로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되자, 1990년대부터 자리 잡은 케이블TV 산업은 몰락을 가속화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넷플릭스 직원들은 시청자들의 시청 방식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바로 ‘시리즈 정주행’과 ‘알고리즘 추천’에 대한 잠재력이다. 시청자들은 일반적인 TV 시리즈를 시청하는 것처럼 한 주 한 주 기다려서 보는 게 아니라, 밤을 새워서라도 시리즈를 한번에 보고 싶어 하는 니즈가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에 넷플릭스는 향후 오리지널 시리즈를 한번에 공개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또 DVD 서비스 때부터 축적해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화 추천 알고리짐을 고도화하는 한편, 콘텐츠 제작에도 반영해 시청자들을 넷플릭스에 묶어두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OTT 시장의 최종 승자는?

OTT기업들이 좋은 콘텐츠를 확보화기 위해 서로 경쟁하다 보면 콘텐츠 라이선스 비용은 점점 올라가고 지속적인 공급이 불안정한 경우도 잦다. 넷플릭스가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자체 콘텐츠를 늘릴수록 라이선스로 인한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좋은 콘텐츠의 힘이 결국 사용자를 만족시키면서 신규 가입자를 끌어들일 수 있으니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는 것이다.


오리지널 서비스를 비롯한 양질의 콘텐츠,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 단일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 제공과 편리한 접근성 등은 넷플릭스를 차별화하는 요소들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일찍이 글로벌 OTT 시장의 선두주자로 올라섰지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혁신을 거듭했다. 넷플릭스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기업 가치가 높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 시가총액이 2700억 달러(약 322조 원)에 이르며, 2002년 상장 당시 1달러였던 주가는 약 20년이 지난 현재 600달러를 넘어가는 수준이다. 2021년 초 넷플릭스의 전 세계 유료 가입자 수는 2억 명을 돌파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와중에도 넷플릭스는 건재했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넷플릭스는 오히려 코로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콘텐츠 시장은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고, 디즈니와 애플, 아마존 등의 쟁쟁한 기업들이 OTT 분야에 새롭게 뛰어들면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경쟁자는 수면 시간일 뿐”이라며 후발주자들의 맹추격에도 끄떡없는 자신만만함을 보였다. 넷플릭스가 OTT 시장의 왕자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앞으로 이 분야에 어떤 지각 변동이 얼어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동안 넷플릭스가 쌓아온 콘텐츠에 대한 인사이트,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혁신과 도전은 이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탄탄한 토대가 되어주고 있음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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