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제표로 경영하라
재무제표와 고객제표
고객을 기업의 자산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그 말, 고객중심경영
고객중심경영,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다. 어떤 기업이 이 말을 한다고 해서 더 이상 감동하는 고객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흔하고, 당연한 듯한 현대 경영의 중심 테마가 사실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객중심경영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고객중심경영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고객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영철학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객만족 경영이나 고객경험 개선과 같이 고객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어떤 경영활동들도 고객중심경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접근이라면 고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업은 없기 때문에 이미 모든 기업이 고객중심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필자가 모든 논의에 앞서 고객중심경영의 본질을 먼저 정확하게 정의하려는 이유는 본 서의 주제인 고객제표가 고객중심경영을 지향하는 하나의 기술적/제도적 접근이고, 고객제표와 고객중심경영의 핵심 철학이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고객중심경영은 Customer-oriented나 Customer-driven보다는 Customer-centric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말 그대로 고객을 가운데 정중앙(center)에 놓는 경영방식이기 때문이다. 정중앙에 놓는다는 의미는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의 중심에 고객이 있다는 의미이며, 기업의 존재 이유와 지속가능성 역시 고객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지 고객의 의미가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고객 지향적이고, 얼마든지 고객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냉철하게 고객을 바라 보고, 평가함으로써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활용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고객중심경영에서 모든 경영활동의 중심에 고객을 넣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막연한 고객 지향적 태도나 일부 업무 프로세스에 고객을 참여시키는 기능적 개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고객중심경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고객을 자산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겠다. 고객을 자산처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게 아니고, 고객을 ‘자산’ 그 자체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합의가 있다.
고객이 자산이다?
‘고객은 자산이다’라는 말에서 만약 기업이 말하는 자산이 단지 개념적 자산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의지의 표명이나 막연한 지향점에 불과하다. 자산으로서 관리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측정하고 관리하기도 어렵다. 관리할 수 없는 요소는 없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기업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고객중심경영의 성과가 분명하지 않고, 무엇을 잘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게 된다. 그래서 호기롭게 출발한 다양한 고객전략들이 모두 원점으로 회귀하는 문제가 반복된다. 세그먼트별 차별화한 CRM 캠페인은 연말로 갈수록 단기 매출증대를 목표로 하는 밀어내기 영업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고비용의 신규고객 중심의 영업이 지속되기 일쑤다. 우리 회사를 든든히 버텨주는 핵심고객이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해 제대로 된 관리는커녕 고객이탈로 인한 손실규모는 커지고, 그래서 유입고객보다 유출고객이 많아지는 마이너스 고객흐름이 발생하는데 정작 기업은 고객흐름이 마이너스인지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영업이익 관점에서 손실을 유발하는 고객군이 어디인지 모르거나, 반복적 손실이 발생하는 영업채널을 계속 방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은 단순하다. 고객을 개념적 자산이 아니라 실물적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길이다. 그럼, 고객이 기업의 진짜 자산, 즉 실물적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실물적 자산의 특징을 고객에 그대로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현금, 주식, 부동산과 같은 실물적 자산의 특징은 무엇인가?
실물적 자산의 첫 번째 특징은 재무적 가치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산의 개념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특징이다. 현금은 물론이고, 주식, 부동산, 채권 등과 같은 자산은 당연히 명확한 재무적 가치를 지닌다. 쉽게 말해 돈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고객이 자산이라면 고객 자체를 재무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서서히 소비자 입장에서 우리를 돈으로 평가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달갑지만은 않은 면이 있지만, 고객이 자산으로 관리되기 위해서 필수적이고, 기본적으로 수용해야 할 특성이다.
두 번째 특징은 자산마다 모두 가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자산의 종류마다 가치도 다르고, 한 가지 유형의 자산에서도 그 가치는 모두 다르다. 주식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치가 다르고, 주택과 같은 부동산에서도 지역별로, 브랜드별도, 심지어 같은 단지 내에서도 위치와 층수에 따라 그 가치는 모두 다르다. 고객이 자산이기 위해서는 고객이 우리 기업에게 주는 가치가 모두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재무제표의 매출집계에 고객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한 번 구매하고 떠나는 고객이나 열 번을 반복 구매하는 고객이나 그 가치가 동일하다는 무리한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세 번째 특징은 자산이란 현재가치보다 미래가치가 더 중요하다라는 점이다. 현재 230달러인 엔비디아 주가가 10년 뒤에도 같은 가격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매수하는 투자자는 없다. 현재 5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30년 뒤 내 자녀에게 증여하거나 상속할 때도 비슷한 가격이기를 바라면서 매입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고객이 자산이기 위해서는 동일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즉, 자산은 그 가치가 점 차 상승하는 것을 근본적인 목적으로 두기 때문에 고객이 기업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하며, 이것은 곧 고객의 현재가치보다 미래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이 고객에게 지출하는 모든 비용은 고객이라는 자산의 미래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한 일종의 투자행위라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아무튼 앞서 기술한 세 가지 자산의 특징을 고스란히 고객에 접목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업은 고객을 자산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고, 고객이라는 자산을 지속적으로 획득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관점으로서 고객경영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이 다시 고객이라는 기업의 자산항목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고객중심경영’의 기반이 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고객이 자산이기 위해서는 결국 구체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어떤 주체라는 것인데, 어떤 주체이든 실제 관리는 곧 데이터로 관리하게 된다. 기업이 실제 자산을 모두 현금화해서 기업의 사무실이나 창고에 쌓아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데이터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도 관리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관계라는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객제표의 원리와 통찰력
고객 흐름의 맥으로 지속가능성을 진단한다, 고객흐름표
고객흐름표의 개념과 구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기업이 추구하고 있는 본연의 사업에 의해 성장하는 것을 흔히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라 한다. 이런 기업의 유기적 성장은 신제품의 출시나 일시적인 경쟁 구도의 변화 혹은 경기 상황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유기적 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의 유입과 유지와 같은 고객흐름 자체가 좋아야 할 것이다. 고객흐름표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는 고객제표다. 고객흐름표(Statement of Customer Flows)는 현재 기업이 보유한 고객의 흐름을 영업방식이나 영업채널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고객 중심의 현금흐름표라고 할 수 있다.
재무제표의 현금흐름표에서는 영업활동과 투자활동, 그리고 재무활동에 의한 현금의 유입, 유출을 바탕으로 당기 현금 자산의 증감과 당기의 현금흐름을 진단하는 것에 비해 고객흐름표에는 영업의 방식이나 채널의 유형에 따라 고객의 유입과 유지, 유출을 바탕으로 당기의 고객의 증감과 고객흐름을 진단하게 된다.
고객흐름표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고객 대상은 기본적으로 전체 자산 고객이지만, 소비재 산업과 같이 비식별 고객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업종에서는 비식별고객을 제외한 식별고객만을 중심으로 고객 흐름을 파악하게 된다. 고객흐름표의 1. 핵심지표 섹션에서는 고객흐름 평가 대상이 되는 전체 고객에 대한 고객흐름과 영업채널이나 영업방식별 고객흐름, 그리고 전체 고객의 유지율이 스코어카드 형태로 제시된다.
2. 보고서 상세 영역에서는 1. 핵심지표 섹션에서 표기된 핵심지표들을 포함하여 각 영업채널별 고객의 유입, 유지, 유출 현황을 기재하고, 해당 채널별 고객흐름 결과를 바탕으로 전사 고객흐름과 기초 및 기말 자본고객의 수가 집계되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고객흐름표를 통해 산출된 최종 기말 자본고객 수는 고객상태표의 당기 자본고객 수와 일치해야 한다(고객흐름 분석 대상이 전체 고객일 경우 당기 자산고객 수와 일치), 3. 시계열 변동 영역과 4. 업종내 비교 영역에서는 다른 고객제표와 유사하게 주요 평가지표에 대한 시계열 분석 자료와 동종업계 및 상위산업 평균치가 제시된다.
무엇을 측정하고, 평가하나?
고객흐름표에서 관리하는 주요 평가지표와 측정지표들에 대해 살펴보자. 고객흐름표의 2. 보고서 상세 영역을 보면 영업방식이나 영업채널별 고객흐름을 집계한 후 기업 전체의 고객흐름을 계산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영업채널을 직영 채널과 파트너 채널로 구분한 예시를 바탕으로 설명하겠다. 각 영업채널에 대한 당기의 유입, 유지, 또는 유출된 고객 수를 표기하고, 유입 고객 수에서 유출 고객 수를 차감함으로써 해당 채널의 고객흐름을 계산한다. 그리고 해당 채널의 현재 고객 수는 유입 고객 수와 유지 고객 수의 합산이다.
각 채널의 고객흐름을 계산한 후에는 기업 전체의 고객흐름을 평가한다. 이때 전사 고객흐름의 유입, 유지, 유출 고객 수는 개념적으로 각 채널의 유입, 유지, 유출 고객 수의 각각에 대한 합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눈치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고객흐름표 예시를 보면 각 채널의 유입 고객 수 합산이 전사 유입 고객 수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채널별 고객의 중복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최종 전사 고객흐름은 중복 고객을 반영해 계산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조정 과정을 거친 후 얻게 된 전체 유입 고객 수에서 유출 고객 수를 차감하여 전사 관점의 고객흐름을 평가하고, 이를 기초자본고객 수에 합산하면 현재 당기의 기말 자본고객 수가 도출된다. 따라서 이 수치는 고객상태표의 자본고객 수와 일치해야 한다. 물론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만약 자사의 모든 거래가 식별고객으로부터 발생된다면 고객흐름표 역시 전체 고객을 대상으로 분석 가능하기 때문에 고객흐름표상의 전체 합산된 현재 고객 수는 고객상태표의 자산고객 수와 일치하게 된다.
한편, 고객흐름표의 각 영역에는 고객흐름지수라는 파생 평가지표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각 채널별 혹은 전사 관점의 고객흐름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조금 더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제시되었다. 고객흐름지수는 유입 고객 수 / 유출 고객 수를 통해 산출되며 1을 기준으로 1보다 클수록 좋은 고객흐름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직영 채널의 고객흐름지수가 3.5라면 고객의 유입이 유출보다 3.5배 많은 상황이므로 매우 양호한 고객흐름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현재 고객흐름표 예시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고객상태표와 고객손익계산서 분석을 위해 고객별 매출정보가 수집되므로 당연히 고객흐름표에서도 각 채널의 유입 및 유지 고객에 대한 당기 매출액을 산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각 채널별 고객흐름에 대한 매출액과 매출 기여도 같은 파생 평가지표도 생성이 가능하다.
고객흐름표는 다른 고객제표에 비해 측정지표의 기준이 명확하고, 평가지표의 계산이 쉽기 때문에 비교적 분석과정이 단순하지만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둘째, 고객흐름표의 주요 측정항목인 유입고객을 신규고객으로, 유출고객을 이탈고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고객흐름표는 영업 채널이나 영업 방식의 구분에 따라 고객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고객이라도 다른 영업 채널이나 영업 방식으로 새로운 거래가 시작되었다면 신규 고객은 아니지만, 해당 채널 또는 영업 방식의 새로운 유입 고객이 된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효한 거래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채널이나 영업방식에서 지속되었던 거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 그 고객은 이탈고객이 아니라 단순히 해당 채널의 유출고객이 된다. 가령 홍길동이라는 고객이 기존에 직영 채널에서만 거래했지만, 당기에는 직영채널뿐만 아니라 파트너채널에서도 새로운 거래가 감지된다면 홍길동 고객은 직영채널에서는 유지고객, 그리고 파트너채널에서는 유입고객으로 집계된다. 즉, 고객 흐름표에서 집계되는 각 채널 혹은 영업방식별 고객흐름 수는 중복 계상되는 고객들로 인해 실제 전체 고객 수보다 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고객흐름표에서 집계되는 최종 고객 수를 고객상태표의 고객 수와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별개의 조정 작업을 해야 한다.
고객제표가 쏘아 올린 고객경영 메시지
고객제표를 통해 알게 된 불편한 진실들
다양한 업종의 기업에게 고객제표를 적용해오면서 긍정적인 시그널이나 발전적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기업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불편한 진실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들은 과거에도 존재했던 현상이었겠지만, 고객제표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이다. 지금부터 논의할 몇 가지 불편한 진실들은 과거에는 굳이 알 필요도 없었거나, 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한국적 기업 경영의 속성 중 하나라는 인식으로 묵과되었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고객제표는 이러한 점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불편한 진실들은 고객제표의 여기저기에서 주요 평가지표들의 수치를 떨어뜨리고 있음이 명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고객중심경영을 잘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객제표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시그널이라면 이는 곧 고객중심경영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허들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독자들이 속한 회사는 이러한 현상에 해당하지 않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고객이 줄고 있다
신뢰성 있는 패턴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측정과 모니터링이 필요한 사항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업종에서 전년 혹은 전기 대비 고객의 수가 감소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리테일과 소비재 판매 업종에서는 고객 수의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자본고객 비율이 작은 일부 기업에서는 전년 대비 18%까지 전체 고객 수가 감소하는 기업도 있었으며, 대부분의 B2C 업종에 해당하는 기업에서 4~5% 수준의 고객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B2B 업종에서도 소수의 기업에 납품하는 소부장 제조기업이나 그룹 내 계열사를 고객으로 운영하는 그룹 MRO 업체를 제외하고는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반적인 고객 수의 감소가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업종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내 소비재 시장의 실질적인 침체가 시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일반적으로 고객의 매출감소보다 고객 수의 감소가 더 심각한 위험요인이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우선 이러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분기 이상 연속으로 전체 고객 수가 줄고 있다면 기존 고객과의 관계 유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전처럼 신규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시기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단기 매출 일변도의 전략
지난 수십년간 마케팅, 영업, CRM 등 모든 경영학 분야에서 단기적인 매출 증대를 위한 이벤트성 마케팅을 경고해왔었다. 눈에 보이는 매출 신장은 이내 곧 꺼져버리고, 그 효과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소비자들을 체리피커로 길들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잘 탈 수 있는 좋은 장작이나 숯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다 타버린 잔가지에 휘발유만 반복해서 부어 대는 꼴이다. 과거에는 잦은 할인이나 1+1 행사, 쿠폰의 남용, 끼워팔기, 매스미디어 중심의 광고 등 일시적인 매출 신장에 영향을 주는 활동들이 단기 매출 중심의 활동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고객제표 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고객 공헌이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활동들을 모두 단기 매출 중심의 전략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가령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 고객 식별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운영하는 팝업스토어, 우리 회사에서 경험하고, 경쟁사 제품을 구매하는 소위 스마트 구매 패턴을 고려하지 못한 고비용의 고객경험센터, 쉽고 빠르게 매출 성과가 잘 나온다는 이유로 자사몰보다는 오픈마켓 중심으로 판매망을 확대하는 채널 전략, 신규 고객의 확보까지만 마케팅 퍼널이 형성된 퍼포먼스 마케팅을 맹신하는 디지털 마케팅 전략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브랜드 인지도 강화나 고객경험의 개선, 고객 접점의 확산 등 소기의 목적이 존재하지만, 고객전략 관점에서는 기존 고객의 반복구매보다는 주로 신규 고객의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이 신규 고객의 확보가 예전처럼 용이하지 않은 시기에 이러한 활동들은 변동비 중 고객획득비용(CAC, Customer Acquisition Cost)을 크게 증가시켜 매출액이 늘어나도 실질적인 수익성 확보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업종에 걸쳐 고객획득비용(CAC)이 지난 5년간 약 60% 가까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단기 매출 중심의, 아니 신규 고객 확보 중심의 영업활동이 얼마나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사몰 패러독스
고객제표 분석 과정에서 연구진이 발견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자사몰 패러독스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사몰 패러독스란 자사가 직접 운영하는 독립적인 쇼핑몰의 수익성이 파트너 판매 채널에 비해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소비재 기업들이 자사몰을 운영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사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 고객확보 및 유지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수익 성 높은 고객으로 전환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고객제표에 참여 했던 자사몰 운영 기업 8개 중 5개의 기업에서 자사몰 고객들의 수익성이 외부 채널 고객들의 수익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명확했다. 외부채널에서 판매하는 자사 상품에 대한 가격을 자사몰이라고 해서 더 비싸게 팔 수도 없거니와, 일반적으로 자사몰에서는 각종 멤버십 보상이 부가적으로 제공되고, 포장 및 배송비 역시 오롯이 본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즉, 매출액 대비 변동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 기업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피력하지만, 고객제표 연구진들의 의견은 달랐다. 이 5개 회사의 공통점은 자사몰을 운영하고 있으나, 단기적인 매출 효과가 높게 나타나는 온라인 오픈마켓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렇다할 멤버십 전략이나 체계적인 CRM 활동은 거의 전무해 자사몰 운영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자사몰 고객에 대한 영업이 외부채널 영업처럼 그저 수동적인 구매 대응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자사몰의 운영 타당성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된다면 결국 CRM을 위한 자사몰이나 멤버십의 운영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예단하기 쉽고, 외부채널에 대한 의존도는 다시 높아지며 그렇게 되면 결국 고객 기반의 로열티 경영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사몰로 획득한 고객은 소중한 존재다. 고객제표의 관점에서 본다면 장차 자본고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객들에게는 관계 진화과정에 기반한 고객여정을 설계하고, 각 여정 단계별 고객 충성도의 확대를 도모하는 CRM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고객이 주로 구매하는 상품 외의 연관 상품을 적극 추천하여 교차판매를 도모함으로써 관계의 유형을 늘리고, 구매 금액대별 보상수준을 차별화하여 객단가를 높임으로써 관계의 수준을 두텁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사몰에 의한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디지털 오픈마켓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시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충성도 높은 자본고객의 비중을 높이고자 한다면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곤란하다.