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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협상 이야기

 
 
 
 
저   자
정호수
출판사
발해그후
가   격
25000
출판일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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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서희의 강동 5주 담판, 파나마운하 협상, 한국전쟁 휴전 협상, 미국-멕시코 전쟁 협상, 미국-베트남 파리 평화 협상, 비글해협 협상, 중동 평화 협상, 미국-소련 쿠바미사일 협상, 북한-미국 핵 협상,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 협상, 한국-일본 차관 협상 등 23개의 역사적 협상 과정과 의미를 분석하였다.


■&> 저자정호수
육군사관학교(39기)를 졸업하였으며(1983년), 미 지휘참모대학 및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교 행정학 석사 과정을수료하고, 한남대학교 C4I학 석사, 공주대학교 국제경영 박사과정 중이다. 소위로 임관된 후 일선 지휘관을 거쳐 육군대학 전략기획 교관, 연합사전쟁기획장교, 조달본부 외자3과 기동장비 협상 및 계약 담당관, 육본 전력단 협상담당장교 등을 지내면서 크고 작은 협상에 참여하여 협상 노하우를쌓아왔다. 일선 대대장으로 봉직한 후, 지금은 방위사업청 전자전장비사업팀장(현역 육군 대령)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싸우지 않고도이기는 협상, 싸우고도 지는 협상"이 있으며, 한국은행 연수원생, 고려대학교 법대 학부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협상관련 특강을 하였다.

■ &>차례
Chapter1. 외교협상
01. 서희의 강동 6주 담판 
02. 파나마 운하 협상 
03. 오키나와 미군기지 축소 미ㆍ일 협상


Chapter2. 무역협상 
04. 한ㆍ미자동차 협상 - 강대국의 협박 전술 관점에서 
05. 미ㆍ일 자동차 협상 
06. 한ㆍEU 주세율 협상 
07. 일ㆍEU 주세율협상 
08. 한ㆍ미 통상 협상 - 한국의 쇠고기 시장 자유화를 중심으로 
09. WTO 기본 통신 협상


Chapter3. 전쟁 협상 
10.한국전쟁 휴전 협상 - 주변국들의 이해와 당사자의 입장 
11. 미ㆍ멕시코 전쟁 협상 - 힘에 의한 협박 전술 
12. 미ㆍ베트남파리 평화 협상 
13. 아르헨티나ㆍ칠레 비글 해협 협상 


Chapter4. 중동평화 협상 
14.이스라엘ㆍ이집트 평화 협상 
15. 이스라엘ㆍ요르단 평화 협상 
16. 이스라엘ㆍ시리아 평화 협상 
17.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평화 협상 


Chapter5. 안보 협상 
18. 미ㆍ소쿠바 미사일 협상 
19. 미ㆍ일 FSX 사업 협상 
20. 북ㆍ미 핵 협상 


Chapter6. 기타 협상 
21. WTO금융 서비스 협상 
22.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 협상 
23. 한ㆍ일 차관 협상 


참고문헌



도서요약
세상을 바꾼

세상을 바꾼 협상 이야기


한미 자동차 협상 - 강대국의 협박 전술 관점에서

* 협상 개요

1993년 6월, 미국 자동차 3사(Ford, Chrysler, GM)가 한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을 촉구한 이래, 양국은 우리의 자동차 시장 개방을 위한 실무 협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다음 해인 1994년 6월, 한국은 한국 자동차 시장 개방을 위한 관세 인하(10%→8%) 등의 제도 개선과 외국산 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 개선 내용을 포함한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했다. ‘95년 들어서는 자체 제도 개선 차원에서 자동차 형식 승인 제도 등 국내 자동차 관련 제도 및 소비자 인식 개선 방안을 추가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1995년 8월, 미 업계는 한국의 이러한 노력이 시장 접근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는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미 통상법 수퍼 301조 관련 의견 제출에서 한국의 자동차 관련 세제, 관세, 금융, 형식 승인 및 소비자 인식 등의 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없을 경우, 미 행정부가 필요한 모든 행정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한국의 자동차 시장 접근 문제를 합의하기 위해 1995년 9월19일부터 1995년 9월 26일까지 워싱턴에서 한․미 자동차 협상을 개최, 자동차 형식 승인 개선, 소비자 인식 개선 노력, 자동차세 일부 인하 등에 합의하였다. 한국 측은 통상산업부 한영수 통상무역 3심의관을 수석대표로 재경원, 외무부, 건교부, 환경부 등 관계관이 참석하였고, 미국 측은 USTR 부대표보를 수석대표로 상무부, 교통부 등의 관계관이 참석한 가운데 4차에 걸친 대표단 회의 및 5차에 걸친 수석대표 회의를 개최하는 등 양국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한 통상 협상을 하게 되었다.


* ‘95년 한/미 자동차 협상의 과정 및 결과

1995년 한/미 자동차 협상의 주요 쟁점은 수입 관세율, 자동차세 누진 세율 구조, 형식 승인(전조등 기준, 서류 간소화, 성능 검사 면제 범위), 할부 금융사 설립, 광고, 가속 주행 소음, 소비자 인식 개선 등의 일곱 가지였다. 미국측의 요구는 자동차 수입 관세율을 8%에서 2.5%로 인하, 자동차세 단일 세율 적용, 형식 승인 38개 항목의 완전 면제, 가속 주행 소음의 새로운 기준의 적용 유예, 외제차 보유자 세무 조사 중단 및 소비자 인식 개선 등이었다. ☞ 제17계 협상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라


한국 정부는 이 같은 미국 측의 요구에 대해서, 현행의 수입 관세율 8%는 유럽 연합(EU)의 10%나 캐나다의 9.2%보다 낮음으로 적정하고, 자동차세 문제는 국내의 정책 목적과 조세 정책 전반과 관련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형식 승인에 대해서는 현재 28개 항목이 면제되고 있고 나머지 항목도 폐지할 예정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고, 할부금융사 설립 문제는 ‘97년 1월1일부터 지분율 제한을 철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외제차 소유자에 대한 세무 조사는 중단되었고, 소비자 인식 개선 노력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 결과는 관세율 분야에서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자동차세 분야에서는 누진 세율을 그대로 고수하되, 미국 측의 요구를 상당히 수용하여 세율을 대폭 인하하였다(현행의 2,500~3,000㏄의 자동차의 경우 410원/㏄의 자동차세를 310원/㏄로 인하했고, 3,000㏄ 초과 차량에 대해서는 630원/㏄에서 370원/㏄로 인하함). 소비자 인식 개선에 대해서는 우리측의 주장이 대체로 수용되었고, 할부 금융사에 대한 지분율 제한 조기 철폐 문제는 ‘95년 10월 한․미 금융 정책 협의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형식 승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조등 기준은 한국 측 주장이 수용되었고, 서류 간소화 문제는 미 업계의 성능 시험 성적서 제출로 대체하기로 했다. 성능 검사 면제 기준은 한국의 500대 안과 미국 측의 5,000대 안의 절충으로 ’98년 1월 1일부터 1,000대까지 면제하기로 합의했다. 광고 규제에 대해서는 ‘95년 10월 1일부터 고정 광고주제를 철회하고, 추후 한국광고공사와 주한 미 대사관 측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가속 주행 소음 문제에 대하서는 ISO 측정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기존의 인증 차량에 대해서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고, 신규 인증 차량에 대해서는 EPA(미국 환경 보호국) 또는 미국 공인 기관의 시험 성적서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 ‘95년 한/미 자동차 협상과 미국의 협박(미국의 협상 전략)

‘95년 한/미 자동차 협상은 수퍼 301조 우선 협상 대상국(PECP) 지정 시한 직전에 타결되었다. ☞ 협박 전술. 제20계 마감 기일을 활용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라 미국 측은 시종 수퍼 201조를 협박 수단으로 하여 한국 측의 양보를 요구했으며, 협상이 타결된 ’95년 9월28일 한국과의 자동차 협정이 체결되었음을 발표하였다. ‘95년 체결된 「한․미 자동차 시장 접근 개선을 위한 양해 각서」의 문구는 대단히 결과지향적이었다. 자동차가 얼마나 팔렸는지와 같은 양적이고 질적인 기준을 가지고 협정 이행 여부를 모니터한다는 내용이 협의체제(consultative mechanism)의 항목에 명시되어 있다. ☞ 제21계 모든 낱낱의 결정 사항들을 서면으로 확인해 두어라 뿐만 아니라 또한 언제든지 수퍼 301조나 WTO로 다시 가져갈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 협박전술 한국 정부는 시장 접근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떠한 새로운 조치도 도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차별적인 자동차세의 추가 인하를 추후 협의 조항에 의거해서 계속 협상하기로 했다.


* 미국 측 협박 전략에 대한 분석

‘95년 한․미 자동차 협상에서 미국은 협박 수단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였는데, 미국은 전체적으로 수퍼 301조 우선 협상 대상국 관행 지정 시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정 시한 직전에 한국의 양보를 이끌어 냈다. ☞ 제20계 마감기일을 활용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라 그런데 협상 과정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양대 쟁점 사항 중의 하나였던 자동차 분야에 대해서는 한국을 WTO에 제소하겠다고 위협하여 양보를 얻어냈다. ☞ 협박전술 일반적으로 다자간 분쟁 해결 절차보다는 양자 간 협상을 선호하는 미국 측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WTO 제소 카드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미 자동차 협상 사례에 국한해서보면 미국 측은 WTO 제소와 관련하여 배기량에 따라서 지나치게 누진적으로 부과되는 자동차세 문제를 특히 부각시켰다. 국제적인 기준과 비교할 때 충분히 인하된 관세 문제나 EU기준으로 강화된 소음 기준 등의 문제는 WTO에 가져가도 승산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별로 승산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통상법 301조를 가지고 협박하고, 승산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협박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WTO 제소 카드를 가지고 협박했던 것이다. ☞ 제9계 상대의 패에 따라 적절한 카드를 제시하라 더욱이 자동차세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내의 여론도 미국의 외압에 대해 관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게다가 일본차에 대한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라는 한국 측의 약점을 WTO 제소와 연계시킴으로써 한국 측의 맞대응 가능성을 분쇄시켰던 것이다.


* 협상 기법 분석 및 결론

‘95 한/미 자동차 협상에서 미국은 관세 분야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내국세 분야(자동차세)에서는 큰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외압의 강도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협상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났던 이유는 한국내의 선호도 분포가 이슈별로 다르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관세 분야에 대한 한국 내의 선호도 분포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 대단히 ‘비우호적 균형’을 이루었지만, 자동차세 부분에 대해서는 ‘대등한 균형’ 혹은 다소 ‘우호적인 균형’을 이루었던 것이다.


미국은 행정부 외에 AAMA(미 자동차 제조업 협회)를 내세워 악역을 등장시킴으로써 협상의 난항을 예고하고, 한국 여론과 미국 내 여론의 효과적 이용으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 제12계 악역을 등장시켜 상대의 기대 수준을 낮춰라 또한 한국의 PECP 지정 시한 직전, 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심리적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 고도의 협상 기법을 구사했다. ☞ 제20계 마감 기일을 활용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라는 조항의 가역적 효과


우리의 대회 통상 협상의 관리와 통상 협상력의 제고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국력과 국제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한 핵심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통상 협상 자체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95 한/미 자동차 협상 사례에서 보듯이 통상 협상팀 간의 불화 등으로 허약한 협상력마저 더욱 저하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국제 환경이나 국내 정치/경제/산업의 구조 문제도 중요하지만, 불리한 구조적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협상 전략을 구사할 필요성이 있고, 실제로 국제 정치 현실에서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차지한 경우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구조 결정론의 숙명론적 논리에 빠져 절망하기보다는 넓혀진 선택의 폭 안에서 어떻게 최선의 선택을 하느냐 하는 적극적인 문제 의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 역사적 접근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 통치하던 영국이 1917년 11월 석유 자원이 풍부한 중동 지역의 패권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을 분할 지배하기 위하여 이 지역에 유태인 국가 건설을 적극 지원해 나간다는 벨포어 선언을 하게 되었고, 그 후 1947년 2월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상정함에 따라, 동년 11월 UN은 그 지역을 아랍과 유태인 거주 지역으로 분할하고 성지 예루살렘을 UN관할 아래 두기로 결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태인은 독립을 선언(1948/5/14)한 바 있으나, 아랍 측은 독립을 거부하고 제1차 중동 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전쟁 결과 팔레스타인의 80%가 이스라엘 지배 하에 들어갔고,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 강 서안은 요르단에 합병되었으며, 가자 지구는 이집트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팔레스티나인들은 국가를 잃어버리고 난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3차례에 걸친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 요르단 강 서안, 골란 고원을 점령하게 되었는데, 이 전쟁으로 팔레스티나인들 중 15만 명이 또 다시 요르단의 영토인 요르단 강 동쪽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또 다른 갈등은 물에서 비롯된다. 중동 문제와 물 문제 전문가인 조이스 R. 스타(Starr)는 1991년(Alpher, Settlements and Borders, pp. 1~4) 논문에서 알제리, 이스라엘 요르단 강 서안, 가자, 요르단, 튀니시아, 예멘이 물 분쟁을 겪는 대표적인 지역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골란 고원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물 분쟁 역시 본질적으로는 수원(水源)확보를 위해 골란 고원을 점령하려는 양국의 갈등이라는 분석이다.


* 협상의 목표

팔레스타인과 협상할 당시 이스라엘이 표면상으로 내세운 협상의 목표는 양측 간의 수십 년 동안의 대결과 투쟁을 종식시키고 상호 공정하고 항구적이며 포괄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5년 이내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잠정 자치 정부와 자치 위원회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3차 중동전의 결과로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게 된 이스라엘은 기존의 선제 공격 개념에서 방어 위주의 국방 개념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작성된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협상 원칙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① 이스라엘의 안전 보장을 우선하며, ② 아랍 각국과 개별적인 해결을 시도하되 팔레스타인 문제는 난민 문제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점령 지구인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등지에 정착촌을 건설하여 기정 사실화함으로써 이 지역을 자국의 안보를 위한 완충 지대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팔레스타인 협상에서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목표였다. ☞ 명확한 협상의 목표 설정


한편 팔레스타인은 요르단 강 서안, 가자 지구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쌍무 회의를 통해 이스라엘 측에 이 지역에 대한 완전 자치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이 같은 숙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1979년 이집트와 평화 협정 체결 당시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성립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에 따라 협상의 전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현상 유지 차원의 안보 국경선 확보의지와 완전 자치를 실현하려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은 미묘한 갈등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관련 당사국으로부터 최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받고자 노력하였다. 협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이 달성하고자 했던 협상 대안들을 살펴보면 군사 문제보다는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궁극적인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 단계로, 이스라엘의 점령지로부터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인정받는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명확한 협상 목표 설정 이것은 이스라엘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수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협상의 성공 요인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협상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첫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자치 협정과 가자-예리코 협정을 통하여 그들의 ‘선 평화 협정 체결, 후 점령지 반환’이라는 목표를 우선적으로 달성하였으나, 후 점령지 반환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협상 대상 문제에 한정하여 팔레스타인과 자치 문제를 논의하였으며, 기타 점령지에 대한 반환 협상은 당사자 개별 접촉의 원칙을 강요하면서, 합법적으로 협상을 지연 또는 회피함으로써 그들의 안보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였다.


둘째, 권한과 책임의 예비적 이양에 관한 협정(‘94/8/29)과 팔레스타인에 관한 추가 권한 이양서(’95/8/27)는 비안보 분야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문제만 언급하고 있다.


셋째, 이스라엘은 잠정 협정을 통해 ‘99년 4월까지 요르단 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확대한다는 데 동의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93년 9월 13일 자치 협정 체결 이후 요르단 강 서안에 대해서 최소 6년이라는 정치,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간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이 기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그들이 점령지로부터 철수하는데 따른 안보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협상 대상 지역이었던 가자 지구와 예리코 지역에 대한 전략 및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가자 지구는 지정학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안보 위협의 빌미가 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며, 전통적 유산이나, 성지 등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에게 양보함으로써 그들은 기존의 기득권에 대한 특별한 희생 없이도 평화 협상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명분을 획득할 수 있었다. 둘째, 예리코, 헤브론 외 5개의 주요 팔레스타인 도시 및 주변 400여 개 마을은 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스라엘의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 중요한 핵심 이익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팔레스타인에게 부분적으로 양보하였을 경우 다음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 지역에 대한 제한된 자치 실현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②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군에 의해 완충 지대 및 전략 요충지로 활용함으로써, 장차 요르단과의 평화 협정으로 웨스트 뱅크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부분적으로 철수 또는 감축을 실시할 경우 예루살렘을 포함한 이스트 뱅크 국가들의 기습 공격에 대한 대비 태세를 증대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작은 것을 양보하고 큰 것을 얻어라


팔레스타인은 최초 그들의 협상 목표였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에서 한 단계 양보한 자치 정부 수립으로 협상의 목표를 수정하여 이스라엘과 협상에 임함으로서 양측의 관계 정상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라 그들이 원하는 영토의 범위 또한 가자 지구와 동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기존의 팔레스타인 영토의 대략 25% 정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그들은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장래에 대하여 가자-예리코 지역에 대한 최종 지위가 ‘98년 12월로 확정되어, 독립국가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WTO 금융 서비스 협상

WTO 금융 서비스 협상은 전 세계 70여개 국 사이의 금융 서비스에 관한 협상 중 하나로, 1997년 4월 시작되어 1997년 12월에 타결된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f Trade in Services : GATS)의 금융 서비스에 관한 제5차 의정서(Fifth Protocol to th GATS)를 말한다.


WTO 금융 서비스 협상에서는 총 70개 국이 개선된 양허표를 제출하였다. 이때, 타결된 금융 협정은 1995년의 잠정 협정과는 다르게 MFN 원칙(MFN(Most Favored Nation Treatment, 최혜국대우)MFN이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1조에 규정된 최혜국대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의 국가에 주어지는 무역상의 혜택이나 제한은 자동적으로 다른 회원국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MFN은 GATT의 기본 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며, 무역 거래를 저해하는 수입제한 조치, 각국 간 차별 대우를 철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통상, 관세, 항해 등 2국 간의 관계에 대하여 제3국에 부여하고 있는 제조건보다도 불리하지 않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에 기초한 항구적 협정이기 때문에 양허 내용의 후퇴는 WTO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 제21조 상의 양허표 수정 절차를 통과해야만 가능하고, 협정에 따른 의무 위반 시는 WTO 분쟁 해결 절차에 따른 제소 대상이 된다. 1997년 12월에 타결된 GATS 금융 서비스에 관한 제5차 의정서는 각국의 국내 비준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1999년 1월 29일까지 공개되고, 모든 협상 참가국이 그 기간 내에 수락하면 그 날로부터 30일째 되는 날에 의정서가 발효되고, 1999년 1월 30일 이후로 넘어갈 경우는 1999년 6월 15일 이내에 수락하여야 하며, 이 경우는 수락과 동시에 발효일이 결정된다. 그리고 제5차 의정서 발효 이전까지는 1995년에 제출한 양허표가 적용되고, 차기 WTO 금융 서비스 협상은 다음 번 서비스 라운드가 시작되는 2000년으로 잠정 결정하였다.


1997년 협상기간 중에 발생한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위기로 인하여 선진국들의 시장 개방 압력이 협상 초기에 비하여 후반에는 훨씬 약화되었고, 상업적 주재의 자유화에 대한 요구 사항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미국, EU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요구한 사항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한국이 OECD 가입 시 양허한 내용을 WTO에서도 양허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둘째는 기본적으로 금융 서비스 전 분야의 자유화를 의무로 하고, 각 분야별로 유보할 수 있도록 하는 understanding 방식을 따를지 여부였다.(김인배 외 3인, supra note 105, p. 45)


* 한국의 양허 개선 사항

은행 부문에서 1997년 12월에 제출된 한국의 양허안을 1995년 양허안과 비교하여 개선 사항을 살펴보면, 먼저 전 분야에서 상장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 한도를 완화하여 종목당 23%, 개인 한도 6%로 하고 있으며, 외국인 채권 투자를 확대하여 중소기업 무보증 중․장기채 및 대기업 무보증 CD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고, 컨트리 펀드(컨트리 펀드(country fund) : 특정 국가나 지역의 주식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외국투자신탁을 말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이러한 투자신탁 중 1개 투자회사로서 뉴욕, 런던 등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외국주식으로서 매매되는 회사형 외국투자신탁을 가리킨다. 한국시장에서는 컨트리 펀드의 상장은 인정되지 않는다. 인기는 아직 높지 않지만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제국을 대상으로 한 펀드가 설립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규제가 강한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투자기법으로 주목받고 있다.)를 통한 증권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전 분야에서 OECD 양허안 중 이번 양허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는, 외국인 주식 투자 한도를 1999년 12월31일까지 매년 3%씩 높이다가 2000년 12월31일 폐지하는 안과, 일정 한도 내 외국인의 대기업 무보증 장기채 투자(1999.12.1)를 허용하는 안이다.) 또한 1997년 8월 31일 양허표에 기재된 금융 서비스의 시장 접근 및 내국민 대우 제한에 대한 동결 조치를 수행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은행 부문 및 기타 금융 서비스의 주요 양허 개선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은행의 금융채 발행 허용

- 현물환의 매각 초과 포지션에 대한 한도 완화(자본금의 2% 혹은 미화 3백만 달러 중 큰 액수에서 자본금의 3% 혹은 미화 5백만 달러 중 큰 액수로 한도 확대)

- 외국 선물환 거래시의 실수요 증명 면제

- CD 발행 제한 및 최소 발행 가격 조건의 폐지(최소 만기 단위 30일 제외)

- 신용카드 현지 법인 허용

- 금융 리스업의 모든 상업적 주재 허용

- 신탁 자산 운용 시 통안채(통안채는 한국은행이 시중 통화량 조절을 목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한국은행통화안정법에 의하여 발행하는 금융채의 일종입니다.) 인수 의무의 폐지

- 요구불 예금의 수신 이자율 자율화

- 신용 평가 기관의 모든 형태의 상업적 주재 허용

- 기존 신용 정보사에 대한 외국인의 50% 미만 지분 참여 허용


증권 부문에서 1997년 12월에 제출된 한국의 양허안을 1995년 양허안과 비교하여 개선된 사항 중 주요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외국 투자 신탁 회사의 지점 및 합작회사 설립 허용

- 외국 투자 자문 회사의 지점 설립 허용

- 기존 증권사 1사당 지분 제한(5%) 및 외국인 전체 지분 제한(10%) 폐지

- 기존 투자 자문사 1사당 지분 제한(5%) 및 외국인 전체 지분 제한(10%) 폐지

- 증권사, 투자 신탁사, 투자 자문사 사무소 설립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

- 외국인 브로커의 취급 가능 증권이 상장 주식에서 모든 외국인 투자 가능 증권으로 확대


1997년에 제출된 한국의 보험 부문 양허안은 1995년 양허안에 비하여 몇 가지 개선 사항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주요한 사항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생명보험, 손해보험, 재보험, 보험 대리업의 상업적 주재에 대한 경제적 수요 심사제도 폐지

- 손해보험 현지 및 합작 법인 설립 허용

- 재보험 국내사 우선 출자 제도 폐지

- 손해보험 해외 보험 요율 사용 제한 폐지

- 합작 생명보험회사 동일 외국인 지분 제한(49% 초과) 폐지 및 외국인 복수 주주 허용

- 보증보험의 독점 제한 폐지

- 독립보험대리점 허용


* 결론

1997년 12월 31일 새벽 4시까지 다자 간 협상을 한 결과, 미국을 포함한 70개 국가의 양허안을 MFN 원칙 아래 전체 회원국들이 수락함으로써,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수차례에 걸친 후속 협상 끝에 금융 서비스 분야에 대한 완전한 WTO 협정이 마무리되었다. 현재 국제 금융시장이 다른 어느 서비스 분야뿐만 아니라 물품 무역시장과 비교해서도 거대해지고 있는 가운데, WTO 금융 서비스 협상의 타결로 금융 서비스 교역에 관한 명실상부한 국제 규범이 탄생하게 되었고, 실제로 많은 국가들은 WTO 금융 서비스 협상 타결이 금융 서비스 교역에 대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이에 따라 금융 서비스 교역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WTO 금융 서비스 협상은 이중적 구조로서 우선 이해 당사자 국가들끼리 양자 협상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상대국에게 금융 서비스 시장에 대한 개방을 요구하고, 아울러 모든 회원국들이 금융 서비스 교역 이사회(Committee on Trade in Financial Services)에 모여 진행된 협상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평가하고 양허가 부진한 국가들에게 양허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금융 서비스는 선진국이 절대적으로 경쟁적 우위를 갖고 있는 부문으로서, 앞의 협상 과정 및 결과 분석에서 보듯이, 선진국과 개도국 간 서로서로 요구하는 협상 방식이라기보다는 선진국이 일방적으로 금융 서비스 시장의 개방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개도국은 어느 선에서 선진국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여 이를 WTO 체제 아래 약속하느냐로 집약될 수 있는 것이다.


WTO 금융 서비스 협상에서도 결국은 미국과 EU가 협상을 주도하면서 각국의 양허 개선 정도를 조절하고 있는데, 특히 미국이 개도국의 양허 개선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금융 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 주도에 의한 금융 개혁을 추진하여 온 결과 이번 협상에서 강한 자유화 의지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정부 주도 하에 점진적인 금융 개혁을 추진하여 온 결과 금융 빅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 선진국이 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점진적인 시장 개방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양자 협상을 선호하여 협상에서 충분히 개선된 양허를 얻어내지 못하면 쉽게 타결하려 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에, 여러 국가로 구성된 EU는 WTO 체제 하의 다자 협상에서 타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한국의 경우 협상 타결 시 1997년 8월 말까지 국내적으로 이미 자유화되어 있는 항목을 양허안에 포함하였으나, 외환 위기를 통한 IMF와의 약속에 따라 OECD 가입 시 양허한 사항 대부분을 WTO 양허안에 포함시켜 다시 개선된 양허안을 제출하였다. 정부는 1997년에 이어 1998년에도 금융 산업에 대한 다수의 금융 관계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 기관들에 대하여 법적, 제도적 규제를 폐지 또는 완화하여 대폭적인 국내 금융 서비스 산업의 개방과 자유화 전망 하에서 외국 금융 기관과의 경쟁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첫째, 금융 기관의 업무 영역 확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은행, 증권, 보험회사 간의 겸업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금융 기관에 대한 효율적인 건전성 규제와 감독 기능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정부에서 금융 관련 분쟁 발생 시 적극적으로 WTO의 분쟁 해결제도를 통하여 적절한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상기의 한국 금융 산업을 위한 제도적 마련이 추진되고, 향후 다가오는 새로운 금융 서비스 협상에 대한 준비를 완료한다면, 한국의 금융 산업은 국내적으로 거센 외국금융 기관의 도전을 이겨내고 국제적으로는 주요 금융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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