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침
마음의 표정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에 단 한 번 딱 한 차례의 만남
일기(一期)는 일차(一次)이니, 단 한 차례다. 일회(一會)는 딱 한 번의 만남이다. 만세일기(萬歲一期)요 천재일우(千載一遇)는 진(晉)나라 원언백(袁彦伯)의 말이다. 1만 년에 단 한 번, 1천 년에 단 한 차례뿐인 귀한 만남이다. 이 한 번 이 한 순간을 위해 우리는 몇 겁의 생을 기다려 왔다. 단 한 번의 일별(一瞥)에 우리는 불붙는다. 스쳐가는 매 순간순간을 어찌 뜻 없이 보낼 수 있겠는가.
소동파(蘇東坡)의 『승천사의 밤 나들이(記承天寺夜遊)』란 글이다.
원풍 6년 10월 12일 밤이었다. 옷을 벗고 자려는데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기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함께 즐길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승천사로 가서 장회민을 찾았다. 회민 또한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었다. 서로 함께 뜰 가운데를 거닐었다. 뜰 아래는 마치 빈 허공에 물이 잠겼는데, 물속에 물풀이 엇갈려 있는 것만 같았다.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였다. 어느 날 밤이고 달이 없었으랴. 어덴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겠는가? 다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한 사람이 적었을 뿐이리라.
元豐六年十月十二日夜 解衣欲睡, 月色入戶, 欣然起行. 念無與樂者, 遂至承天寺尋張懷民. 懷民亦未寢, 相與步於中庭. 庭下如積水空明, 水中藻荇交橫, 蓋竹柏影也. 何夜無月, 何處無竹柏, 但少閑人如吾兩人耳.
달은 어느 밤이나 뜬다. 나무 그림자는 어디에도 있다. 하지만 그날 밤 내 창문으로 넘어온 달빛, 그 달빛에 이끌려 벗을 찾은 발걸음, 마당에 어린 대나무 그림자, 말없이 바라보던 두 사람이 있어 그 달빛 그 그림자가 일생에 하나뿐이요 단 한 번뿐인 것이 되었다. 만남은 맛남이다. 모든 만남은 첫 만남이다. 매 순간은 최초의 순간이다 우리는 경이 속에 서 있다.
관물찰리(觀物察理) -사물을 보아 이치를 살핀다
공주에서 나는 밀초는 뛰어난 품질로 유명했다. 정결하고 투명해서 사람들이 보배로운 구슬처럼 아꼈다. 홍길주(洪吉周,1786~1841)가 그 공주 밀초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불빛이 영 어두워 평소 알던 품질이 아니었다. 살펴보니 다른 것은 다 훌륭했는데, 심지가 거칠어서 불빛이 어둡고 흐렸던 거였다. 그는 『수여연필(睡餘演筆)』에서 이 일을 적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이 거친 사람은 비록 좋은 재료와 도구를 지녔다 해도 사물을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다.
밀초의 질 좋은 재료가 그 사람의 집안이나 배경이라면, 심지는 마음에 견준다. 아무리 똑똑하고 배경 좋고 능력이 있어도, 심지가 제대로 박혀 있지 않으면 밝은 빛을 못 낸다. 겉만 번드르한 헛똑똑이들이다. 뿔 있는 짐승은 윗니가 없다. 날개가 있으면 다리는 두 개뿐이다. 꽃이 좋으면 열매가 시원찮다. 이런 관찰을 나열한 후 이인로(李仁老, 1152~1220)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사람도 다를 게 없다. 재주가 뛰어나면 공명은 떠나가서 함께하지 않는다.” 『파한집(破閑集)』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을 받아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은 이렇게 노래했다.
소는 윗니 없고 범은 뿔이 없거니 천도는 공평하여 부여함이 마땅토다.
牛無上齒虎無角 天道均齊付與宜
뛰어난 재주로 명성과 공명을 함께 누리려 드는 것은 뿔 달린 범과 같다. 기다리는 것은 재앙뿐이니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야생 거위를 잡아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자 거위가 뚱뚱해져서 날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거위가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한 열흘쯤 굶더니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인 이익(李瀷, 1681~1763) 이 말했다.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먹어서 안 될 음식을 양껏 먹고, 그 맛에 길들여져서 살을 찌우다, 마침내 날지 못하게 되어 잡아먹히고 마는 인간 거위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다. 성호 이익 선생은 77항목에 걸친 관물 일기를 남겼다. 『관물편(觀物篇)』이 그것이다.
사물 속에 무궁한 이치가 담겨 있다. 듣고도 못 듣고, 보고도 못 보는 뜻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옛 사람들은 관물(觀物)이라고 했다. 사물에 깃든 이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찰리(擦理)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넘어 이치로 읽을 것을 주문했다.
중정건령(中正健靈) -알맞고 바르면 건강하고 영활하다
다도(茶道)는 차와 물과 불이 최적의 조합으로 만나 이뤄 내는 지선(至善)의 경지를 추구한다. 초의 (草衣) 스님은 차 안의 신령한 기운을 다신(茶神)이라 하고, 다신을 불러내려면 차와 물과 불이 ‘중정 (中正)’의 상태로 만나야 함을 강조했다.
먼저 좋은 찻잎을 제때 따서 법대로 덖는다. 찻잎을 딸 때는 계절을 따지고 시간과 날씨도 가린다. 덖을 때는 문화(文化)와 武火, 즉 불기운의 조절이 중요하다. 물은 그 다음이다. 좋은 물이라야 차가 제 맛을 낸다. 다만 알맞게 끓여야 한다. 물을 덜 끓으면 떫고, 너무 끓으면 쇠다. 이제 차와 물이 만난다. 차를 넣어 우린다. 적당량의 차를 적절한 시점에 넣고, 제때에 따라서 우려낸다. 이러한 여러 과정 중에 하나만 잘못되어도 다신(茶神)은 결코 제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찻잎을 따서 덖고, 찻물을 길어 끓이며, 찻잎을 넣어 우리는 모든 과정에 ‘중정’의 원리가 적용된다. 더도 덜도 아닌 꼭 알맞은 상태가 ‘중정’이다. 다도는 결국 이 각각의 단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얻는 데 달렸다.
인간의 삶에 비춰 봐도 중정의 원리는 중요하다. 차가 정신이면 물은 육체에 견줄 수 있다.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유지하고, 문무를 겸비하며, 때의 선후를 잘 판단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세상이 나를 알아줘도 내가 그에 걸맞은 자질을 못 갖추었다면 물은 좋은데 차가 나쁜 것이다. 내 준비가 덜 됐는데 세상이 나를 부르거나, 내가 준비되었을 때 세상이 나를 돌아보지 않음은 문무)文武_가 조화를 읽은 것에 해당한다. 비록 차와 물과 불이 조화를 얻는다 해도, 너무 서두르거나 미적거려 중정을 잃으면 차 맛을 버리고 만다. 과욕을 부려 일을 그르치거나, 상황을 너무 낙관하다가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경우다.
초의는 『동다송)東茶頌_』에서 노래한다.
체(體)와 신(神)이 온전해도 중정(中正) 잃음 염려되니 중정이란 건(健)과 영(靈)이 나란함에 불과하네.
體神雖全 猶恐過中正 中正不過健靈倂
차 좋고 물 좋아도 중정을 잃으면 차가 제 맛을 잃고 만다. 중정은 차건수령(茶健水靈), 즉 물이 활기를 잃지 않아 건강하고 차가 신령스런 작용을 나타내는 최적의 상태를 뜻한다. 다신은 그제야 정체를 드러낸다. 사람 사는 일도 다를 게 하나 없다. 삶이 중정의 최적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찌 잠시인들 경거망동할 수 있겠는가?
공부의 칼끝
소년등과(少年登科) -젊은 날의 출세는 큰 불행의 시작
옛 사람은 사람의 세 가지 불행을 이렇게 꼽았다. 첫째가 소년등과(少年登科)다. 너무 일찍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이제 내려올 일만 남았는데 남은 날이 너무 길다. 소년등과가 나쁘다기보다, 너무 이른 성취로 학업을 폐하여 더 이상의 진취가 없게 됨을 경계한 말이다. 둘째는 부형의 형세에 기대 좋은 벼슬에 오름이다. 애쓰지 않고 못 가진 것을 누리다 보니, 그 위치가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자리인지 몰라 함부로 굴다가 제풀에 무너진다. 셋째는 재주가 높고 문장마저 능한 것이다. 거칠 것이 없고 꿀릴 데가 없다. 실패를 모르고 득의양양하다가 한순간에 나락에 굴러 떨어진다. 어찌 살피고 삼가지 않겠는가? 이 세 가지는 누구나 선망하는 것인데 선인들은 오히려 이를 경계했다. 차도 넘치지 않고, 높아도 위태롭지 않으려면 자신을 낮추고 숙이는 겸손이 필요하다.
김일손(金馹孫,1464~1498)은 잘 나가던 이조좌랑을 사직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는 옛 사람이 경계한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 바로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며, 너무 젊은 나이에 요직을 두루 거쳐 큰 은총을 입었으니, 이쯤에서 그치고 독서로 자신을 충전하겠다고 사직은 간청했다.
화복은 문이 따로 없고 다만 그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재앙이 없다 해도 반드시 하늘의 형벌이 있을 것인, 매양 이 생각만 하면 오싹하여 떨릴 뿐입니다. 다만 성상께서 보전해 주소서.
1878년 민영환(閔泳煥,1861~1905)이 규장각 대교에 임명되자 역량이 안 되니 취소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직임이 화려할수록 졸렬함이 더 드러나고, 돌아보심이 두터울수록 송구함만 늘어갑니다. 주제넘게 차지하고서도 당연히 온 것으로 여기고, 잠시 받든 것을 본래 있던 것처럼 할 수는 없어 진심으로 우러러 성상께 아룁니다. 바라옵건대 굽어 살펴 속히 신에게 제수하신 직책을 거두어 주소서.
가득참을 경계하는 선인들의 마음이 이러했다. 젊은 날의 빠른 성취는 부러워할 일이 못 된다. 살얼음을 밟듯 전전긍긍해야 할 일이다. 한 때의 환호가 차디찬 조소로 돌아오는 시간은 뜻밖에 짧다. 돌아보고 낮추고 숙여서 내실을 기르는 것이 옳다. 입은 하나고 귀가 둘인 까닭은 듣기를 말하기보다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해현갱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다시 맨다
해현갱장(解弦更張)!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다시 팽팽하게 바꾸어 맨다는 뜻. 어려울 때일수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기본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하자는 다짐을 해 본다. 편안함은 예술가들이 빠져들기 쉬운 치명적 독이자 유혹이다.
관성과 타성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초심의 긴장을 유지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만 하면 됐다 싶을 때가 위기다. 이젠 괜찮겠지 싶으면 바꾸라는 신호다. 기성에 안주하면 예술은 없다. 자족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그 반대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이다. 줄이 잘 맞았을 때 기러기발을 아예 아교로 붙여 놓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 보겠다는 심산이다. 초짜들은 줄 맞추기가 영 어렵다. 맞은 상태가 내처 유지되면 좋겠는데, 거문고 줄은 날씨나 습도의 영향에 민감하다. 제멋대로 늘어났다 수축되었다 한다. 하지만 기러기발을 아교로 딱 붙여 놓으면 당장에는 편할지 몰라도 그때그때 제대로 된 음을 맞출 수가 없다. 변화에 대처할 수가 없다.
줄이 낡아 오래되면 아예 줄을 죄 풀어서 새 줄로 다시 매야 옳다. 늘어지던 소리가 차지게 되고, 흐트러진 음이 제 자리를 찾는다. 이것이 해현갱장(解弦更張)이다.
『한서(漢書)』「동중서전(董仲舒傳)」에 나온다. 한나라는 진나라를 이었다. 하지만 진나라의 제도와 마인드로는 나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옛 제도로 새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것은 끓는 물로 뜨거운 물을 식히고, 섶을 안고 불을 끄겠다는 격이라고 했다. 거문고 줄이 영 안 맞으면 줄을 풀어 다시 매는 것이 옳다. 정치가 난맥상을 보이면 방법을 바꿔 다시 펼쳐야만 질서가 바로 잡힌다. 줄을 바꿔야 할 때 안 바꾸면 훌륭한 악공도 연주를 못한다. 고쳐야 하는데 안 고치면 아무리 어진 임금도 다스릴 수가 없다.
해현갱장해야 할 때 교주고슬을 고집하면 거문고를 버린다. 고집을 부려 밀어붙이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제 악기가 내는 불협화음을 못 듣고, 듣는 이의 귀만 탓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에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문제 없을거야 하며 아교만 찾는다. 남들은 듣기 괴롭다고 난리인데 제 귀에만 안 들린다. 줄을 풀어 새 줄을 매야 할 대가 된 것이다.
진창의 탄식
피음사둔(詖淫邪遁)-번드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
제자 공손추(公孫吜)가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장점은 무엇입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내 장점은 말을 알고 내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 것이다.” 공손추가 다시 묻는다. “말을 안다는 게 어떤 건가요?” “한쪽으로 치우친 말을 들으면 가려진 것을 알고, 방탕한 말에서 빠져 있음을 알며, 사특한 말을 듣고는 도리는 벗어났음을 알고, 회피하는 말에서 궁함을 알아보는 것이지. 이런 마음이 생겨나 정치를 해치고, 정치에 펴서 일을 망치는 법이다. 성인께서 다시 나오셔도 반드시 내 말에 동의하실 게다.”
지언(知言)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 것이다. 누구나 그럴 법하게 보이려고 꾸미고 보탠다. 얼핏 들으면 다 옳은 말이고, 전부 충정에서 나온 얘기다. 안 될 일이 없고 해결 못할 문제가 없다. 찬찬히 보면 다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피사가 있고, 외곬에 빠져 판단을 잃은 음사가 있다. 바른 길을 벗어난 사사가 있고, 궁한 나머지 책임을 벗으려고 돌려막는 둔사가 있다. 이 피음사둔(詖淫邪遁)의 반지르한 말을 잘 간파해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맹자는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누구나 무슨 말을 하면 곧이 듣기지 않고, 속내가 궁금하다. 도처에 숨겨진 함정과 그물에 방심하면 자칫 당한다. 말이 갈수록 마구잡이라 피음사둔이 오히려 격조있게 들릴 때도 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마구 해 대는 폭로와 비방, 남에게 책임을 다 떠밀고 저만 살고 보자는 독선, 같이 죽자고 물고 늘어지는 억지. 이게 요즘 정치 언어의 풍경들이다. 맹자의 지언까지 갈 것도 없는 저급한 속물의 언어가 판을 친다.
수락석출(水落石出) -물이 줄자 바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1082년 7월 16일 11월 15일, 소동파는 적벽에 놀러가 전후 「적벽부(赤壁賦)」를 각각 남겼다. 당시 그는 왕안석의 신법(新法)을 반대했다가 황주(黃州) 땅에 유배된 죄인의 신분이었다. 7월의 흥취가 거나했던지, 동파는 11월 보름에 벗들과 다시 겨울 뱃놀이를 감행한다. 똑같은 장소임에도 이곳이 그때 여긴가 싶으리만치 느낌이 달랐다.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조차 일지 않던 그 강물은 물살이 빨라져 소리를 냈다. 서리 이슬이 하얗고 무성하던 잎은 모두 땅에 지고 없었다.
배가 적벽 아래로 들어서자 깎아지른 벼랑은 줄어든 물 때문에 갑자기 천 척이나 높아 보였다. 훌쩍 키가 커진 산으로 인해 하늘의 달도 유난히 조그맣게 느껴진다. 물속에 잠겼던 바위가 수면 위로 삐죽 솟았다. 그는 자꾸 딴 곳에 온 것만 같아서 두리번거리다가 “고작 날짜가 얼마나 지났다고, 강산을 알아볼 수조차 없구나!” 하는 탄식을 발했다.
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적벽승주(赤璧乘舟)」에서 이때 일을 이렇게 노래했다.
신법(新法)은 천하에 가득 넘치고
세상은 한밤이라 새지 않누나.
쓸쓸히 떠돌던 임술년 가을,
동정호는 저 하늘 끝에 있구나.
길게 요조장(窈窕章)을 노래하다가
호의현상(縞衣玄裳) 학(鶴)에게 마음 붙였지.
바위 밑동 가을 물에 잠기어 있고
산은 높아 흰 달이 조그마하다.
新法滿天下 人間夜未曉
飄零壬戌秋 洞庭天一表
長歌窈窕章 托契玄裳鳥.
石脚蘸秋水 山高白月小
세상은 캄캄한 어둠 속인데, 불의한 세력이 그 틈을 타고 횡행한다. 마음 맑은 사람은 변방으로 쫓겨나 하늘 끝 절벽 아래서 조그맣고 창백한 달빛을 보며 새벽을 기다린다.
수락석출(水落石出)! 초가을에는 안 보이던 바위가 제 생긴 대로의 몰골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소동파야 적벽강의 달라진 경물을 묘사하자는 뜻이었지만, 후대에는 흑막이 걷혀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는 의미로 쓴다. 추운 시절이 왔다. 물길이 넉넉할 때는 다 품어 안아 가려졌던 실상이 하나둘 드러난다. 저기 저런 게 숨어 있었구나. 하마터면 배 밑창에 구멍을 낼 뻔했다. 섬짓하다. 잠깐 만에 저렇듯 드러내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기실 산도 물도 바위도 원래 변한 것이 없다. 내 눈이 이리저리 현혹된 것일 뿐.
통치의 묘방
징비후환(懲毖後患) -지난 일을 경계 삼아 뒷근심을 막는다
활을 들면 좀먹은 부스러기가 술술 쏟아지고, 화살을 들자 깃촉이 우수수 떨어진다. 칼을 뽑으니 칼날은 칼집에 그대로 있고 칼자루만 쑥 뽑혀 나온다. 총은 녹이 슬어 총구가 꽉 막혔다. 다산 정약용이 「군기론(軍器論)」에서 당시 각 군현에 속한 무기고의 상황을 묘사한 대목이다. 갑작스런 환난이 닥쳤을 때 온 나라가 맨손뿐인 형국이니, 이는 외적 앞에 군대를 맨몸으로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지금 당장 위급한 상황이나 눈앞의 근심이 없다 하여 군대에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찌 위난에서 나라를 지켜 낼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
또 근세에 남의 나라를 치려는 자는 기이한 기계와 교묘한 물건을 만들어, 한 사람이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가만히 앉아서 남의 성을 무너뜨린다. 중국과 일본은 엄청난 화력을 지닌 홍이포(紅夷胞)를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들은 이러한 군기(軍器)를 앞세워 다시 쳐들어올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의 군사 훈련이란 것은 활고자가 벗겨지고 살촉도 없는 화살로 백 보 밖에 과녁을 세워 놓고 이를 맞추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맞추면 절세의 묘기라고 찬탄하니 이 얼마나 순진하고 소박하며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짓인가 하고 통탄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징비는 『시경』의 「소비 小毖」편에 나오는 “내가 징계함은 후환을 삼감일세”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책 속에는 일본에 대한 규탄보다 우리 내부 문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자기반성이 담겨 있다. 그는 이후 전란의 처절한 체험과 문제점을 살펴,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군사 교본을 새로 마련해 훈련을 조직화하며, 무너진 산성을 수리하는 등 국방의 기틀을 세웠다.
『조선왕조실록』숙종 38년 4월 22일자 기사에 보면 통신사가 일본에 갔다가 이 책이 그곳까지 흘러들어 가 읽히는 것을 보고 놀라 왜관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선인의 간절한 진단과 처방은 늘 저들이 먼저 연구 분석하고, 우리는 소 다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느라 항상 바쁘다. 나라가 망한 뒤에 충신을 기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로운 찬양하기보다, 평소의 징비를 바탕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동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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