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지혜, 자신에게 솔직하라
자신을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_결점과 변덕까지 인정해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보인다
자신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말고 있는 만큼 보라
나는 나를 실제보다 훌륭하게 말하고 싶지도 않고, 괜히 작게 낮추어 말하고 싶지도 않다. 없는 장점을 내 것처럼 꾸미는 것도 거짓이지만, 이미 가진 능력까지 부정하는 것도 또 다른 왜곡이다. 나를 제대로 알려려면 칭찬과 비난을 떠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부터 봐야 한다.
나는 기억력이 약하고 재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재능도 뛰어나지 않다. 반면 사물을 오래 따져보고 여러 면을 비교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힘이 있다. 부족한 것은 부족하다고, 쓸 만한 것은 쓸 만하다고 말하려 한다.
남의 칭찬이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비난이 내 능력을 모두 없애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참고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칭찬받을 때마다 자신을 크게 여기고 외면받을 때마다 작아진다면, 내 가치는 결국 남의 말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내 능력을 잘못 헤아리면 선택도 어긋난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쉽게 맡으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 일까지 겁내며 물러나면 가진 힘을 써보지도 못한다.
나는 자신에게도 언제나 분명한 사람이 아니며, 상황이 달라지면 잘하는 일과 서투른 점도 새롭게 드러난다. 새로운 경험이 이전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면, 예전에 내린 평가를 고집하지 말고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능력을 낮추는 태도도 조심해야 한다. 내 능력을 제대로 알려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을 맡고, 어디에서 물러나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나는 나를 칭찬하거나 나무라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잘하고 어디에서 자주 흔들리는지 알아야 내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것은 자신을 높이거나 낮추어 보는 일이 아니다. 실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일이다.
잘 기억한다고 잘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억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을 잊고, 부탁받은 일을 놓치며, 읽은 내용도 금세 흐려질 때가 있다. 내 고장에서는 기억력이 나쁘면 생각도 모자란 사람처럼 여겼지만, 나는 기억력과 판단력은 같은 능력이 아니라고 본다.
기억은 지나간 것을 붙잡는 힘이고, 판단은 눈앞의 일을 살피고 가리는 힘이다. 둘은 서로 돕지만 하나가 뛰어나다고 다른 하나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데도 판단이 흐린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다.
기억이 약하면 불편한 일도 많다. 친구의 부탁을 잊으면 그 사람을 소홀히 여겼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 것과 일부러 외면한 것은 다르다. 타고난 결함을 곧 마음의 결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뜻밖의 장점도 있었다. 기억에 많은 이야기가 쌓이지 않다 보니 말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늘어놓는 일이 적었다. 지난 일을 끝없이 끌어와 덧붙이기보다 필요한 만큼 말하고 멈추게 되었다. 기억력의 약함이 오히려 내 말투를 간결하게 만든 셈이다.
또 나는 받은 모욕도 오래 붙들어두지 못한다. 다리우스처럼 원한을 잊지 않으려고 누군가에게 계속 기억시킬 필요도 없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상처도 조금씩 멀어진다. 이것이 덕은 아니지만, 결함이 삶의 짐을 덜어주기도 한다.
거짓말을 하려면 오히려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잊어버리면 금세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은 하나지만 거짓말은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되기에도 알맞지 않다고 웃으며 말한다.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고 해서 생각하는 힘까지 부족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내 약한 점은 그대로 인정하되, 그로 인해 생기는 불편과 뜻밖의 장점도 함께 살핀다. 기억을 많이 한다고 반드시 현명한 것도 아니고, 잘 잊는다고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기억력이 좋은 것과 판단을 잘하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내가 안다고 믿는 것을 의심하라_관습과 권위보다 스스로 보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라
많이 배웠다고 더 현명한 것은 아니다
나는 많이 배운 사람과 더 현명한 사람을 같다고 보지 않는다. 어려서 나는 학자들이 당연히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지식이 많아도 판단과 삶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머리는 가득 찼는데 사람은 그대로인 경우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아는지,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부터 묻는다. 그러나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그 공부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더 현명하게 판단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식을 머리에 쌓기만 하는 데 있다. 우리는 기억을 채우는 데 힘을 쓰면서 판단과 양심은 비워 둔다. 남의 훌륭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다고, 그 지혜까지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앵무새도 들은 말을 따라 할 수 있다.
남의 생각은 받아 적어 두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음식이 몸속에서 소화되어 내 살과 힘이 되듯, 배운 것도 내 판단을 거쳐 내 것이 되어야 한다. 지식을 영혼에 겉으로 붙여 놓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들어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
학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지식은 좋은 도구다. 그러나 그것을 다룰 판단이 없다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날카로운 칼도 서툰 손에 들리면 주인을 다치게 한다. 많이 아는 것과 그것을 제대로 쓰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학자의 이름이나 외운 문장의 수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본다. 정의를 말하면서 이익 앞에서 흔들리고, 절제를 가르치면서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지식은 늘었어도 지혜는 자라지 않은 셈이다.
나는 공부의 가치를 기억의 양으로 재고 싶지 않다. 배움이 생각을 더 분명하게 하고 판단을 더 나아지게 하며 삶까지 바꾸는지를 보고 싶다. 남의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배운 것을 자기 판단과 행동으로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반대 의견으로 내 생각을 점검하라
나는 나와 같은 말만 하는 사람보다 제대로 반대해 주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내 생각을 거스르면 불쾌해하기보다 귀를 기울이려 한다. 반대는 내 판단을 흔드는 공격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한 약점을 드러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논쟁이 시작되면 무엇이 옳은지보다 누가 이기는지를 따지기 쉽다. 상대의 이유를 살피기보다 어떻게 물리칠지만 궁리하고, 생각이 막히면 목소리를 높이거나 말꼬리를 잡는다. 그러면 대화는 진실을 찾는 자리에서 승부를 가르는 자리에 바뀐다.
나는 친구가 거칠게 내 잘못을 지적해도 그 말에 이치가 있다면 받아들이고 싶다. 나를 칭찬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틀렸을 때 바로 말해 주는 사람을 더 가까이하고 싶다. 편안한 동의보다 정확한 반박이 내 판단을 더 잘 고쳐 주기 때문이다.
내가 옳아서 이기면 기쁜 일이다. 그러나 상대의 이유가 더 강하다면 거기에 굽히는 것도 승리다. 나는 상대의 악함 덕분에 이긴 것보다, 내 고집을 꺾고 더 나은 이유를 받아들인 일을 더 값지게 여긴다.
물론 모든 말싸움이 좋은 대화는 아니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모욕과 고집으로 밀어붙이면 진실은 쉽게 사라진다. 좋은 대화에는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고, 더 나은 이유가 나오면 자기 생각을 바꿀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대화에서 체면보다 진실을 앞세우려 한다. 진실은 내 편도 상대편도 아니다. 누가 더 나은 이유를 내놓든 받아들여야 한다. 반박을 받았을 때 손톱을 세우기보다, 그 말이 내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나는 대화를 마친 뒤 “내가 이겼다”기보다 “무엇을 새로 알게 되었는가”를 묻고 싶다. 좋은 반대는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판단을 시험하고 다듬는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보기보다, 내 생각을 비춰 주는 거울로 삼는 편이 더 낫다.
사람들과 어울리되 자기 삶을 내주지 마라_우정과 가족, 명예와 권력 속에서도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아라
우정과 사랑과 책은 서로 대신할 수 없다
나는 한 가지 즐거움에만 매달려 살지 않는다. 삶에는 여러 즐거움과 관계가 있으므로, 한 가지에만 매달리지 않고 서로 다른 교제를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내게 특히 중요한 것은 좋은 벗과의 우정, 사랑하는 여성과의 교제, 그리고 책이다.
우정은 세 가지 가운데 가장 귀하고 드문 교제다. 좋은 벗과 나누는 대화는 다른 이익이 없어도 즐겁다. 말의 주제가 크든 작든 상관없다. 서로의 생각을 숨김없이 나누고 판단을 주고받는 그 자체가 우정의 기쁨이다.
사랑은 우정과 다른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는 마음뿐 아니라 몸과 감각도 크게 참여한다. 나는 젊어서 사랑에 지나치게 빠져 괴로움을 겪었다. 그래서 욕망에 모든 마음을 맡기는 일은 경계하지만, 마음 없는 사랑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정과 사랑은 내 뜻만으로 언제든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다. 완전한 우정은 만나기 매우 어렵고, 사랑의 열기는 나이가 들수록 약해진다. 둘 다 상대가 있어야 하며, 상대의 마음과 형편에도 영향을 받는다.
책은 그 점에서 가장 편하고 확실한 벗이다. 우정과 사랑만큼 강한 즐거움을 주지는 못해도 내가 원할 때 언제든 곁에 와 준다. 늙음과 고독 속에서도 나를 위로하고, 괴로운 생각을 잠시 잊게 하며, 무료한 시간을 견디게 한다.
나는 며칠이나 몇 달 동안 책을 펼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곁에 책이 있고 원할 때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인다. 책은 내가 다른 즐거움을 먼저 찾았다고 서운해하지도 않고, 다시 돌아왔다고 따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세 교제를 하나의 기준으로 비교하지 않는다. 우정에는 영혼을 나누는 깊이가 있고, 사랑에는 몸과 마음의 열기가 있으며, 책에는 오래 곁에 머무는 편안함이 있다. 어느 하나로 다른 둘을 대신하려 하지 않고, 저마다의 즐거움을 그 특성에 맞게 누리고 싶다.
죽음을 피하지 말고 삶을 충분히 누려라_욕망과 나이와 유한함까지 인간의 조건으로 받아들여라
기쁨만 있는 삶을 기대하지 마라
나는 인간이 기쁨이나 즐거움을 완전히 순수한 모습으로 누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금도 다른 금속을 섞어야 쓸 수 있듯, 우리가 누리는 좋은 것에도 불편과 아쉬움이 함께 섞여 있다. 삶의 기쁨은 언제나 한 가지 맛으로만 오지 않는다.
큰 즐거움에도 피로와 불편이 함께 따라올 수 있다. 아주 기쁠 때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나는 즐거움과 고통이 완전히 떨어진 감정이 아니라 서로 가까이 이어져 있다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신이 고통과 쾌락을 하나로 섞으려다 실패하자 둘의 꼬리라도 묶어 놓았다고 말했다. 한쪽을 붙잡으면 다른 쪽이 따라온다는 뜻이다. 웃음이 너무 커지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서로 반대되는 감정은 가까이 붙어 있다.
슬픔에도 완전히 쓴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잃은 벗을 떠올리며 우는 동안에도 그 사람을 다시 마음에 불러오는 위안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우울한 마음속에도 사람이 스스로 머물고 싶어 하는 묘한 달콤함이 섞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기쁜 순간에 불안이나 아쉬움이 있다고 그 기쁨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슬픈 가운데 잠시 웃거나 위로를 느낀다고 슬픔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한 마음 안에 서로 다른 감정이 함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사람의 덕이나 즐거움이 언제나 완전하고 깨끗한 모습으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안의 좋은 성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약점과 함께 섞여 있다. 인간은 한 가지 성질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과 모습이 함께 있는 존재다.
삶에서 기쁨만 골라 가지려 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것에 불편이 조금 섞여 있다고 곧 잘못된 삶이라 판단할 필요도 없다. 기쁨과 슬픔, 편안함과 불편함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삶을 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시간이 많다고 믿고 삶을 미루지 마라
나는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너무 쉽게 길게 잡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흔이나 여든까지 사는 것을 당연한 묵처럼 여기고, 그보다 일찍 죽는 일을 뜻밖의 사고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연은 누구에게도 몇 살까지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젊은 카토는 마흔여덟 살에 이미 충분히 오래 살았다고 여겼다. 나도 늙어서 기력이 다한 뒤 죽는 것만 자연스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병과 사고, 낙상도 인간의 삶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오히려 아주 늙어서 죽는 사람이 모두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을 기준으로 자기 앞에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직 이르다고 여기지만, 내가 이미 살아온 나이조차 누군가에게는 끝내 닿지 못한 시간이었을 수 있다.
법과 관습도 삶이 오래 이어질 것처럼 나이를 정해 놓는다. 어떤 법은 스물다섯이 되어야 재산을 맡기고, 중요한 책임도 늦게 맡긴다.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실제 삶에 들어서는 때를 너무 늦추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젊음을 준비하는 데만 써서도 안 된다. 공부하고 배우는 일은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써 보고 자기 몫의 일을 시작할 때도 필요하다.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다고 믿으면 삶은 자꾸 준비 뒤로 밀리고, 정작 살아야 할 순간은 계속 늦어진다.
그렇다고 내일 죽을 사람처럼 모든 일을 서두르라는 뜻은 아니다. 충분히 생각해야 할 일은 생각하고, 오래 걸리는 일은 천천히 해도 된다. 다만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해야 할 말과 선택, 책임을 이유 없이 미루지는 말아야 한다.
나는 얼마나 오래 살지를 알 수 없다. 내가 확실히 가진 것은 이미 살아온 시간과 지금 이 순간뿐이다. 따라서 삶을 언젠가 시작할 일처럼 뒤로 미루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계산하기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제때 해내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